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헤더 Feb 13. 2023

왜 꼭 깎아내려야 하는 걸까

모든 엄마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 모두가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된다.  출산 직후부터 (미국에는 산후조리원이 없지만) 한국은 대부분 산후 조리원이라는 곳에서부터  ‘엄마’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특별한 사회생활에 발을 들이는 것이다.  엄마들의 사회는, 아이가 없었을 때 내 사회가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말로 설명기 어려운 엄청난 세상이었다. 어쩌면 남자들에겐 군대를 비슷한 곳에서 다녀온 사람들끼리의 동질감이나 공감이라고 하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될 수 있을까.  


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여자들은 삶의 목적과 목표가 완전히 뒤바뀌면서  ‘엄마’라는 타이틀로 엄청난 동지애 같은 감정이 생긴다.  그와 동시에 서로 비교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게 되는데, 작게는 같은 개월 수의 아이 몸무게부터, 크게는 아이를 낳고도 얼마나 아이 낳기 전처럼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비교가 시작된다. 축복처럼 다가온 이 ‘엄마’라는 세상에서 행복하기만으로도 부족하지만, 사실은 엄마가 된 후의 인생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는 너무 다른 삶을 마주한 것이기 때문에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마이웨이 하기 너무나 어렵다.  특히 엄마들은 아이가 어릴수록 아이를 돌보느라 몇 개월간 잠 못 자고, 밥 못 먹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조차 없는데, 아무리 제정신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해도 들쭉 날쭉한 호르몬의 방해까지 더해져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들이 나오는 순간을 어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산한 여성들이 얼마나 출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욕구는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요즘 SNS를 보면 아이 둘이나 셋을 낳고도 싱글보다 더 날씬하고, 싱글보다 더 핫한 곳들을 다니고, 싱글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싱글보다 더 신상백들을 들고 다니는 엄마들이 널리고 널렸다.  여기서 그녀들이 과시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보통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재력’ 그리고 또 하나는 ‘나는 아이를 낳았음에도 출산 전과 다를 바 없다’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SNS를 하나 운영하는데, 그곳에는 나에게 기억이 좋았던 것을 위주로 올리는 편이다.  때때로 너무 지치고 힘든 날,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구구절절 내 힘든 상황을 올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꼭 주변에서 나의 친정 엄마보다 더 나를 위해주는 사람인 척, 내 문제를 실제보다 더 크게 부풀리며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몰아가기 바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뒤로는 나의 고민이나 힘든 것들은 잘 안 올리는 편이다.


아이가 생기면 가장 먼저 물리적인 제약이 생긴다.  시간과 이동에 제약이 생기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진다.  기본적으로 주양육자인 경우, 도움을 받지 않는 한, 아이와 떨어져 있을 시간이 거의 없고,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밤잠을 자지 않으면 목욕할 시간도 만들기 어렵다.  그냥 자기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지독하게 정신력 강한 엄마는 독박 육아를 하면서도 집 안에서 운동을 하고 아기 낮잠 자는 시간에 집안일을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투자하겠지만, 대부분은 몇 달, 아니 또는 몇 년간 잠을 못 자 아이가 잘 때 쪽잠이라도 자거나 밀린 집안일을 겨우 하거나이다.  여기서 ‘재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엄청나게 빛을 발휘하게 되는데, 시간이 곧 돈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게 되면서 ‘자유 시간이 많은 사람은 곧 돈이 많은 사람’이 된다. 싱글 때는 명품백 몇 개 차이 정도였다면 엄마들에겐 ‘자유시간이 얼마나 있는가’로 재력이 눈에 확연히 보인다는 것이다.  그 ‘자유시간’이라는 것은 또 삶의 질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명품백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부럽고 질투하는 마음도 커지게 된다.


그래서 같은 ‘육아 동지’라는 사람들끼리도 어마어마한 경쟁과 비교가 오고 가는데, 특히 정신적으로 다들 힘들기 때문에 비교를 계속하며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을 택한다.  예를 하나 들면 워킹맘은 전업맘을, 전업맘은 워킹맘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는 것이다.  화장을 하고 출근룩으로 빼입는 워킹맘은 매일매일 아이와 씨름을 하며 집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전업 주부를 보며 난 저렇게 나 자신을 버리고 못살아. 나 자신도 너무나 중요해.라고 말을 하고,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다고 믿는 전업맘은 하루종일 일하는 워킹맘을 보며 아이가 너무 불쌍해. 난 저렇데 매정하게 못해. 이렇게 예쁜 아이 커가는 것도 못 보고 힘들겠네. 이런 식이다.  여기서 다가 아니다.  워킹맘은 워킹맘끼리 비교하고, 전업맘은 또 전업맘끼리 비교를 한다. 출퇴근이 확실한 워킹맘은 퇴근이 늦고 주말에도 일해야 해는 워킹맘을 보며 안쓰럽다 말하고, 베이비 시터를 주중에 매일 쓰는 전업맘은 시터 없이 독박 육아를 하는 전업맘을 보며 어떻게 저러고 살아라고 말한다.  


