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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독한 사차원 Feb 24. 2024

도피 여행.

당신에게 현실은 무엇인가요?

18살 이후, 삶의 반은 한국에서, 반은 발길 이끌린 세계 어딘가에서 유랑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종종 걱정 어린 시선으로


“계속 그렇게 떠나는 건 여행 중독이나 도피 아닐까..?”

라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묻는다.


처음 이 질문을 들었던

20대 초반에는 '도피여도 좋아'로 시작했다.


일기장에는 그동안 '도피'에 대한 고민을 적어놓은 문장들이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고스란히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정말 내가 사랑하고 믿는 것들이 결국 도피이기 때문일까?’


질문과 의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쌓이면 쌓일수록 의심이 되어버린다.


시간이 흘러, 20대 중반에는 '도피면 어때?'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답했다.

어차피 내가 겪은 수많은 경험들은 누군가에게는 이 한 문장으로 설명이 될 테니 나조차도 물음표로 남아있어 만족하지 못하는 대답으로 재빠르게 질문을 피했다.

그리고 당시의 생각은 정말 '도피면 어쩌라고'의 마인드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계속 걸었다.


이후 쌓인 의심들을 가지고 여행했던 나는, 그 풀리지 않던 답을 드디어 찾았다.


지금 보니 나에겐 한국이 도피처였네.



항상 여행에서는 언젠가 돌아가야 한다는 소위말하는 '현실'이라는 것들이 되려, 나에게는 잠깐 쉬어가는 여행지임을 순간 깨닫는다. 내가 편히 쉴 수도 있고, 안일하게 지낼 수도 있기에 생각이 그대로 머물러도 될 것 같은 곳의 의미가 나에게는 도피처였다.


편해 익숙해지는 것들이 참 무섭고 두렵다. 너무 당연해서, 당연함 조차 알지 못해서 감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들, 바라보아야 하는데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것들, 세상이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편하게 살아갈 방법을 빠르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들은, 이미 SNS만 켜봐도 사람들은 어떤 것에 열광하며 쫓아가는지, 핫한 컨텐츠들을 따라 올라가 보면 알 수 있다. 착각하기 쉬운 안락함, 평온함 과는 다른 의미로 이 편안한 것들을 경계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내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의 기준이 형성되어 간다.


각자에게 '여행'이, 또 '도피'라는 단어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여행이 도피라고 해석이 된다면, 그리고 그것들이 세상을 살아가게 해주는 힘이라면 그런 시간도 소중하다고 믿는다. 떠돌다 보니 이방인으로서, 모든 곳에서 제삼자의 입장이라 생각했었다가도, 결국 내가 살아가는 곳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하늘 아래, 땅을 밟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각자의 터전에서 뿐만이 아닌 많은 행동들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들이 꽤나 무거운 위로로 다가온다. 그렇게 매일 고향 밖 낯선 곳에서 삶의 온전한 의미를 찾는다.


가끔 한국에 들어와 있다 보면 점점 귀를 닫고 눈을 닫게 되는 환경들 속에 내 모습을 맞춰가며 싸우고 있는 자신이 썩 마음에 들지만은 않는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정하는 데 있어 '여행'이라는 단어가, 환경을 벗어난다는 것이 '도피'라고 불리는 사회의 관점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해 그동안 고민해 왔던 나의 일기장 속 고민은 퍼즐처럼 문장과 단어의 순서를 바꿨더니 결국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나 또한 첫 여행은 현실에서의 도피로 시작되었을지는 몰라도 결국 진정한 '도피'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간다.


이제는 고민이 생기거나 세상이 원하는 답에 부합되지 않아 자신을 의심할 때면

문장 속 단어들의 순서를 조금씩 바꾸어 보기로 했다.


첫 질문 ‘내가 사랑하고 믿고 쫓는 것들은 현실이 아닌 도피이기 때문이었을까?’에서

도피하지 않기 위해, 현실에서 내가 사랑하고 믿는 것들을 쫒는다.

수년간 답을 내리지 못했던 일기장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삶에 지니게 될 문장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신이 써내려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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