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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수 Feb 08. 2023

야마모토 츠요시, 레이 브라운, 호레이스 팔란 등

프리뷰: 며칠 사이 들은 재즈 앨범들 002

처음 들은 앨범, 리뷰까지 나아가기엔 할 말이 모자란 앨범, 그리고 며칠 사이 들은 앨범들을 다루는 시리즈입니다. 모두 엘피로 앨범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내린 감상입니다. 등급은 ‘프리미엄 주고라도 사세요-살만 해요-누가 주면 들어보세요-보면 부셔버리세요’ 순이긴 한데 제 주관적인 평가이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쓰리사운즈 - 무드

The Three Sounds - Moods

1991년 일본 리이슈 VG+/VG+ 기준.

등급: 살만 해요.


들어가는 걸음이 재미있다. 당연히 진 헤리스(Gene Harris)의 피아노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네가 그런 예상을 할 줄 알고 있었지, 대충 60년 전부터.”라고 말하는 듯 앤드류 심프킨즈(Andrew Simpkins)의 베이스로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해 그런지 듣는 내내 베이스가 먼저 들린다. 블루노트(Blue Note)에서 앞서 낸 앨범들로 충분히 진 해리스를 밀어줬다 생각했는지 이번 앨범은 심프킨즈를 밀어준다. 쓰리사운즈의 스타일은 고스란히 이어가며 힘 주는 악기만 바꾼 느낌, 마치 알프레드 라이언(Alfred Lion, 블루노트 설립자이자 프로듀서)이 "쓰리사운즈에는 해리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셋 다 잘 하는 팀이죠." 라며 말하는 것 같다.


쉽고 귀여운 발라드가 이어지는 중 잠깐 뛰었다 곧 다시 걷는다. 쓰리사운즈 앨범들에서 자주 보이는 패턴, 쓰리사운즈에게 기대할만한 음악들이 들어 있다. 나는 이들의 이런 예측가능함이 좋다. 비슷한 음악들이 든 앨범들을 내며 늘 평균 이상의 품질을 갖춘다. 심심해서, 혹은 별 크리에이티브가 안 느껴진다며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그 당시에도) 그 생각도 일리가 있긴 하다만 남이사 뭐 그러든 말든 나는 좋다. 세상에 오넷 콜먼(Ornette Coleman)이나 선라(Sun Ra)만 있다면 그 세상은 얼마나 혼란하겠는가? 쓰리사운즈도 있어야지. 집중해 들어야 할 음악도 있고 뭐 할 때 틀어둘 음악도 있고 바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이야기 할 때 배경으로 나오면 좋을 음악도 있어야지.


안타깝게도 이 앨범에는 큰 문제가 있으니 커버가 상당히 촌스럽단 점이다. 프랜시스 울프(Francis Wolf, 블루노트의 공동경영자이자 사진가)와 리즈 마일스(Reid Miles, 블루노트 커버 스타일을 만든 디자이너)가 현역일 때 나온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루지 않았고 그들의 애스테틱이 반영되지도 않았으며 그저 당대 트렌드를 따르는 그저 그런 디자인이다. 이 앨범이 저평가된 것엔(=별 인기가 없는 것엔) 이 구수한 커버의 영향이 상당할 것 같다. 썩 좋은 음악이 들어 있으며 이미 60년이 넘게 지난 일이기에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미즈하시 다카시, 이마다 마사루, 야마모토 츠요시 - 인터플레이 나우

Takashi Mizuhashi, Masaru Imada, Tsuyoshi Yamamoto – Interplay Now

1981년 퍼스트 NM/NM 기준.

등급: 프리미엄 주고라도 사세요.


흔치 않은 더블 피아노 앨범인데 참여한 두 피아니스트 모두 일본 재즈를 대표하는 레벨이다. 베이시스트 미즈하시 다카시의 이름을 걸고 나온 앨범이나 이마다 마사루와 야마모토 츠요시의 이름을 보고 관심 가지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나만 해도 그렇고). 더블 피아노인 것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각 채널에 한 대씩 피아노를 패닝했는데(베이스와 드럼은 센터) 그 채험도 재미있다. 좌측에서 피아노 멜로디가 나오는 중 우측에서 다른 피아노 리듬이 나오는 연주는 충분히 독특하고 재미있다.


스탠다드 곡들이 이어지건만 이 무렵 일본 재즈 앨범답게 임프로바이제이션이 화려하다. 일단 익숙한 멜로디로 집중하게끔 만든 뒤 화려한 연주로 이어가며 연주자들이 얼마나 잘 하는지 알려주는 건 좋은 방법론이다. 게다가 이 무렵 일본 재즈 앨범답게 뇌절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적절한 타이밍에 끝낸다. 다 듣고 “아 이거 깔끔하네.” 란 생각을 했다. 딱 이 정도가 좋다.


