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하 Sep 05. 2023

닫는 글

1%의 금


Microsoft Bing Image Creator

닫는 글


 인터넷에 글을 정성을 다해 작성하며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글을 마무리하고 한번 읽어보았지만, 처음 예상했던 만큼의 완성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는 아쉬움과 함께 자신감 부족이 스미어들었습니다.

어느 날, 샌드박스 네트워크에서 강의하시는 김미경씨의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그녀의 조언이 생각났습니다. 김미경씨는 문제나 상황을 항상 좁은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결국 우리의 시야를 제한하게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때로는 자신의 위치에서 멀어져, 더 넓은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힘든 순간에는 마치 넓은 하늘에서 구름처럼 떠다니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면, 그 상황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살아가며 경험하는 여러 일들 중, 세 갈래로 머리를 땋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머리를 땋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때로는 한 부분의 머리카락이 너무 두툼하게 묶이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로 너무 얇게 묶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완전히 땋고 나면, 그것은 여전히 땋은 머리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처럼 삶의 여러 순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각의 경험과 시도가 합쳐져, 결국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되는 것이죠


 제가 블리자드, 라이엇, 게임프리크와 같은 세계적인 게임 개발사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대형 회사에서 일해본 사람들의 눈에 제 글과 이력은 어떻게 비치게 될까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제 경험이나 노력이 그리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떠오른 약간의 불안감일 것입니다. 그러던 중, 2013년 7월에 방영된 SBS의 '힐링캠프'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방송에서 법륜스님이 순금에 관한 깊은 뜻을 담은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났죠.

100% 순금 앞에서는 99%의 금이 마치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99%도 역시 순수한 금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의 삶과 경험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역시 게임 기획자로서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 속에서도 반짝이는 순수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안의 그 1%나마 '금' 같은 부분을 믿고, 그것을 더욱 빛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두 가지 다른 상황에서의 깨달음이 내 마음에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과 게임 기획에 대한 내 생각과 경험이, 얼핏 보면 매우 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그 둘 사이에는 놀랍게도 많은 유사점이 있었습니다. 두 상황 모두에서, 나는 완벽함을 추구하며, 그 완벽함이 자주 내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때의 실망감과 자신감의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김미경씨와 법륜스님의 조언을 통해, 나는 내 삶과 경험을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완벽한 것은 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성장하고, 그 경험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지에 있습니다. 게임 기획을 하면서, 나는 항상 나만의 특별한 시각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경험이든 그것이 의미있는 것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그것을 활용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임 기획자는 마치 고대 연금술사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맨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발견함으로써 기본 원소들 간의 관계를 볼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연금술사는 어떤 화합물을 어떻게 조합해야할지 경험으로 알아낸 누더기 조각 같은 법칙들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불완전하고, 어떤 것은 틀렸고, 대부분은 반쯤 주술적이었지만, 이런 법칙들을 활용해 연금술사는 놀라운 일을 해냈고, 진리를 찾는 탐구는 마침내 근대 화학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게임 기획은 그들의 멘델레예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당장 우리에게 주기율표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각 같은 이론과 법칙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이런 이론 중 가장 우수한 것들을 한자리에 모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10년 후, 또는 20년 후 다른 게임 기획자들이 그것을 연구하고, 생각해보고, 활용해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했는지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전 27화 자신만의 시각과 생각하는 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