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겁니다.

우당탕 쿠당탕, 첫 단추부터 틀렸나 봐요.

by 예스도우

돌이켜보면 나는 내 커리어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항상 궁금해했다. 사람의 성격 유형을 나누는 심리 검사나, 나의 강점을 찾는 여러 질문지에 답을 적어 내릴 때면 그 결과 속에서 내 눈은 언제나 이 유형에 맞는 직업으로 향하곤 했다. 당연히 때마다 연애와 관련된 결과지에 먼저 손이 가기도 했지만.


내가 속한 유형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직업이 어울리는지,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지 보고 있노라면 내가 가야 할 길을 안내받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가 명확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결과지에 나열된 직업들 중 어떤 걸 선택할까 고르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매년 검사지를 보며 정작 그중 하나를 과감하게 선택할 깜냥 없이, 그중 어떤 것에도 확 끌리지 않고 내가 잘하고 즐거워할 직업인지 확신이 없다는 핑계만 늘어놓으며 참고만 하자고 나를 설득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 나는 앞으로 들을 고등학교 수업의 과를 정해야 했다. 마침 과학에 재미를 붙일 무렵이라 주저 없이 이과를 택하고 물리, 화학, 생물을 기본으로 듣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즐거운 걸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듯 선택 과목으로 인체학을 골랐다. 그 소식을 들은 담당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불러 선택 과목은 배움의 범위가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을 한참 해주셨다. 결국 그러고도 물러서지 않아 다른 하나의 선택 과목을 회계로 고르며 타협하긴 했지만. 그렇게 공부 과목을 선택하고 온갖 의학 용어들을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의사가 되리라는 꿈을 갖고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그리고 이상하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치는 장면만 나오면 나도 그 부위가 아픈 것처럼 느껴지고 견딜 수 없이 소름이 돋아서, 진찰만 해주는 소아과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의사의 꿈을 품고 본격적으로 그 길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나는 모든 의대생들은 해부학과 레지던트를 통과해야 하고 소아과야말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꽤나 많은 수술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그깟 해부학 눈 감고 하면 되지! 진짜 의사가 되고 싶다면 그런 과정을 견디고 꿈을 이룰 방법을 찾았어야 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선 나는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건강검진 때 피 뽑는 순간이 올 때면 간호사 선생님에게 앙금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고개를 휙 돌리고는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절대 내 팔을 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솔직해지자면 내가 최소 6년이라는 의대생의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지, 중간에 지치거나 재미가 없어져서 더는 의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어떡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길로 나는 의사의 꿈을 접었다.


그렇게 목표가 갑자기 사라지니 내가 어떤 대학에 어떤 과를 가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나중에 갖고 싶은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졸업 시험을 보는 순간까지 낙제만 면하자는 기분으로 공부를 했었다. 그러다가 우리 집에서 하숙하는 언니와 오빠가 나란히 호텔 경영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걸 보고 저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목표가 없었던 내 진로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잘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갑자기 워킹 홀리데이를 가겠다며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그러다가 대학은 졸업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변의 말에 수긍해 검정고시를 다시 보고 또 호텔 경영으로 2년제를 다녔다. 내가 정해놓은 목적지가 없으니 파도가 밀려들어오면 이쪽으로, 다시 쓸려나가면 저쪽으로, 남들이 이걸 해서 잘 사니 나도 저걸 하면 잘 살겠구나, 아직은 시간이 많으니 조금 방황해도 괜찮겠지. 나 자신을 온전히 돌아보고 알고 가는데도 아직 찾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그렇게, 물 흐르듯 살아내면 언젠가 어딘가에는 도착할 거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확신이 없는 길 위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수단은 '핑계'였다. 참고만 하자는 성격 검사지의 여러 직업들은 오히려 확신이 없는 내가 도망칠 구석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내가 도착한 곳은 푸르게 변해버린 내 커리어의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절벽에 지나지 않았다. 약간 돌아가는 거라고, 비포장도로는 곧 끝날 거라고 생각하며 우당탕 쿠당탕 온갖 좌충우돌을 견디고 고개를 들었더니 내 눈에 보이는 건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이었다. 비포장도로라고 생각해 땅만 보고 걸어왔던 그 길은 뿌려진 꽃씨를 덮느라 울퉁불퉁 해진 씨앗밭이었고, 돌아간다고 생각해 앞만 보고 걸어왔던 그 길은 아무도 모르던 지름길이었다. 뒤를 돌아본 순간 비로소 내가 지나친 모든 꽃밭과 지름길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그 순간은 열심히만 하면 절반은 갈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주문이 나를 배신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목표가 없는 열심은 아무 소용 없는 헛수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와 결국은 머리끝까지 나를 잠식해 버리고는 있는 힘껏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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