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아 Mar 15. 2024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다

명란비빔밥

집에서 차로 약 8분 거리에 있는 한살림 매장에 거의 하루 걸러 출근 도장을 찍으며 장을 본다. 그러다 보니 매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도 점점 친근함이 생겨난다. 내가 주로 사가는 품목들을 아시다보니 내가 무슨 음식을 어떻게 해먹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꽤나 많이 아신다.

"오늘은 카레 해드시려나봐요."

"오늘은 다른 종류의 빵을 만들어 보시려나봐요."

'네' 라고 간단히 답하지만, 내심 그런 작은 관심이 감사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살림에 장을 보러 갔다. 일요일 즈음에 채소 전골을 만들어볼 생각이라, 거기에 들어갈 재료들을 한가득 골라 담았다. 연근, 배추, 미나리, 느타리 버섯, 두부... 하나 둘 쌓여 가면서 장바구니가 묵직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이 친구들로 어떤 요리가 나올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계산대에 장바구니를 올려놓고 나자, 계산대에서 일하시는 분의 분노에 찬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원래도 하얬던 얼굴이 더 새하얗게 보였다. 항상 미소짓던 입꼬리가 오늘은 앙다물어져 있었다.

"어느 조합원님이 퀵을 보낼 테니까 이런저런 물품들을 보내달라고 하시는 거에요. 아니, 매장에 하루에 한 두개 들어오는 물품을 그렇게 맡아놓은 양 보내달라 하시면, 매장에 오시는 다른 조합원님이 못 사가시잖아요. 게다가 여기가 무슨 퀵 서비스로 물건을 보내주는 곳도 아니고..."

매장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느껴져 화가 나고 지치는 모양이었다.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직원분의 가빴던 숨소리가 떠올랐다. 나도 언제였던가 합당한 배려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씩씩거려 했던 경험도 떠올랐다. 그렇게 화가 나면, 무엇보다, 훅 피곤해져서 싫었다. 내가 화가 난다는 감정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남편은 나에게 일단 큰 호흡을 열 번 하라고 말해주곤 했다. 집중을 해서 천천히 큰 호흡을 하고 나면 힘든 감정이 가라앉았고, 그러고 나면 가끔은 그 상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떠오르기도 했다.


집 앞에 주차를 한 후, 차 안에 앉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가 머뭇했다.

'바쁘실텐데, 괜히 내 전화 받는다고 방해만 되는 거 아닐까.'

'내가 오지랖인 건 아닐까.'


그래도 나라면 누군가 나의 감정에 마음써 주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남편의 관심이 나에게 힘이 되듯이.

그래. 이런 저런 걱정을 하지 말고 그냥 해보자. 도움이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다시 전화기를 집었다.


"안녕하세요. 한살림 00 매장입니다."

조금 전 뵈었던 직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부들거리는 듯한 느낌이 약간은 깔려 있는 듯 했다.


"안녕하세요. 저 방금 전에 매장에 들렀던 000 조합원인데요, 음... 호흡을 크게 천천히 열 번만 하면 좋으실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전화 드렸어요..."

하핫... 나도 모르게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전화기 넘어에서 기분 좋은 웃음 소리가 들렸다.

"호흡 열 번이요? 네.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부글거렸던 그 분의 마음이 밝은 쪽으로 전환되는 게 느껴졌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진심을 담아 그 분에게 말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백미러로 나의 눈을 보며 나에게도 말해주었다.

"오늘 엄청나게 행복한 하루를 살자."


======


< 명란 비빔밥 >



명란에 양념을 해 놓는다. 한시간쯤 전에 미리 해 놓으면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져 더 맛있는 것 같다.

양념은 다진 고추, 다진 마늘, 다진 통깨, 고추가루 약간, 참기름 좀 많이.


밥에 다진 부추를 얹고, 명란 무침을 얹고, 그 위에 달걀 노른자.

우리는 흰자가 아까워서 그냥 달걀 후라이를 얹었다.


명란으로 만드는 레시피는 대부분 간단하면서도 감칠맛이 나서 너무 좋다.



작가의 이전글 그 모든 것에 감사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