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코가 간지러워 힘껏 코를 풀었는데 빨간 흔적이 묻어 나왔다.
'헐. 코피가?'
'살면서 코피 흘린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
이런 생각을 떠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
으레 그렇듯이 그녀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하고 맘에 드는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셨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그녀는 코에 휴지를 쑤셔 박고 자리로 돌아왔다.
"오빠. 나 코에서 피나."
그녀의 말을 들은 후 우리 코피의 원인이 짐작되었다. 우리는 연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거의 매일을 붙어있었으며, 모든 시간을 계획하고 실행했다.
근무 중에는 각자 회사일에 매진했지만 남는 시간은 여가의 시간을 계획했다. 그 여가시간은 좀 무리하다 싶을 만큼 타이트했고 그 시간을 같이 보냈다. 매일 그녀와 나는 적당한 거리를 서로 오가며 이동을 했고, 밤에는 지쳐 잠들기 전까지 통화를 했다. 주말이 되면 어딘가를 찾아 새로운 인연을 스스로 축복했다.
바쁜 일상이 몇 달 반복되니 노쇠한 우리의 몸은 경고를 보냈다. 아주 강렬하게.
***
연애는 체력이 필요하다. 정확히는 중년의 연애가.
좀 더 젊을 적에는 체력적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 만나서 데이트하고 싸우기를 반복해도 지치지 않는 시간을 보냈는데, 나이가 드니 한번 만나는데 온 신경을 쏟음은 물론, 헤어지고 나서도 후유증이 상당했다. 그나마 우리는 거주지가 가까워 부담이 적었지만.
그래서 안정된 연인이라고 느끼는 시기부터 적당히 에너지를 관리하고 조절하기 위해 애썼다.
어릴 적 신경 못쓰던 언행에 신중을 기하고, 그간 생각지 못했던 상황을 배려하기 위해 고민했으며, 귀찮아서 하지 않았을 법한 일도 하곤 했다. 그것은 모두 체력으로 대체되고, 취침시간이 빨라지는 계기가 되었을 테지.
여자친구와 대화했던 카톡 내용을 찬찬히 다시 살펴보며 오해 없게 부연 설명한다던가, 시간이 지나서 만날 때는 활짝 웃어주며 첫 대면에 신경 쓴다던가, 평상시면 약속 장소를 말해주고 끝낼 일을 약도를 캡처해서 일일이 손그림으로 표시하는 일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과거에 이런 고민과 배려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여간 현재의 나는 그간 음으로 양으로 학습된 최선의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니 생활 패턴도 바뀌었다. 눈 뜨고부터 잠잘 때까지 모두 그녀를 위한 준비였고 기다림이었다. 물론 생업을 소홀히 하진 않았지만, 영향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순 없었다.
회사에선 공개되지 않은 이혼 덕분에 새로운 연인에 대한 잡담을 할 수 없었고, 온통 내 안에 채워진 그녀의 흔적이 삐져나올까 입을 다물고 묵언수행 하듯 회사를 다녔다. 몇몇 내 사정을 아는 동료들은 이혼의 아픔으로 말 수가 적어진 것이라 지레짐작하며 섣불리 위로를 하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오해는 나름 편한 부분이 있어, 그것은 그것대로 놔두며 새로 찾아온 연애를 맘껏 즐겼다.
그 결과,
내 생애 마지막 연애가 될지도 모른다는 조급함과
이번만큼은 잘해보겠다는 나름의 각오,
그간 경험으로 축적된 여러 가지 바람이 혼재된 우리의 연애에서 예상치 못한 체력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어떻게 해야 좋은 중년을 보내며 노후를 맞이할까?
참 고민이 많은 우리네 중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