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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un 04. 2024

다시 시작하는 연인들

#1

연인이 생겼다는 것은 인생의 큰 이벤트이다. 특히 결혼을 한 이후에 다시 생길 일이 있을까 싶었던 경우에 더욱 그렇다. 최소한 내게 이혼이란 단어는 남의 얘기였으니까.


이혼 후 연인 찾기를 갈망한 것은 아니지만 인연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이혼 직후부터 어렴풋이 갖고 있었다. 물론 전 결혼 생활에 대한 애도기간이 있어야 한다는 도리에 대한 생각도 동시에 있었지만.


결혼 생활에서 혼자된 생활은 많은 부분이 바뀐다. 간소하게 된 아침 출근 준비, 출근해서 보고할 곳이 없는 남는 휴식 시간, 퇴근 후 저녁 식사 여부의 선택 그리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이것은 구속에서 자유일 수도 혹은 채워짐에서 비워짐일 수도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것은 큰 변화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두려웠는데, 그 원인은 연인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나는 나이가 많았고 활동적이지 않았으며 남을 위해 희생하고 참는 것에 대해 젊을 적보다 상당히 퇴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를 선택한 것에 대한 만족을 주고 싶다는 심정이었다. 좀 더 잘 보이고 싶고, 좀 더 나에게 빠져들게 하고 싶고, 좀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것은 어느 남자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시점의 마음은 성인이 된 직후 처음 연인이 되었던 마음가짐과 비슷했다. 


우리는 다음 날부터 매일 만났고, 매일 새벽까지 통화했으며, 매일 기상과 취침의 순간을 알게 했다. 참 오랜만의 연애라 -결혼 생활은 연애라고 표현할 수 없겠지- 순간순간이 새롭고 행복했다.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온전한 한 가지는 시간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시간은 그녀의 것이었고, 그녀를 위해 사용했으며, 그녀를 담는데 의미를 두었다. 


***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스킨십에 관한 문제였다. 도저히 어릴 적에는 어떻게 스킨십을 시작했는지 어떤 속도와 어떤 단계를 거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연인끼리 손잡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최초의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손을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유교보이 비스무리한 그런 류의 인간이었다. 그런 내가 그녀에게 물어봤다.


"우리 언제 손잡아?"


나는 이미 그녀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언젠가 잡겠죠."


조바심이 나서 다시 물었다.


"우리 사귀는 거 맞지? 근데 왜 이렇게 손 잡는 것도 어려워?"


그녀는 웃으며 내 손을 잠깐 잡아주었다. 긴장한 내 손은 땀이 흥건하게 났고 모든 신경이 손바닥을 향했다. 잠시 후 잡은 손을 풀고 다시 잡고를 반복했다. 괜히 손잡자고 말했나 싶었다. 그렇게 며칠 최초의 스킨십을 저울질하고 주말이 되었다. 


우리는 영화를 보기로 하고 그녀 동네에 있는 작은 영화관을 예매했다. 로맨스 영화랑 거리가 먼 역사물이었지만 연인이 된 후 처음 겪은 영화관 데이트라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영화가 중반쯤 진입할 때 그녀는 대담하게 내게 팔짱을 끼며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먹던 팝콘의 손길도 멈추었다. 그리고 어깨의 각도를 기울여 그녀를 편안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있으니 내 몸은 과도한 경직으로 경련이 오기 시작했다.


'으.... 차라리 이쪽으로..'


나는 경직을 풀기 위해 살짝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내 안쪽 팔은 그녀의 허벅지와 무릎 위에 놓아졌다. 그녀의 복장은 여름용 얇은 원피스였는데 영화관에서 다리를 꼬고 있어 무릎 위쪽까지 맨 살이 드러나 있었다. 


꿀꺽.


침이 입안에 고여 삼켰다. 내 손이 그녀의 허벅지에 올라간 것은 물론 맨살이 만져저서 너무 긴장되고 흥분되었다. 그리고 능숙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위해 오므린 손바닥을 펴서 그녀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혹여나 나를 너무 숙맥으로 볼까 봐 자연스러운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살포시 잡고 있었다.


그녀의 다리와 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 영화가 끝났다. 우리는 카페로 가서 영화에 대한 후기를 얘기하며 즐겁게 데이트의 마지막을 보냈다. 즐거운 영화와 커피 수다를 마치고 어느새 그녀의 집 앞까지 당도했다.


"오늘 즐거웠어. 잘 자고 집에 가서 연락할게."


그렇게 마무리 인사를 하는데 그녀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근데, 오빠."


잠시 시간차를 두고 말하는 그녀에게 집중했다.


"... 아까 영화를 보면서 왜 그렇게 내 다리를 비벼요. 때 나오는 줄."


아.

할 말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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