이 무렵 일본 재즈 앨범(세 번째 적으며 “조건이 복잡하네” 란 생각을 했다) 엘피들 중에는 굉장한 프리미엄이 붙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곡들 수준만 놓고 보면 이것도 충분히 그럴 법 하건만 아직은 저렴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경우들처럼 감동까지 든 건 아니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컬트가 되려면 뭔가 확실한 야마가 있어야 한다. 이 앨범이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충분히 좋다. 넘치기 직전까지 찬 컵 같다.


호레이스 팔란 트리오 - 하이-플라이

Horace Parlan Trio – Hi-Fly

1978년 퍼스트 NM/VG+ 기준

등급: 누가 주면 들어보세요.


모던 재즈는 대충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70년대 흑인음악의 주류는 역시 펑크(Funk)와 디스코다. 도날드 버드(Donald Byrd)나 허비 행콕(Herbie Hancock), 그리고 그 위대한 퀸시 존스(Quincy Jones)처럼 시대에 순응하거나 시대에 맞춰 변모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했던 모던 재즈 연주자 다수가 아직 모던 재즈에 대한 애호가 남아있던 유럽으로 넘어갔는데, 스티플체이스(SteepleChase Records)는 그 무렵 그 연주자들이 유럽에서 한 녹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레이블이다. 대충 철 지난 음악 파는 회사인데 요즘은 쳇 베이커(Chet Baker)의 후기작들로 재미 좀 보고 있다보니 주력상품은 역시 그것들. 호레이스 팔란 앨범은 장사가 영 신통찮았는지 요즘은 리이슈를 안 한다.


호레이스 팔란은 1950년대부터 활동한 피아니스트인데 엄청 각광받은 적은 없지만 나름 블루노트에서 리드 앨범을 낸 적도 있고 나름 방구 좀 뀌던 양반이다. 다만 이 양반 역시 70년대에는 유럽으로 넘어갔고 유럽에서 활동하다 덴마크에서 죽었다. 그 당시 유럽에서의 인기는 나름 쏠쏠했는지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제법 많은 앨범을 냈다. 이 앨범도 그 중 하나.


기묘한 트리오인데 드럼이 없다. 피아노, 베이스, 그리고 드럼 말고 기타. 뭔가 빈 소리를 낼 조합이며 듣고 있으면 실제로 뭔가 빈 연주가 이어진다. 상당히 매가리가 없다. 진짜 ‘있는 듯 없는 듯’ 한 음악이다. 그리고 나쁘지 않다. 뭐 화려하거나 선명하거나 명쾌해야만 좋은 것은 아니니까. 술에 술 탄 듯 해도 술이고 물에 물 탄 듯 해도 물이다. 취할 수 있고 시원할 수 있다. 틀어놓고 별 생각 없이 설거지 할 수 있는 앨범이며, 살다 문득 생각날 때는 아무래도 없을 것 같다만 뭐 들을지 고민하며 수납장 뒤지다 보이면 ”이거나 한번 들어볼까?“ 하며 꺼내 들을 일은 있을 법한 앨범이다. 호텔 엘리베이터나 로비, 혹은 뭐 팔아야 하는 중 손님에게 부담 주기 싫을 때 틀어두기 좋을 앨범이기도 하다.


레이 브라운 - 베이스 히트!

Ray Brown - Bass Hit!

1975년 일본 리이슈 VG+/VG+ 기준

등급: 살만 해요.


레이 브라운과 마티 페이치(Marty Paich)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조합인가? 티 안 나는 베이스를 연주한 사람들 중에서도 티 안 내기로 유명한 브라운을 페이치 ‘오케스트라’와 붙여놓다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었단 말인가? 궁금했다. 샀다. 들었다. 아… 이런 게 있구나, 세상에는 이런 음악도 있구나.


대충 빅밴드에 묻어가는 베이스를 예상했건만 오산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베이스를 밀어줬다. 컨트라스트를 크게 줘 베이스가 드러나게끔 했으니 솔로에 가까운 베이스 연주가 나왔다 마치 소격법처럼 화려한 빅밴드를 들이 민다. 그리고 다시 베이스와 베이스를 ‘반주하는’ 미소한 합주가 나오고, 쾅쾅쾅 하며 빅밴드가 돌아와 곡을 끝낸다. 이런 방법이 있구나. 베이스가 묻힐 것 같으면 다른 악기를 다 죽여버리면 되는구나.


