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이가 들수록 싫어하는 것이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싫어한다고 피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포기와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주 어릴 적에 싫어했던 것이 매우 구체적이었다. 음식으로 따지면 맵고 짠 것을 기피하고, 흉물스럽게 보이는 것을 먹지 않으며, 냄새가 고약하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가족 중에 친형을 아주 싫어했는데, 나를 자주 때리고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유를 성인이 되어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괴로웠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니 (대다수가 그렇듯) 학교 가서 책상에 앉아 버티는 것이 싫었다.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다른 것이 재밌을 것 같아서였지. 하지만 남들도 다 책상에 앉아서 온종일 수업과 공부를 하고 있으니 나도 따라 했을 뿐이다. 같은 반 학우들 중에 싫어하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것의 비중이 어릴 적 형만큼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20대가 되니 싫어하는 것이 많이 줄었다. 이때부터 난 꽤 긍정적으로 살기 시작한 것 같다. 싫어하는 사람은 어울리지 않고 보지 않으면 그만이었으니. 다만 이때부터 애국심이란 것이 내 정신에 깃들었는지, 일본과 그 동네 사람들이 이유 없이 싫어졌다.
회사생활에 전력투구하는 30대가 되니 무능력한데 불성실한 사람이 싫었다. 일하는 직장 근처에서 주변인들과 시간 대부분을 같이 지내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싫었다. 다만 그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오로지 내 마음속에서만 싫어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전처의 어머니, 즉 장모님이 싫었다. 결혼 시작부터 내게 못마땅한 부분이 많다는 티를 곧잘 내셨는데, 슬기롭게 극복해보려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장모님이 날 싫어하신 이유가 많았지만 결국 돈이 문제였다. 남들처럼 좋은 백그라운드와 좋은 집을 갖고 오지 못한 나에 대한 원망이 결혼 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다. 전처는 자기 어머니의 성향을 알고 마주침을 줄이려는 노력을 했지만 온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40대가 되니 좋고 싫음의 기준이 엷어지고 집중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변하였다. 신기하게도 남을 싫어하기보단 무관심해졌으며, 내가 관심을 갖는 사람은 오로지 좋아만 했다. 그들 중에서 관계가 틀어지게 되더라도, 싫어하는 마음이 드는 것보단 걱정과 연민에서 감정의 진행이 멈추는 것을 가끔 느낀다. 불혹을 지나면서 나 자신에게 싫은 감정이 종종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성찰의 계기로 삼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혼이라는 큰 산을 넘으면서 관계에 홀가분해지니 그 성향이 뚜렷해졌다.
태어나서 싫어하는 감정을 깨닫게 된 후로, 나이가 들며 대상과 범위가 변했는데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릴 적에는 오로지 오감의 불쾌한 느낌을 싫어했으며, 시간이 지나니 타인에 대한 감정의 색깔로 판단했고, 흰머리가 많아지면서 남한테 무관심해지더라.
***
"오빠는 왜 혼자 성인군자처럼 굴어!?"
그녀가 최근 싸운 누군가에게 화를 내며 나에게 동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말로 나는 그 상황이 화를 내거나 분노가 먼저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생겼고 앞으로 피하거나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공감.
매번 공감만 해주면 나는 욕쟁이로 늙어가겠지.
T발 오빠 C야?
이런 표정으로 마무리가 되는 것이 뻔했지만, 난 정말 F라고.
결국 나이가 들어 싫어한다는 감정과 부정적인 생각 자체가 내 몸과 정신의 건강을 해친다는 나의 생각을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그녀와의 관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도 알아. 연애는 그런 게 아니란 거.
그래도 어쩌겠어. 그렇게 살아온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