나의 남편이 장기간 출장을 가면, 주변 엄마들 중 어떤 엄마들은 ‘혹시라도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라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며 도와주는 엄마들이 있고, 시터는 언제 언제 와? 당연히 친정이나 시댁이 도와주겠지. 설마 혼자서 하는 거 아니지? 너 힘들어서 어떡하니. 남편 출장 좀 줄이면 안 돼? 아주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옆에서 계속 긁는 엄마들이 있다.


엄마들이 서로에게 자주 하는 말 중에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말들이 있다.  그 속을 들어다 보면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함의 말들이 있다. 어뜻 들으면 위하는 말 같지만 뒤를 돌아 서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말들.


*너는 정말 너무너무 대단한 거 같아 - 여기서 이 말을 여러 번 강조한 경우, 시작은 상대방의 칭찬으로 시작을 하지만 결론은 상대방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서 버티고 있는지를 알려주면서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음을 반드시 강조하며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자기 시간을 가지는 엄마들이 독박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다.


* 난 절대 못해 - 이 말 또한 앞의 말과 비슷한 맥락인데, 너는 하고 있는 것을 나는 절대 못해라는 말이 꼭 상대방의 능력을 인정하는 듯 하지만 자기 자신이 못하는 부분을 합리화하거나, 자기는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다.  워킹맘들이 전업맘들에게, 전업맘들이 워킹맘들에게 서로 힘들겠다며 자기는 그렇게 못한다고 자주 하는 말이다.


* 너… 괜찮아? - 내가 먼저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을 때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내가 안 괜찮은지를 확인하기 위해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응 괜찮아라고 대답했을 때, 아니 안 괜찮아 보여서, 걱정되어서 라며.


* 나는 내 시간이 너무 중요해서 - 이 말을 앞에 꼭 붙이는 경우, 자기 자신이 자유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이다. 아니, 이 세상에 자기 시간이 안 중요한 사람이 있는가.  이 것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 아닌가.  


* 너 이렇게 힘들어서 어쩌니 - 계속 이렇게 살 거야? 내가 봐도 힘들어 보여. 이건 아니지. 어떡하려고? 등등 상대방에게 너무 힘들어 보인다는 말을 남발하는 사람은 보통 본인이 힘든 경우 과잉 대입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냥 조금 힘들다고 말했는데 상대방이 너무 힘들겠다며 되려 더 난리가 나는 경우다.


위의 말들은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비교를 하며 자기 자신을 우위에 놓고 싶어 하는 엄마들이 보통 많이 하는 말들이다.  처음엔 칭찬이나 걱정으로 듣다가 기분이 썩 좋지 않아 집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찜찜해지는 아주 사소한 말들.


Women Support Women

Womenship


평생 남녀평등 교육을 받았고, 그냥 때 되면 결혼해서 아이 낳고 전업 주부로 살 거라도 생각하며 자라지도 않았다.  그저 꿈을 향해 달리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가 생기고 엄마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 오며 여성의 삶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고, 여성들의 입장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같은 여성들끼리 서로를 응원해 주면 훨씬 더 여성들이 살만한 세상이 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내 주변에는 서로를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는 아이 엄마들이 있다.  


왜 꼭 깎아내려야 하는 걸까.  


내가 다른 엄마들을 깎아내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내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마음 가짐으로 아이들에게 인자하고 사랑이 넘치는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모든 엄마들은 자식들을 잘 키우고 싶기 때문에 지금 힘든 것 아닌가.  같은 상황을 함께 겪고 있는 엄마들끼리, 그런다고 상황이 더 나아질까. 모든 엄마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각자의 조건에 맞게.  그저 같은 엄마로서 서로 응원하고 지지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걸로도 충분하다.


너무 잘하고 있어. 혹시라도 내가 도울  있는게 있으면  알려줘. 힘내.’


이 말로도 충분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영양제 먹듯 챙겨줘야 하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