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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살기연구소 Apr 07. 2023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 늘어나는 노동시간의 굴레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의 신발장을 마주한다. 오늘도 너만 홀로 남아 있는게 아니라 다행이야, 싶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남아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보통 5시가 되면, 마음이 바빠진다. 단축근무를 사용하고 있기에 퇴근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여기서 어린이집까지는 40분정도. 일반적인 퇴근시간으로 알려진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어린이집에 남아있는 건 내 아이를 비롯해 두세명에 불과하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부르면, 저 멀리서 반가운 얼굴로 아이가 뛰어온다.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면 다행히 오늘도 잘 지냈구나 싶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엄마를 기다렸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복직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15개월짜리 어린아이를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른명이 넘는 친구들 중 대부분은 서너시쯤 가족들이 불러서 다 집에 가고 네다섯명 남짓한 연장보육반 아이들은 1층으로 내려와 부모님들이 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루는 회사에서 불가피하게 퇴근이 늦어져서, 아이가 6시 반까지 어린이집에 남아있는 경우가 있었다. 부랴부랴 어린이집에 갔더니 홀로 남아있던 아이가 풀이 죽어서 나온다. “빨리 집에 갈래.” 이 모습을 보니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이 즐거워 보이지만, 그래도 너도 엄마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구나.”


나는 육아기 단축근무제도로 2시간 단축근무를 사용하고 있지만, 통근거리 때문에 5시에 칼같이 출발해도 거의 6시가 다 되어서야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사용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2022년 6월 기준 전국 사업장의 0.7%만이 육아기 단축근무제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법적으로 육아기 단축근무제도는 원칙적으로 1년이되, 사용하지 않은 육아휴직 기간을 가산할 수 있는데, 이조차 지키기 않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일했던 기관은 서울시 위탁기관이었는데, 운영규정 자체에 육아휴직과 육아기 단축근무제도를 합쳐서 1년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육아기 단축근무제도를 이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모들이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통상적인 일자리의 근무시간은 8시간이지만,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4~6시간 정도의 단시간 근무를 택할 수 있다. 물론 그만큼 임금은 낮아지고, 대부분 계약직이라 불안정하다. 하지만, 9시부터 6시까지의 풀타임 근무를 하면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아이를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특히 성별임금차이가 나는 한국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는 여성들이) 유연하게 시간을 쓸 수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선택'제라는 이름과 달리 노동자가 시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요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계약직이라 미래도 불투명하다. 업무 강도는 근무시간에 비해 약하지 않다. 반면 경력은 근무시간과 비례하여 절반만 인정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 마저도 수요에 비해 일자리 숫자가 많지 않은데, 공무원,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같이 규모가 큰 곳에서나 소수를 모집하기 때문에 들어가기 쉽지 않다.


그 외에도 노동자가 일하는 근무일이나 시간, 장소를 선택하여 일과 생활을 조화롭게 할 수 있다는 유연근무제도가 있지만, 10명 중 1명이 겨우 이용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제도 이용하기 어렵고, 시간선택제 일자리도, 유연근무제도 활용하기 어려운 부모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경제력이 있다면, 전일제 일자리에서 일하면서 등하원 도우미나 베이비시터로 버텨볼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월급과 시터 비용을, 내 월급과 아이와의 시간을 끊임없이 저울질할 수밖에 없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결국 퇴사를 선택한다.


이 와중에 정부는 필요한 경우(주로 사업주의 판단이겠지만), 몇 달간 길게 일하고 한꺼번에 쉬는 방향으로 근로시간을 개편한다고 한다. 연간 근무시간은 기존보다 줄어드니, 기업은 필요할 때 일을 한번에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노동자도 열심히 일한만큼 휴가도 길게 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휴가를 길게 쓸 수 있을지 여부는 ‘독려’할 예정이라고.


많은 부모들은 이 정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육아기 근무시간 단축제를 이용해도 6시에 퇴근할 수 있을까 말까 일 것이고, 모두가 연장근무를 할 만큼 업무가 늘어난 상황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입지는 더 줄어들 것이다. 등하원 도우미나 시터 비용 역시 늘어날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저출생 문제와 연관된다. 정부는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라고 하면서 정작 일상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시간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라고 한다. 당신의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늦게까지 돌봐 줄 거라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이 일해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정부를 보면서, 그리고 그로부터 고통받는 육아가정을 보면서 지금도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는 청년들이 앞으로 무슨 선택을 할지 너무나 뻔히 보이지 않나.


그리고 연장근무가 늘어난 만큼, 그나마 엄마아빠와 함께할 수 있었던 몇 시간조차 빼앗겨야 하는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이의 성장발달에 있어 어린시절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지금도 연장반에서 애타게 엄마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이,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엄마아빠가 일이 많아서 앞으로는 더 늦을 꺼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부모와 노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이 아이들이 결국 가장 큰 피해자가 될 텐데 어차피 이들에겐 선택의 권한이 없으니 모른 척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정부에 따르면 연장근무는 ‘한시적’이다. 정부의 말 대로 지켜 지기만 한다면, 연장근무는 일년 중 고작 몇 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노사협의에 달린 사항이므로 어느 쪽의 입김이 강한지에 따라 많은 곳에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노동자 측이 얼마나 많은 힘을 가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모든 기업에게 선택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이 상황에서, 기업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분명한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연장근무가 이루어지게 될 몇 달, 최소한 그 며칠동안 아이는 누가 돌볼 수 있는 것일까? 야간연장 어린이집을 확충해서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는 아이들도 부모와 똑같이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 있으면 되는 것일까?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발표한 정책처럼 저녁밥까지 어린이집에서 먹여주니 고마워해야 하는 것일까?


가족을 소위 ‘식구’라고도 부른다. ‘식구’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한 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루 한끼조차 같이 하지 못하는 부모와 아이들이 사는 나라가 과연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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