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산속에 지으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평소에도 교통이 매우 불편한데, 눈이라도 오면 답이 없다. 비탈이 심하고 제설도 어렵다.
아침부터 어안이 벙벙한 수준으로 눈이 쏟아진다 싶더니, 오후엔 교내 셔틀버스 운행이 중단되었다. 교내로 들어오는 마을버스도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자가용 포함 모든 차량의 진입이 통제되었다. 곳곳에서 눈의 무게를 못 이긴 나뭇가지가 툭 부러졌다.
급기야 '폭설로 인한 전 구성원 퇴근시간 조정' 공지가 떴다. 눈 오는 꼴이 심상치 않으니 다들 해 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시오, 라는 경고로 읽혔다. 다들 검은색 패딩을 껴입고 황급히 퇴근하여 눈 쌓인 비탈길을 조심조심 걷는 모습이 흡사 피난민 행렬 같았다. 아침에 들어왔던 차들도 교문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엉금엉금 줄지어 이동중이었다.
그렇거나 말거나 학생들은 잔디밭으로 몰려나와 웃고 떠들고 눈사람도 만들며 사랑과 우정을 꽃피우는 중이었다. 조오오옿을 때다. 그들은 밤에 눈이 내리고 버스가 없어도 함께 깔깔 웃으며 걸을 것이고, 빙판길에 좀 넘어져도 쉬이 뼈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엉금엉금 걷고 있는 검정 패딩 피난민 무리도 침울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눈에 파묻힌 산과 나무와 벤치들이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다들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와중에도 자꾸 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게 그 증거였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아침 출근길엔 정신없고 짜증나서 못 보았던 풍경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어제까지 가을이었는데, 오늘은 갓 쌓인 보드라운 눈이 온 세상을 덮고 있다. 하늘이 잠깐 개면서 흰 눈 위에 엷은 햇빛이 반짝였다.
나도 어릴 적엔 눈이 참 좋았다. 담장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그러모아 뭉칠 때의 촉감도, 눈을 밟을 때 나는 뽀득뽀득 소리도. 지금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창밖에 눈이 오고 있으면 젠장, 소리가 먼저 튀어나오는 사람이 되었지만 말이다. 사실은 오늘도 젠장, 소리를 내며 시작하였는데, 예정에 없던 조기퇴근령으로 모든 게 기꺼워졌다.
- 어디야? 씐난다. 맛있는 거 먹고 술도 먹자.
마음에 여유만 있으면 누구나 눈을 좋아하게 돼있다. 올해 첫눈이었다.
2024.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