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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Mar 13. 2024

나는 우울증이었다

들깨칼국수

나한테는 참 미안한 일인데... 참으로 긴 시간동안 나에 대한 사랑이 가뭄에 콩 한 줄기 날까말까 하듯 메말라 있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엄마와 한 세트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의 모습을 떠올려 보다가, 아 엄마도 사시는 동안 자신을 별로 사랑하지 않다가 가셨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자신의 모든 것을 가족들에게 (특히 나에게) 퍼주고 퍼주다 아파지셨었다. 엄마가 자신을 아끼고 가꾸는 데에 에너지를 쓰셨던 기억이 거의 없다.


"넌 이토록 사랑받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존감이 없니..."


언젠가 엄마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의아해하며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갸우뚱 할 뿐 말없이 지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그럴 수밖에" 라고.


나는 자존감이 없었던 엄마를 보고 자라났으니까.

엄마로부터 받았던 수많은 것들이 나의 자존감에 별로 양분이 되지 못했던 듯 하다. 그보다는 내 눈에 보이는 엄마의 모습과 나의 피부로 느꼈던 엄마의 감성이 나의 자존감을 만드는 뼈대가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뼈대는 심히 취약하다. 딱 엄마만큼 취약하다.



나의 마음이 가는대로 가보고 해보는 게 두렵고 싫어졌다.

내가 아기였을 때부터 엄마는 자신이 용납하는 선이 있었고, 그 선을 넘어가는 일에는 극도로 분노하곤 했으니까.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규모있는 고급 식당을 깊이있게 경험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많은 생각과 조사 끝에 청담동의 어느 고급 일식집에서 알바를 해보기로 했다. 학창시절 내내 집 안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나로서는 신선한 용기를 내 본 셈이었다.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그런 '낮은' 일을 하겠다는 나에게 집안이 모조리 타버릴 것 같은 분노를 느낀 나머지 내 배를 찼다. 그렇게 많이 맞고 컸어도 발로 차인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호기심과 용기는 순식간에 수치심으로 변했다. 자신의 딸이 음식점에서 일하는 건 엄마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꾸준히 맞고 자라온 탓인지 나를 그렇게 대한 엄마에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 날도 수그리고 앉아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다.


몇 년 뒤, 음악을 하겠다고 했다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게 확연해졌을 때, 엄마가 말했다.

"실컷 공부시켜 놓았더니 딴따라들과 어울리다니..."

나의 선택은 두고두고 엄마의 경멸을 받았다.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싱그러운 봄을 느끼며 손톱에 연두색 메니큐어를 발라보았다. 그 날도 나는 엄마에게 두들겨 맞았다. 맞으면서 들었던 '창녀' 라는 소리가 마음 어딘가에 세균 덩어리처럼 남았다.

몇 년 후, 엄마는 교회에서 만난 어느 스타일리쉬한 고등부 선생님이 연두색 메니큐어를 옷 색깔에 맞추어 세련되게 바른 걸 보게 되었다. 그 날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네일 샵에 갔다. 엄마는 팔을 뻗어 연두색 메니큐어를 가리키며 직원에게 저걸 내 손톱에 발라달라고 했다. 그 날부터 매주 엄마는 나를 데리고 네일 샵에 가서 새로운 색깔을 내 손톱에 발라주었다. 평생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본 적 없는 엄마 나름대로의 'Sorry' 제스처라는 걸, 말하지 않았지만, 엄마도 나도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내 안에는 말과 몸으로 맞으면서 배운 짝퉁 진리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 엄마가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의 선택만이 가치가 있다.

* 그 선을 넘어가는 선택은 분노와 경멸을 받는다.

* 그 선을 넘어가는 선택을 하는 나는 수치스러운 존재다.


나의 마음에 귀기울이기가 싫어졌다. 선을 넘어가는 무언가를 생각할까봐, 그러고서 선을 넘어갔는지조차 모를까봐, 그러다 또다시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봐... 두려워졌다. 선택한다는 건 무서운 것이었다. 나의 선택을 엄마가 수긍하거나 좋다고 말하면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를 때 오히려 편안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자유롭게 나대지 않도록 함부로 대했다.


잘못하는 나는 한껏 미움받고 경멸받고 학대받는 게 마땅한 존재라고 느꼈다.

내가 잘못했던 기억들에 대해서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쓴 감정을 뽑아내 마셨다. 엄마가 나의 잘못들을 두고두고 원망하고 수치스러워했듯이.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나의 모자람을 탓했다.

.......... 나는 우울증이었다.

궁금한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아무것도 없는 채로, 온종일 기대어 앉아 드라마만 무한반복해서 보는 게 우울증의 증상이었다는 걸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나의 열정은 드라마 속 인물들에 빙의할 때에만 존재했다. 그게 안전해서였던 것 같다.


"당신은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아."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말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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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깨 칼국수 >


날씨가 춥거나 마음이 시려울 땐 뜨끈하고 고소한 들깨 칼국수가 떠오른다.


전날 밤, 마른 표고버섯을 물에 담가 불려 놓는다. (불린 물도 사용한다.)


미역을 엄지 한 마디 정도 물에 불려 놓는다.

멸치 육수를 낸 후, 쯔유, 국간장, 청주, 멸치액젓, 새우젓을 넣는다.

물에 불린 미역을 잘게 썰어서 넣어준다. (나는 약간의 미역이 주는 감칠맛이 좋다.)

불린 표고를 썰어넣고, 마늘을 편 썰어 넣는다.

표고 가루를 조금 넣어준다.


우동면을 익혀서 넣어준다.

파와 고추를 편썰어 넣고, 들깨 가루를 한 사람당 한큰술 정도의 양으로 넣어주고 잠시만 끓인 후 불을 끄면 된다.



* 유튜브 <정위스님의 채소 한끼> 중 '들깨 칼국수' 편을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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