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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응구 Feb 12. 2023

응급환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구급출동벨이 울리고 스피커로 귀를 기울인다.

(딩동댕동)

'구급출동. 구급출동. OO동 123 심정지 환자 숨을 쉬지 않는다고 합니다 구급출동.'

그 어떤 구급출동 중 한가하고 여유 있는 출동은 없지만 심정지는 그중에서도 응급 중 응급은 심정지출동인지라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다.

뛰어나가 현장으로 구급차가 달리는 동안 머릿속으로 현장을 그리며 필요한 장비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해 보며 긴장을 적당히 유지한다.

'현장에 도착하면 환자 의식, 호흡, 맥박을 확인하고 심정지가 확인되면 기관원이 올라오는 동안 AED를 부착하고 계속 가슴압박을 시행 후 다음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유지하며 환자정보를 취합하면 되겠다'

가방 두 개와 자동제세동기를 챙겨 하필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이라 4층까지 숨 고를 새 없이 뛰어올라가 집안을 들어간다.


"119입니다. 환자 어디 있습니까!"


집안에는 할머니 세 분이 거실 소파에서 나란히 앉아 나를 쳐다보았고 세상 편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순간 집을 잘못 찾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 어디 있어요 환자. 119 신고한 거 아니에요?"

만약, 이 집이 아니라면 다시 신고위치를 찾아야 한다. 당연히 시간적으로 초조해진다.

제발... 이 집이어라


"저요, 제가 숨을 못 쉬겠어요"


라며 가운데 앉아 계신 할머니가 직접 손을 든다.

..........아

생각보다 상황판단에 시간이 걸렸다 5초 정도 정적이 흘렀을까

"119 신고한 거 맞아요? 숨을 못쉰다더데 다른 환자 없어요?"

"네네 제가 지금 숨을 못 쉬어요" 

글로는 표현 안 되는 정겨운 목소리와 말투로 대답한다. 오히려 씩씩하달까.

다행(?)이다 어딘가 편찮으시겠지만 심정지라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니..

"본부 여기 OO구급이고 현장도착한 바 cpr상황 아닙니다, 후착대 현 위치 귀소시키기 바람"

이렇게 무전을 한 뒤 이제 천천히 환자상태를 파악하고 이송병원을 정한 뒤 환자를 이송한다.

온몸에 가득하던 긴장감과 아드레날린은 이내 평온해지며 차분해진다.


지역마다, 구급대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날은 전혀 없기도 어느 날은 하루에 심정지출동만 3개 이상 나가는 경우도 있다. 긴급한 출동이던 아니었던 내 일이 이런 것을, 별 일 아니셔서 건강하셔서 감사하다는 오글거리는 말까진 못 하겠다만 다행이라는 내 마음은 진심이다. 이 정도면 해프닝이지.

당연히 반대의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다행이라는 감정은 안타까움과 스스로의 자책, 씁쓸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뀌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이번엔 119 상황실에서 전화를 받는 상황이다.


"네 119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네 여기 위치가 OO인데, 저희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셔서요"

"네 구급차 바로 보내드릴게요 어디가 어떻게 편찮으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는 30대에서 40대 추정 여성, 똑 부러지는 느낌에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정보만 이야기해주고 있으며, 너무 감사한 신고자 유형이다."

"아 아버지가 연세가 좀 있으신데, 지금 의식이 좀 쳐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혹시나 호흡이 없다면 나는 곧바로 심정지로 추정하여 구급차를 1대 더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고, 호흡이 있다면 환자 정보를 좀 더 캐내어 구급대에게 무전으로 보내주면 내 일은 여기서 끝이다.

"호흡은 어때요, 평소처럼 숨 잘 쉬어요? 의식 없다는 게 아예 눈도 안 떠요 아니면 축 쳐지는 느낌이에요?"

"눈도 뜨고 있고, 호흡은.... 숨 쉬어요"

중간에 뜸 들이는 건 왜지, 호흡을 잘하고 있는지 판단하는 시간이었겠거니 찜찜했지만 나는 지금 신고자가 주는 정보를 신뢰하고 있다. 목소리와 말투에서 느껴지는 신뢰감일까 눈도뜨고 있고 숨도 쉰다는 정보에서 오는 신뢰일까..

"네 구급차 보내드릴게요 혹시 갑자기 숨을 못 쉰다거나, 상태가 안 좋아지면 다시 신고해 주세요"

이렇게 전화를 끊고는 혹시나 누락된 점은 없었는지 다시 한번 복기를 해보지만 너무나 깔끔한 신고접수였다.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이제 저 환자분은 구급대원이 어련히 잘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겠지.

3분쯤 뒤에 무전이 오는데...

"여기 OO구급 현장 cpr상황 추가구급대 요청바람!"

아뿔싸... 당장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다. 하지만 일단 환자가 먼저이니 필요한 조치를 취하곤..

계속 그 환자에게 신경이 쏠리면서도 다른 신고접수를 받는다. 다음 무전으로 얼른 위로해 달라고 ROSC(환자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능력이 돌아온 상태)되었다고 그런 기대하는데...

"본부 여기 OO구급"

보통 이렇게 무전이 오면 할 말이 길다는 의미이다. 좋은 신호는 아니다

"여기 본부"

"여기 OO구급이고 보호자 cpr거부하는 상태. 경인 경인 요청바람"

........

cpr은 사람을 살리는 만능이 아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살 확률을 올려주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cpr을 하지 않으면 심정지상태에서 살아날 확률은 거의 0이라는 말이다. 전기가 나간 tv에 전기공급을 멈추었는데 어찌 tv가 나오리...

이 말 뜻은 보호자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로 환자의 소생을 포기했으며, 구급대원들은 끈질기게 살리고자 노력을 했을 테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했다는 건 그 의지가 그토록 강했다는 것이고,

그 말은 사랑하는 가족을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며, 간단한 결정 하나조차 많은 고민을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쉽게 할 수 없는 결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 쉽지 않은 결단이 나에게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업무적인 말투 외에는 어떤 사족을 붙일 수 없다.

"cpr유보 확인, 경찰 요청한 상태입니다. 경찰 인계 후 귀소 바랍니다...."


119는 일종의 서비스 업종이라 생각합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의 허울뿐인 말은 난 모르겠고, 일을 하며 시민들과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함께 하게 되는데, 그것도 누구보다 가장 먼저.

물론 대게가 부정적인 일인 게 마음이 아프고 그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차라리 슈퍼맨처럼 다재다능하던가, 의술의 신이 나에게 빙의되어 그 어떤 환자도 살릴 수 있는 만능이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도 그저 사람인 것을... 일반인보다 조금 덜 두려워하고, 조금 더 침착하며, 조금 더 경험이 많을 뿐... 똑같은 사람인지라, 실수도 많고 두려운 일도 많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도 싫어서, 이런 날엔 종일 우울감에 젖어있다. 차분해진 다해야 할까 일하는 동안엔 생각을 비워내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있는다. 그러곤 내 부족함에 미안해서 퇴근길에 소주 한 병 사들고 반성하고 추모하다 많은 생각에 잠기는데 한참을 그러다 이러다 끝나지 않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마친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아직은 털고 일어나서 다른 환자들을 위해 노력해야 해요. 다음에... 다음에 또 당신을 생각하며 잊지 않고 또 사과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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