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삶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
완벽주의자는 아니다. 완벽하지 않다. 욕심은 있는 편이다. 이왕 할 거면 잘 해내고 싶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너무 무리해서 내 몸에 지장이 갈 정도까지 몰아붙이지 않는다. 한계가 느껴지면 어느 정도에서 포기할 줄은 안다. 그래서 무엇이든 중간 이상은 한다.
엄마로서 자식을 잘 키우고 싶고, 한 사람으로 내 삶도 지켜내고 싶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고,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지만 흠 잡힐만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 최고를 향해서 무엇이든 완벽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두루두루 무엇이든 기본 이상 해내고 싶다.
가치 있는 나만의 시간, 좋은 엄마, 깨끗한 집, 체중 관리, 아이들의 공부와 운동 그리고 생활까지 뭐 하나 완벽하게 내 마음에 쏙 들진 않아도, 모든 부분에 있어서 만족한다고 생각해 왔고, 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딱히 누구랑 비교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내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그래, 이만하면 됐어.' 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해 오며 내 멘털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무엇하나 제대로 완벽하게 끝까지 해내는 게 없구나.' 중간 이상이면 만족하는 나의 기준에 만족하며 살아오다가, 왜 나는 중간 이상이라는 기준을 갖게 되었는가. 왜 그중 무엇하나 온전히 선택하여 다른 것들을 포기하더라도 딱 하나에 집중해 그것을 가장 잘 해내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가. 갑자기 의문점이 들었고, 그 부분이 나의 아이들을 다르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무엇하나 불만이 없었는데, 내가 중간쯤에서 만족하니 아이들마저도 다 두루두루 평타만 치는 것이 아닌가. 내 아이들이 안타를 칠 수 있고 홈런을 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냥 여기서 만족하고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포기하는 그 지점에서 내 아이들도 포기하며 살진 않을까 등,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잡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욕심이 많아서였다. 욕심이 다방면으로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결핍이 생기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편을 완벽하게 해내면서 다른 편이 너무 뒤떨어져 결핍이 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둘셋이나 있어도, 강제로든 반 강제로든 커리어에서 성공하는 엄마들이 있다. 그분들은 일하는 모드와 엄마의 모드에서 온 앤 오프가 자유롭게 되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가슴이 아프고 힘들어도 워킹맘이라는 길을 선택했기에 육아나 가사 노동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경우이다. 그분들은 아이들에게 해주지 못하는 결핍, 그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과감하게 내려놓는다. 반대로 주부의 삶을 선택해서 살고 있는 분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또한 강제로 주부가 되었던 아니었던 건 간에, 자신의 커리어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주부의 삶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는 경우이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니다. 내 일은 하고 싶어서 작은 일들을 간간히 하고 있지만 딱히 워킹맘이라고 할 만큼의 성과는 없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주부일을 해내는 것도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이들은 나의 부재를 잘 느끼지 못하고,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갔을 때 혹은 잠이 들었을 때 나만의 일을 하고 있기에, 두 가지 모두를 기본 이상으로 하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나는 잘 안다. 한쪽으로 치우쳐지기보다는 그 선택이 나에게 더 큰 안정감을 준다는 것을 말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에, 그렇게 선택을 해 왔고, 난 두 마리 토끼 세 마리 토끼든 잡기만 잡으면 되지, 남들보다 1등으로 잡고 싶다는 욕심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 가끔, 인생을 살다 보면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다. 주부로 아이들을 공부나 생활습관 대우관계 등을 너무나 바르고 잘 키워낸 사람들을 보거나, 커리어로 성공해서 남편들보다 더 높은 수익으로 아이들에게 경제적으로 해주고 싶은 것들 스스로 선택해서 주고 싶은 만큼 주는 워킹맘을 마주한 경우 말이다. 평소에는 타격이 없다가 어느 날 체력이 지치고 번아웃을 마주하게 되면 나는 이도 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나는 나의 가정에서 온전히 내 마음대로 돈을 쓰며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락까지 완벽하게 싸서 아이들 건강까지 제대로 챙기는 완벽한 주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두 마리 토끼,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우왕 좌왕하는 사이, 아이들의 생활습관도 흐트러진 것 같고, 집은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닌 상태이고, 내 체중 역시 목표로 하는 체중까지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유지만 하고 있고, 일은 하고 있긴 하지만 발전은 안 되는 상황. 그냥 모든 것이 이도 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아주 오랜만에 '실패감'이라는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난 왜 이모양인 걸까.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를 못하는 걸까.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은 편이지만, 가끔 이렇게 혼자서 무너지고 좌절하고 나 자신의 처지에 슬프게 되는 나를 마주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좌절한다. 상황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말이다. 불과 이틀 전에는 감사했던 모든 것이 무엇으로 인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나 자신을 한탄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 생각의 전환은 무섭기 그지없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다 주자마자 집에 들어와 청소를 했다. 어중간한 내 삶에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쉬운 것은 청소다. 미친 사람처럼 청소를 하고 깨끗하진 내 집을 마주하면 잠시나마 생각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번아웃이 오고 더러운 집을 마주하면 내 정신 상태는 맑아질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왜 내가 이렇게 번아웃이 왔고 무엇을 해결해야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뇌로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그 부정적인 생각들 속에는 실제로 내가 고쳐야 하는 나쁜 습관들이나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 발전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브런치를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무엇을 바꿔야 할지 무엇을 내려놓고 어디에 더 힘을 쏟아야 할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더 주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 자신을 컨트롤하는 부분에 있어서 선택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이미 나는 모든 것을 해내고자 하여 과부하가 되어있기 때문에 이 생활에서 무언가를 더 얹는 것은 불가능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방향에 어디에 더 힘을 쏟고 어디에서 힘을 빼야 할지 선택하는 과정이 있어야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
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죄는 아니다. 그러나 상황과 때에 맞게 힘을 어디에 더 싣을 것인가, 그것을 조절하면서 삶의 균형을 맞춰나가야 한다. 사람은 유연해야 한다. 줏대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내 상황에 맞게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더 싣을지 선택하고 포기하고 조율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언제나 늘 같은 양으로 진작에 정해놨던 길로만 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는 상황에, 지난해에 내가 주부에 더 많은 힘을 쏟았다면 올해는 내 커리어에 조금 더 힘을 싣을 것이다. 만약 커리어에 힘을 쏟는 동안 내 아이들에게 구멍이 생겼다면 그때는 다시 힘의 조절이 필요하다. 추의 무게를 아이들에게 두어 아이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것에 에너지를 더 쏟고 내 일에는 덜 쏟으면 되는 것이다. 꼭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서 하나를 완벽하고 최고로 이뤄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받아들였다. 나는 결핍을 만들지 않는 것이 나에게 더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어쩌면 그냥 나 자신이 그 선택을 못하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고 그름은 없다. 사람마다 역량과 상황과 재주가 다 다르고, 나는 그저 내 역량과 내 상황과 내 재주에 맞게, 때에 맞게 그때그때 변화를 주며 내 주어진 일들을 해내가면 된다.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며 다시 내 마음의 중심을 찾아간다. 다시 긍정적인 생각으로 차근차근해나가다 보면 발전해 있고 조금 더 내 마음에 드는 나 자신이 되어있지 않을까. 난 다 잘 해내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나를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