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노출로 인한 모국어 능력 손실, 걱정하지 마세요
언어 교육에 관심이 없는 부모라도 ‘언제부터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기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영어 공부가 평생의 숙제가 되어버린 시대, 어릴 때일수록 외국어를 익히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사실도 이제는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아이가 뒤쳐지지 않도록 최대한 빠르게 영어 노출을 시작해볼까 싶다가도, 아직 한국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아이에게 영어를 노출하기 시작하면 혹시나 모국어 발달에 문제가 생길까 고민되기 마련이죠. 오늘은 이러한 부모님들의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생애 초기 외국어 노출이 모국어 음소지각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수적인 능력은 바로 발음을 구분하는 능력, 즉 음소지각능력입니다. 언어를 습득하는 단계는 음소를 구별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죠. 생후 6개월 아이의 음소지각능력을 측정하면 13, 16개월의 음소지각능력을 예측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취학 아동이 되었을 때의 어휘력까지 예측이 가능합니다. 언어 발달 전반에 있어서 음소지각능력은 튼튼한 기반이 됩니다.
언어 습득 단계: 음소구별 → 단어 경계 파악 → 단어 구별 → 단어 학습 → 문법 학습
이러한 음소지각능력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생후 10개월 전후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모국어에 대한 구별이 강화되는 반면, 외국어에 대한 구별은 감소하면서 모국어 체계에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적절한 방식을 통해 외국어 소리를 단기간 노출시켜주는 것만으로도 해당 언어에 대한 음소지각능력이 유지된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외국어 노출을 시켜주는 것이 모국어 음소지각능력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능성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먼저 첫 번째 가능성은 외국어에 노출되는 시간만큼 모국어 노출이 감소하기 때문에 모국어 음소지각능력에 악영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여러 부모님들의 우려사항인 것이죠. 한편 또 다른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언어 발달 초기에는 대뇌의 가소성(plasticity)이 매우 크기 때문에 모국어 음소지각능력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아동발달심리연구실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가능성 중 무엇이 사실인지 실험을 통해 밝혀냈습니다. 연구팀은 9~10개월 아이들을 대상으로 1회 25분씩 주 3회로 총 4주간 영어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 집단(세션을 진행한 집단) 9명과 통제 집단(세션을 진행하지 않은 집단) 13명의 한국어 음소지각능력을 비교하여 외국어 노출이 모국어 음소지각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내려고 한 것이죠. 4주 동안의 세션이 끝난 후, 연구팀은 한국어에만 존재하고 영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카] 발음을 구별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기대 응시 패러다임을 사용해 아이들이 한국어의 음소를 구별할 수 있는지 확인한 것입니다.
실험 결과, 실험 집단과 통제 집단 간의 유의미한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9~10개월 영아가 외국어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한국어 음소지각능력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죠. 결론적으로 모국어 노출보다 외국어 노출이 더 많은 것만 아니라면, 생애 초기에 외국어 노출로 인한 모국어 능력 손상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참고문헌
최미혜, 최영은 "초기 음소 지각 능력 발달에서 입력 언어의 역할 탐색" 언어과학 21.2 pp.131-150 (2014) :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