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밤이었다. 지난 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는지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논리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학교 다닐 때 보던 헌법책을 백 년 만에 꺼내볼까 하였으나, 어딘가 깊숙한 곳에 묵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게 분명하여 관두었다. 뭐, 문제의 계엄선포와 포고령이 위헌임을 확인하는 데 굳이 책까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어젯밤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미드 <마담 세크리터리>의 어떤 에피소드였다. 대통령이 어느 날부턴가 자꾸 이상한 결정들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터무니없이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기도 하고, 반대의견을 말하는 자에게는 비정상적으로 화를 내기도 한다. 혼란에 빠진 각료들은 비밀리에 모여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를 논의한 뒤, 수정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키고 병원에 보내 검사를 받게 한다. 알고 보니 대통령의 뇌에 물혹(?)이 생겨 성격 변화와 판단력 저하를 초래한 것이었는데, 다행히 치료 후에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S4 E12 'Sound and Fury')
https://www.tvmaze.com/episodes/1377171/madam-secretary-4x12-sound-and-fury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영상을 보며, 어쩌면 지금 누군가 그의 손을 붙잡고 병원으로 데려가 뇌 MRI 검사 같은 걸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닐까 생각했다. 의사들이 그를 반겨줄지는 모르겠다. 아니, 사실 지금은 아무도 그의 연락이나 방문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계엄 선포 후 대체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혹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몇 명이서 함께 준비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그들의 현실감각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그들만 다른 유니버스에 살다가 어젯밤 차원의 문을 열고 넘어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하여간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놀라운 뉴스를 볼 때마다 이제 이보다 더 놀랄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늘 더 신기한 일로 우리를 놀래킬 준비를 하는 것이다. 새해 대청소를 하게 되면 내 헌법책 어디 처박혀있나 찾아보고 먼지 좀 털어놓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