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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Mar 14. 2024

그 모든 것에 감사한다

청국장찌개

'감사' 에는 내가 생각지 못했던 어떤 마법같은 힘이 있는 것 같다.


결혼하고 첫 몇 년동안 남편이 나와 함께하면서 가장 힘들어 했던 부분들 중 하나는 내가 대상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것들을 부정적으로 보려고 하는 습성이었다. 전형적인 '잔 속에 물이 반밖에 없다.' 고 생각하는 유형이었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그게 나에게 어떤 피해를 입힐 것인지 부터 생각하며 두려워 했고, 지나간 기억은 "그래서 싫었고 저래서 힘들었다."로 남기 일쑤였다. 좋은 상황 속에서도,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의 내면은 힘겨워하며 무언가를 견뎌내고 있었다.

싫은 감정이 하나 둘 쌓여 내 안에서 태산이 되었다. 그 태산은 '불행'을 의미했다.


오래도록 이렇게 살아가다보니, 이런 감정이 습관이 되어 그다지 불편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수많은 것들이 불편했지, 내 감정이 불편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의 이러한 습관 때문에 남편이 지속적으로 상처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편이 나에게 아무리 잘해 주려고 노력해도 나는 남편이 못했던 것들만 엉터리로 편집해서 기억한 채 원망을 하니, 그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남편을 보며 그 동안의 나의 사고 방식이 과연 균형잡힌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우리가 행복하기 어렵겠다는 두려움이 고통스러웠다.


우연히 오프라 윈프리가 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에서 <감사일기> 라는 걸 언급했다. 매일 저녁, 그 날 감사했던 것 다섯가지를 메모처럼 적는다고 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이 있다면, 만약 당신이 당신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감사히 여긴다면 당신의 세계가 완전히 변할 거라는 점이다.

- 오프라 윈프리, <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 중에서.


한 번 노트에 그 날 감사할 것 다섯가지를 적어 보았다.


   1. 점심으로 먹은 된장찌개가 맛있었다.

   2. 저녁으로 먹은 샌드위치도 맛있었다.

   3. 나에게 과외받는 한 학생한테 네 잎 클로버를 선물로 받았다.

   4. 오전에 남편과 산책했던 시간이 좋았다.

   5. 오늘 날씨가 좋았다.


이렇게 끄적거리는 게 뭐라고 나에게 도움이 될까...

밑져야 본전이니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싶어 밤마다 잠깐씩 짬을 내어 숙제하듯 감사 일기를 적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째 접어들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어떤 일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이러한 좋은 점이 있으니 해볼만 하지 않겠어요?"


앗!

남편도 나도 놀라서 눈만 껌뻑껌뻑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내 입에서 이런 긍정적인 말이 나오다니!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는 데에 우리 둘 모두 동감했다.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내가 감사일기를 써가는 동안 나의 내면의 기저에 흐르던 부정적인 감정의 줄기가 서서히 방향을 틀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기대하지 못했던 효과에 신이 나서 감사 일기를 조금 더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노트를 세 페이지나 빼곡히 채울만큼 감사를 할 때도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감사일기는 진행 중이다. 감사일기를 쓰면 쓸수록 나의 마음에 힘과 온기가 생겨나는 걸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좋은 점들을 찾아내서 감사하는 데에서 조금 더 마음을 뻗어 그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다.


우울증을 경험한 것도 감사하고,

그로부터의 회복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감사하고,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것도 감사하고,

그 진단으로 인해 내가 변화하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음에도 감사한다.

그 누구보다 자식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했던 부모 밑에서 성장했던 것도 감사하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상처를 물려받은 것조차도 감사하고,

이혼했던 경험에도 감사하고,

지금 남편과 주고 받는 친절에도 감사한다.

나 자신을 미워하는 감정을 경험한 것에도 감사하고,

그래서 나 자신을 사랑하려고 내딛는 발걸음이 진지하고 진실될 수 있음에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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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청국장 찌개로 유명한 집을 찾아다녔을만큼 청국장 찌개를 좋아했다고 한다.

얼마 전 청국장을 사서 청국장 찌개에 도전해 보았지만, 재료와 친하지 않아서인지 별로 맛이 없었다. 세 번째 시도를 했을 때에야 이제 감을 좀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청국장 찌개 >



전날, 표고버섯와 다시마를 물에 불려 놓는다.


표고버섯와 다시마를 불려 놓은 물로 멸치 육수를 만든다. (청국장 찌개는 자작해야 맛있어서 많이 만들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냄비에 다진 파를 볶아서 파 기름을 낸다. 표고버섯도 작은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서 같이 볶아준다.

간장을 냄비 바닥에 조금 부어서 끓였다가 섞고, 된장 한 큰술과 다진 마늘(좀 넉넉히)도 같이 볶아준다.

까나리 액젓과 설탕도 아주 조금만 섞어준다.

멸치 육수를 자작하게 붓고, 무우를 좀 썰어 넣어서 끓여준다.

무우가 어느 정도 익으면, 깍둑 썰기한 감자와 잘게 썰은 익은 김치를 넣는다.

감자가 반 정도 익으면 애호박도 작은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서 넣는다.

청국장을 따뜻한 물을 조금 넣고 풀어준다.


야채가 다 익으면, 청국장과 두부와 잘게 썰은 고추를 넣고 한 소끔만 끓인다. (청국장을 넣고 나서는 오래 끓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 간은 소금과 설탕으로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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