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피 Jun 10. 2024

팔베개의 낭만

#6

연인이 되기까지 누구나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상대방 외모에 대한 기준이 아예 없다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누군가는 본인은 외모를 보지 않고 사람을 사귄다고 할 테지만, 남들보다 조금 그 기준이 낮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세상의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가장 평범한 조건은 여성의 아름다운 외모다. 이성이란 개념이 생기는 어린 시절도,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도 공통적인 이성형이 '이쁜 여자'라는 것은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정의나 마찬가지다.


 또한 부모님께 물려받은 외모가 훌륭하지 않았으나 이쁜 여성을 흠모해 왔고, 나이 든 지금도 그 기준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그 '이쁜' 혹은 '아름다운'이란 뜻이 나이가 들수록 구체화되더라.


나는 (대다수의 남성이 그렇듯) 머리가 작고 비율이 좋은 여성을 좋아한다. 어릴 적에는 그것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나의 습성과 내가 갖지 못한 그 어떤 것이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체격에 비해 머리가 크고 팔다리가 짧아 몸의 비율이 좋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내가 갖지 못한 신체 조건에 대한 동경과 감탄이 그런 바람을 만들었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남들보다 작은 머리와 긴 팔다리로 좋은 신체 비율을 갖고 태어났다. 그것은 일반적인 동양 여자가 갖는 평균을 상회하는 것이었고, 성인이 되어 뭇 남성들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제는 40대 중반으로 젊음의 아름다움이 점차 지워지고 있겠지만.

 

그 작은 얼굴과 보기 좋은 비율만이 내 애정의 모든 이유는 아니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여하튼 우리는 연인이 되어 스스럼없이 스킨십을 하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잠자리에 이유를 굳이 찾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둘 다 이전 결혼에서 생긴 아이가 없었고 시간과 공간에 비교적 자유로워 그렇기도 하겠지만.


나는 몸이 왜소하고 마른 편이다. 이전의 연인에게 팔베개를 해도 오랜 시간 보낸 적이 없었고 시늉만 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나의 팔베개로 잠이 들어도 아침까지 그 모습을 유지했다. 정확히는 내가 유지한 것이지만.


그것은 팔을 대주는 남자입장에서 꽤 고난의 길이다. 팔베개를 한다는 것은 내 팔을 베고 있는 동안 팔과 어깨로 순환되는 혈액의 불균형이 주는 저림, 잠이 깰까 두려워 미세한 움직임도 자제해야 하는 인내심 그리고 끈적끈적한 더위 등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민한 남성이라면 다른 이유도 즐비하겠고.


여하튼 우리는 자연스레 팔베개를 하고 꽁냥 대다 잠이 들었다. 최초의 그 순간은 쉽게 잠이 들지 못하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와 두근거림, 혹시 날지 모르는 불쾌한 냄새까지 걱정했으니까. 하지만 어느새 익숙해져 잠이 들었고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그 자세의 흐트러짐이 없어 살짝 놀란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의 작은 머리가 한몫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머리는 정말 조그맣기 때문에 내 좁고 마른 어깨에도 잘 안착되었으며 그 무게 또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 같다.



***


어느 날, 한 번은 내 귀에 입을 반쯤 넣고 말했다. 일부러 가까이 와서 귓속말을 하는 그림이었다.


"야아아아아~ 시이이이바아아아이 야야아아아~"

으헉.


잠결에 나는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했다. 내 팔을 베개 삼아 죽은 듯 잠을 자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잠꼬대겠지. 잠꼬대일 거야. 깨울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깨우지 않고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그녀에게 굳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요새도 가끔 그 장면을 복기해 봐도 좋은 소린 아니었다.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무슨 꿈이었을까.







작가의 이전글 연인이라는 증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