우유부단함과 신중함 그 사이에서
인생은 B(Birth)로 시작해서 D(Death)로 끝난다는 사르트르의 말이 있다. 그 가운데 있는 건 C(Choice)이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우리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나는 우유부단하다. 특히 음식을 고를 때만큼은 누구보다 우유부단하다. 이것을 먹으면 저것을 안 먹은걸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고는 결국 항상 먹던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왜 그런 고민을 했는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사소한 것이야 괜찮지만 가끔은 중대한 기로에 놓일 때가 있다.
처음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느 대학교 어느 과를 갈지를 정해야 할 때였다. 일단은 공부를 지지리도 하지 않았고, 수능 성적은 딱 집에서 통학할 만한 곳에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굳이 이것저것 재면서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달리 주변에서는 정말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름 갈 수 있을만한 대학과 과를 다 조사해 봤지만 쉽사리 선택하지 못했다. 빠르게 정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나의 우유부단함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었다. 결국 가고 싶은 곳을 찾아서 간 것이 아닌, 학비가 싸고 장학금을 받을 확률이 높은 곳으로 갔다. 나중에서야 괜찮은 곳으로 왔구나 생각했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에 많은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뒤에도 직업을 가지려고 할 때,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나를 많이 고민했었다. 그때도 역시나 우유부단함이 빛을 발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시작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빨리 취업해야 한다, 누구를 봐라, 공무원이 최고다 등 조언을 아까지 않았다. 그렇게 귀가 얇았던 나는 직접 선택하지 못하고 남들이 선택해 준 직장으로 가게 되었다. 물론 그곳에 가기 위해 노력한 것은 나이지만, 나의 선택은 거의 없었다. 등에 떠밀려 '하겠다'라고 한 것 이외에는.
최근 이런 얘기를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에게 후회하느냐고 자주 묻는다. 당연히 후회한다. 그 선택이 최선이었을지라도 차선이 있었을 테고, 그것을 선택했다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 덮어 두고 가려고 했었지만, 후회에 대해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선택도 내가 원치 않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꽤나 공포스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유부단함이 아닌 신중함을 가지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같은 의미이지만 상황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그런 말이 아닐까 싶다. 우유부단한 단점을 신중하다는 장점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만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오늘 어떤 점심을 먹을까 고민이 된다. 가끔은 세상에 음식이 한 종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것부터 제대로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