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김 그리고 감자달걀 샌드위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열심이었던 우리 부부는 토요일이 되자 나들이가 하고 싶어졌다. 어디를 가볼까.
"오랜만에 이케아에 구경하러 다녀올까요?"
안 그래도 몇 달 뒤에 이사할 예정이니까 이케아에 가서 이런저런 것들을 눈에 담아두면, 막상 이사했을 때 우리에게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를 좀더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좋다. 가자!!
나는 이번 나들이에 있어서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바로, '나들이 간 그 곳에서 내가 만든 도시락을 먹는 것.'
이유 1.
정말 먹고 싶은 무언가를 사먹는 거야 얼마든지 좋다. 어느 음식점의 음식이 먹고 싶다거나, 어느 메뉴가 먹고 싶다거나 할 때 그 음식을 사먹는 것은 만족스럽고 기쁘다. 근데, 그저 어디를 갔는데 배가 고파져서 무언가를 먹긴 먹어야 되기 때문에 음식을 사먹는 상황은 싫었다. 소중한 우리의 돈을 어디에다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나 나름대로 진지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유2.
우리 부부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아서 몸이 집밥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외식을 하고 나면 십중팔구 몸 어딘가가 불편해졌다. 얼굴에 뾰드락지가 나기도 하고, 위가 더부룩하거나, 변비 혹은 설사가 생긴다거나, 신장이 있는 허리 뒤쪽이 뻐근해진다거나, 밤중에 자꾸 소변이 마려워져서 안 가던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 한다거나, 아니면 그냥 뭔가 좀 피곤하거나. 사실 밖에서 파는 음식들은 대부분 간이 세서 한 입 먹는 순간 어머! 할 정도로 맛있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먹은 후에 자꾸 몸의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 패턴에서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어졌다.
이케아는 많이 걷게 되는 곳이니까 두가지 메뉴를 싸가면 좋을 것 같았다. 밥 종류 하나와 빵 종류 하나.
주먹밥과 감자달걀 샌드위치를 싸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나들이를 가자고 한 토요일 아침. 나는 마음먹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행히, 잠자리에 들기 전에 표고버섯 우린 물에 현미쌀을 담가 아침에 완성되도록 예약해 놓았고, 샌드위치에 들어갈 마요네즈는 전날 저녁에 미리 만들어 놓아서 이 두 부분은 아침에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밥솥에서 덜어서 식히고,
시금치 데쳐서 양념하고,
당근 잘게 채썰어서 볶고,
불려놓은 표고버섯도 얇게 썰어서 양념하면서 볶고,
감자 삶고,
달걀 삶고,
감자 껍질 벗겨서 으깨놓고,
삶은 달걀 썰고,
만들어놓은 마요네즈와 소금, 설탕과 사과농축액 한 큰술을 더해서 버무리고,
거기다 가기 전에 먹을 아침 식사 준비까지...
통밀빵 만들고,
샐러드 만들고,
드립 커피 내리고...
다시 주먹밥으로 돌아가 준비해 놓은 시금치와 당근과 버섯에 설탕을 조금 더해서 밥과 함께 버무려서 김에 싸서 꽉 쥐어 봤는데, 김 앞뒤로 밥이 뿌직 삐져나왔다. 엄마는 밥을 김에 싸서 한 손에 꽉 쥐고 나면 예쁜 주먹밥이 딱 나왔던 것 같은데... 기억처럼 쉽게 되지가 않았다. 주먹밥은 몇 개 만들다 포기하고, 밥을 그냥 반찬통에 담고, 가서 밥에 김을 싸먹을 수 있도록 김을 따로 챙겨갔다.
마실 물 500ml 두 통과 탄산수 한 통을 챙기고, 엄마가 쓰시던 소풍용 플라스틱 숟가락도 넉넉히 챙겼다.
나로서는 굉장한 챌린지였다.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도시락 만드느라 지친 나를 조수석에 앉히고 운전은 남편이 했다. 한 시간 반쯤 뒤에 이케아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출발 전에 아침식사를 했음에도 벌써 배가 출출해졌다. 차 안에서 밥과 김을 꺼냈다. 한 입 먹어본 남편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맛있는데?"
마른 표고버섯을 우린 물로 밥을 지었더니 밥이 참 향기로웠다. 거기에 시금치와 당근과 양념해 볶은 표고의 향이 더해지고 거기에 갈색 설탕이 가미되자 전체적으로 굉장히 풍미가 있었다. 김과 참 잘어울렸다.
이케아를 한 바퀴 천천히 도는 데에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걸어서 그런지 차에 돌아오자 또 허기가 졌다. 이번엔 샌드위치를 먹을 차례였다. 감자달걀 샐러드가 간이 딱 맞았다. 사과농축액 한 스푼이 아주 약간의 신맛을 내주었을 뿐 아니라 설탕만으로 간했을 때보다 좀 더 풍성하고 깊은 단맛을 내주었다. 식빵에 얹어 먹으니 맛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싸간 음식을 남김없이 모두 먹었다. 가득가득 채워간 반찬통들이 싹 비워진 모습에 기분이 좋아져서 자꾸만 바라보았다. 도시락 좀 싸가서 먹은 게 뭐 대수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무기력했던 내가...
-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을 했고
- 원하는 바를 이루려고 노력을 했고
- 결과를 누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의 마음에도 힘이 싹트고 있다' 라는 게 내 손 안에 가볍게 쥐어진 두 개의 텅빈 스텐 반찬통의 의미였다.
작은 성취가 내 마음 속에서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