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관찰은 ~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공부하기싫어병을 앓고 있는 환자다. 처음엔 장난으로 시작했고, 그 장난이 어떤 형태든간에 글이라는 것을 쓰게 할줄 알았다. 그리고 그 장난같고 잡스런 글이 학문적 글쓰기로 이어질줄 알았다. 그런데 말을 하고 글을 쓰니 그것이 진실이 되었고, 이제는 가상의 질환이 현실을 진단하게 되었다.
몇 주 전, 지난 2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선배를 축하하는 모임이 있었다. 선배의 축하모임이 나의 징징모임으로 변질된 것은 2차부터였다. 다행히 3차에서 jmt급 칵테일을 접한 직후로는 그 입을 다물 수 있었다.
당시 함께 했던 선배 중 하나는 해당일 이후 돌아오는 주중에 꽃을 보냈다. 나는 오아시스에 꽂힌 꽃다발을 만 하루동안이나 방치해두는 나쁜짓을 했다. 다른 선배는 학사일정이 담긴 학교 다이어리를 선물(이자 경고로) 주었다. 3월하순인 지금까지 나는 그것을 펼치지 않고 있다. 모임일자 즈음 생일이었던 선배에게 생일선물로 뭘 원하냐 물어보니 나의 학위논문이라는 답이 왔다. 그건 내년 선물이지 않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 주변에는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도 한다. 내가 요청만 하면 어떤 페이퍼가 적합할지 추천해주고 어떻게 분석틀을 예쁘게 뽑아낼지 고민해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현재 나는 그들과 정상적인 교류를 하지 않고 있다. 학술적 활동은 석학들과의 토의·토론에서 비롯되며 강화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즉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의지의 문제인가?
나는 스스로를 박약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세상 여린척 하지만 (나는 주변인들에게 줄곧 말한다: “저는 멍청 그 잡채에요“, “왜 저는 이것밖에 못할까요”, “어휴 이정도뿐인걸요” etc.) 속으로는 언제든 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안해서 그렇지 어? 쓰기만 써봐 어?!
그래서 나는 나의 이 게으름과 무기력함을 질환 탓으로 돌리고자 하였다. 내 의지가 아닌, 사회·환경·질환의 탓. 즉, 내 탓 아님~
그 간절함으로부터 이 글들이 빚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