내가 아는 빅밴드 컨덕터들은 기묘하게도 각각의 스타일이 분명한데, 예컨대 카운트 베이시(Count Bassie)는 “솔로 따윈 없어, 무조건 오케스트라야. 솔로가 있다면 그건 오케스트라가 잠시 쉬어야 할 때 뿐이야.”와 같고 길 에반스(Gil Evans)는 “컨셉트가 제일 중요하지. 악기들은 그저 내가 그린 음표들을 연주할 수 있으면 돼.” 라고 하는 것과 같다. 퀸시 존스는 “요즘 이런 게 유행인데 대충 어떻게 하는지는 아시죠? 잘 하시는 분들이니 이번에도 잘 해 봅시다.” 라고 하며, 로니 알드리치(Ronnie Aldrich)는 “자 여러분, 투자자가 이런 것을 해달라고 했으니 얼른 대충 하고 집에 갑시다.” 라고 하는 것과 같다.


페이치도 스타일이 있다. ”오늘 우리는 이러이러한 목적을 위해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선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거기 계신 분들은 살짝 불고 그쪽 계신 분들은 크게 쳐 주세요. 그래야 저 소리가 돋보일 수 있습니다.” 라며 사람들을 설득한다. 대단히 명확하게 목표를 파악하고 자원 각각의 역할을 배정하며 목표에 도달할 방법을 찾는다. 이 앨범에서도 그렇다. 베이스가 리드인데 오케스트라를 끼워넣어야 한다면 뭘 어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살폈고 그 방법을 따라 지휘한다. 결국 베이스가 오케스트라 앞에서도 드러난다. 기묘하건만 안정적이며 독특한데 합당하다. 재미있다.


존 서먼과 존 워렌 - 테일즈 오브 더 알공퀸

John Surman and John Warren – Tales Of The Algonquin

2023년 유럽 리이슈 M/M 기준

등급: 살만 해요.


데카(Decca)에서 나온 재즈 엘피라면 일단 호의적이다. 나 역시 주류 음악을 주로 듣다보니 지쳐 뭔가 전형적이지 않은 게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고, 그 비전형성은 데카 엘피에 담긴 음악과 소리 양쪽 모두에서 그렇다. 재즈에서 데카는 클래식에서와는 달리 비주류 레이블이다. 주류는 역시 버브(Verve), 블루노트, 프레스티지(Prestige), 퍼시픽(Pacific), CTI 같은 곳들이고 데카는 “저긴 뭐 먹을 거 없나?“ 하며 재즈를 깔짝깔짝 건드려보는 정도. 덕분에 데카에선 뭔가 기괴한 앨범이 여럿 나왔다. 로우 레벨 수요에 대응하겠답시고 만들었는지 너무 전형적이라(거진 팝 레벨에 준하게끔) 오히려 튀는 앨범들도 있고, “결재권자가 술에 취해 있었나보다.”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앨범도 있고. 소리도 그런데 컴프레셔 팍 걸어서 악기들 돋보이게 만든 그 무렵 보통 재즈 앨범들과는 달리, 데카는 클래식 녹음 기법을 이어와 한 발자국 뒤로 떨어져 풀 스펙트럼을 담았다. 덕분에 소리는 자연스러우며 주류 재즈와는 다르다. 이 두 특이함 때문에 나는 데카 재즈 엘피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이 앨범 역시 순전히 데카에서 나온 물건이라 샀다. 리드 연주자 둘은 당시 영국 재즈 씬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라는데 미국 재즈도 잘 모르는 내가 그들을 어찌 알겠어. 그저 데카에서 나왔다니 뭔가 재미있는 게 들어있지 않을까 싶어 샀다. 다행히 기대에는 부응한다. 온갖 색소폰은 물론 플루트부터 플루겔혼까지 상당히 다양한 브라스가 참여한 빅밴드 끕 앨범임에도 스윙보단 밥에 가까운 포지셔닝을 하고 있고, 그 사이에서 리드 색소폰들은 기량을 뽐내며 화려한 연주를 쏜다. 소리도 재미있는데 모든 악기 볼륨이 평준화가 되어(물론 베이스처럼 묻히는 악기에는 부스팅이 되어 있다) 작은 소리는 없을지언정 묻히는 악기도 없다.


그럼 음악이 좋으냐? 그게 확실치가 않다. 들을만은 한데 “아 이거 명반이네.” 하며 달려드는 인상은 없다. 편곡이 좋고 연주도 좋다보니 계속 듣다 보면 언젠가는 뭔가 느낄 여지는 있지만 명반이나 명곡을 들을 때 듣자마자 느껴지는 그 짜릿함은 없다. 화려한 연주건만 수수하다. 알찬데 슴슴하다. 재미 있는데 심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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