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희 글•윤태오 그림 <한밤중 달빛식당>
자랑으로 시작해 본다.
저녁때 집에 갔더니 풀빵이 신나서 뭔가를 이야기하는데, 무슨 말이냐고 두어 번 되물은 뒤에야 비로소 알아들었다. 뭐라고? 학교에서 했던 독후표현활동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 녀석이 매주 일기와 독서기록장을 어떻게 써가는지 대충 봐서 알기 때문에..)
깜짝 놀라고 기뻐서 펄쩍 뛰며 축하해 줬다.
축하해 준 뒤 너희 반에서 이 상을 몇 명이 받았냐고 물어봤다가, 옆에 있던 남편과 친정엄마로부터 비난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그런 걸 왜 물어보냐며 아들도 눈을 가늘게 뜬다. 미안. 엄마가 T라 그런가 봐. 사실 엄마는 너가 몇명 중에 몇 등 했는지 항상 궁금하거든. 그게 중요하다는 뜻은 전혀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궁금한 것뿐이야. 이제 안 물어볼게.
요즘은 이렇게 전교생이 필참하고 학교장 상장을 주는 대회는 잘 안 한다고,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 같다. 대회 방식도 우리 때와는 좀 다른 듯했다. 독후감 쓸 책을 미리 알려주고 읽어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대회 당일 모두에게 똑같은 책을 1인당 한 권씩 나눠준 뒤 읽고 등장인물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단다.
그 책이 바로 이분희 작가의 <한밤중 달빛식당>이었는데, 궁금해서 읽어봤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너희들 다 함께 앉아서 이런 슬픈 동화를 읽은 거니? 혹시 교실이 눈물바다가 되진 않았니? 이럴 때 보면 엄마는 T가 아닌 것 같기도 해. 난 원래 적잖이 건조한 사람이었는데, 엄마가 된 뒤에 달라진 것이 있다. 책이든 영상이든 신문기사든,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에 직면하는 이야기를 보면 감정에 거리를 둘 수가 없게 된다. 그림 <한밤중 달빛식당>•윤태오 그림 <한밤중 달빛식당>
* 아래에는 <한밤중 달빛식당>의 결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우는 춥고 배고프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빠는 술만 마시고 연우를 돌보지 않는다. 실내화에 구멍이 났는데 새로 살 돈도 없다. 그런 연우 앞에 여우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선 ‘나쁜 기억’을 음식값으로 받는다.
나쁜 기억도 지우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니 일석이조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부끄러운 행동을 한 기억을 지우자 괴로움은 지워지지만 그 행동의 결과는 그대로 남아 연우를 기다린다. 가장 슬펐던 기억을 지우자 그 속에 숨은 보석 같은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
어떤 아이든 자라면서 크고 작은 나쁜 기억들이 쌓일 수밖에 없다. 자란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므로. 그 기억들은 무작정 피하거나 덮거나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 풀빵이 이 동화의 함의를 얼마나 이해했으려나? 걸걸여우에게 ‘그런 식으로 장사하면 손님들이 결국 더 슬퍼진다’고 항의하는 편지를 썼다고 하니, 제법 번지수가 맞게 읽은 것 같기도 하고. (내 아들이라 그런지 귀엽기도 하고)
연우는 결국 나쁜 기억들과 함께 엄마의 마지막 말-“사랑해, 기억해“-에 대한 기억도 돌려받는다. 아빠가 그런 연우의 손을 잡고 걷는다.
우리 풀빵, 그리고 세상 모든 아이들이, 부디 너무 큰 상처는 안 받고 자랄 수 있기를. 그리고 상처받은 기억은 각자의 방식으로 직면하고 아물게 할 힘을 갖게 되기를,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손길이 도처에 있기를 기도해 본다.
이분희 글•윤태오 그림 <한밤중 달빛식당>
- 추천연령: 초1~초3
- 특징: 아이가 처한 차가운 현실과 여우부부의 달빛 식당이라는 환상적 공간이 교차됨. 기억과 상처에 관한, 아름답고 여운이 남는 이야기.
- 참고: 2017 비룡소 문학상 수상. 비룡소 ‘책읽기가 좋아’ 시리즈에 저학년을 위한 좋은 동화가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