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인정해 주기
아이를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응, 네 말이 맞아."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생각이 전혀 다를 때 I agree. You are right. 이렇게 말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나이가 들 수록 그 말이 어려웠다. 왜냐하면 나의 경험치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릴 땐 나의 경험으로부터 축척된 데이터를 베이스로 말을 하게 되니까. 이 문제는 나이가 들 수록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야겠단 생각을 했다.
아이를 낳고 육아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상대의 말을 인정해 주는 것을 연습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뒤로 큰 아이가 가끔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이야기할 때는 아 그렇구나. 네 말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겠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다. 이런 말을 가끔씩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연습하고 아이에게 적용하다 보니 어느 날 나랑 유독 생각이 맞지 않은 사람과의 대화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당신의 말이 맞는 거 같아요.라고 말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뒤로 그 사람에게 마음이 열렸고 대화를 하며 이해가 가지 않던 부분들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겐 상상도 못 할 놀라운 변화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더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응 네 말이 맞아.라고 말했을 때의 힘이 있었다. 아이에게 그 말을 해주고 난 뒤의 표정을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우쭐해진 표정이었다. 자만스러운 표정은 아니었고, 무엇이든 해 낼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을 얻은 표정이랄까. 물론 여기서 무엇이든 다 맞다고 말해주면 안 된다. 반드시 정말 맞을 때 맞다고 해야 그 말에 효력이 생긴다. 아이의 자존감도 그때 올라가는 것 같다. 터무니없는 내용에 맞다고 해주면 그 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근자감'만 키워 줄 뿐이다. 아이가 깊이 다시 한번 생각하고 말한 내용이거나, 학교에서 배워 온 말을 할 경우, 자신만의 논리를 열심히 펼쳤을 때 등 어떠한 고민의 흔적이 느껴질 때,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말을 해주는 편이다.
아직 이 마인드가 온몸에 배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마음을 먹고 살아간다면, 분명 아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남편과의 관계 역시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 말을 듣고 보니 또 맞는 거 같기도 하네. 적어도 이렇게라도 말을 할 수 있다면, 남편도 나도 지금 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다. 이 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면 나의 마음이 아주 가벼워질 것이고, 나의 아이는 더 큰 자신감이 생길 것이고, 나의 남편은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며, 주변 사람들은 날 더 좋아할 것이다. 이 말은 누구에게든지 해 줄 수 있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인정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나 역시 듣고 싶은 말임은 틀림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