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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하 Sep 18. 2023

글을 게임으로 만들어볼까요?, 한국형 스토리 중심 게임

'검은방'에서 '스토리타코'까지, 스토리텔링의 미래를 보다

Microsoft Bing Image Creator

 '회색도시'는 2013년 7월에 출시한 게임으로 검은방 시리즈의 제작진이 재결성한 팀이 '4:33'에서 개발 및 유통하였습니다. 장르는 서울 강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스릴러로, 총 4부작으로 이루어진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면서 단서를 찾고 범인을 추리해 내는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스토리 진행 시 '필름'이라 불리는 '활동력' 포인트 소모를 요구하며, 노멀 엔딩과 트루 엔딩을 포함하여 총 55개의 엔딩이 있습니다. 스토리를 중시한 모바일 게임이기 때문에 매출 구조는 단순합니다. 영화처럼 흘러가는 스토리를 에피소드 단위로 분절내고 이를 진행할 때마다 2~5개씩 소모시키는데, 24시간에 5개씩 무료로 충전되기 때문에 초반에 스토리에 순간적으로 몰입된 유저들은 입맛을 다시며 과금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또한 당시 게임의 매력에 푹 빠져 진행하다 '필름'이 부족함에 갈증을 느껴 과금하여 23일만에 엔딩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메인 주인공 양시백, 권혜연, 배준혁, 하태성의 시점을 돌아가면서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방식입니다. 어느 순간 서로의 시점이 맞물리게 되며 사건이 전개되게 됩니다. 게임 내에서는 조사, 아이템 사용, 아이템 전달과 같은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텍스트 중심의 게임이 지루해지지 않도록, 적절한 시점마다 미니게임들이 녹아있습니다. 이러한 미니게임에는 터치, 누르기, 두드리기, 긋기, 금고 조합 맞추기, 락픽을 사용한 문 여는 방법, 그림 칠하기, 조각 맞추기 등이 포함됩니다.

회색도시 for KAKAO

 2014년 10월, 4:33은 '회색도시 2'를 출시했습니다. '회색도시'의 프리퀄 작품으로, 12년 전 '범죄와의 전쟁' 중반에서 시작해 어떻게 1편의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그립니다. '회색도시'에서 아쉬웠던 과금 요소 및 업데이트를 보강하기 위하여 '월간 연재' 시스템을 채택하였습니다. 2개의 에피소드를 먼저 출시하고 나머지 4개는 매달 첫 주에 하나씩 업데이트되는 방식을 사용하였으며, 마지막 에피소드는 2015년 2월로 긴 업데이트 스펙은 아니었습니다. 베드 엔딩을 100개에 가깝게 다양하게 설계하였기 때문에 다회차 플레이를 강조했습니다. 이전 버전에서는 주인공 넷이 각각 '격투', '탐문', '통찰', '대입' 같은 특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기능은 최신 버전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제작자 '수일배'는 특기를 활용하기 위해 억지로 특정 상황을 구성해야 해 연출상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임기응변'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선택의 결과에 따라 스토리가 다르게 펼쳐집니다. 반면, 첫 번째 버전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데 중점을 둔 특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진실을 숨기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플레이어는 대화 중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될 때, 화면을 스와이프하여 대화를 중단하거나 위기를 넘길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선택하게 되면,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되며, 실패하면 바로 배드 엔딩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게임 연출이 강화되어, 심장 박동을 나타내는 지표가 화면에 표시되어 진행됩니다. 플레이어가 잘못된 대답을 하거나 침묵을 지키면, 심박수의 진폭이 커지고 배경음악이 급박해져 플레이어에게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안타까운 점은, 실제로 글과 상황을 즐기는 플레이어는 '게임'에 돈을 쓰기를 망설입니다. 그러므로 잘 만든 게임이더라도 과금에 연결되기 어렵습니다. 출시 초기에는 55,000원 VIP 패키지가 너무 비싸다며 불만을 토하는 반응이 많았으나, 완결 시점에는 비싼 값 한다는 평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호평과 별개로 흥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전작보다는 플레이타임이 매우 길고, 투입된 성우 수는 주조 단역 포함해 28명이며, VIP 특전까지 있어 캐스팅 관련 예산이 많이 나갔을 것이라는 평이 있었으며 전작의 퍼블리셔 카카오 게임즈와 이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홍보에 불리하였습니다. 결국 '회색도시2'는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해 개발팀은 해체되었습니다.

4:33 '회색도시 2'

 이런 '회색도시' 시리즈를 개발한 개발팀 '알테어'는 '검은방' 시리즈의 제작진입니다. '검은방' 시리즈는 2010년도 이전에 깊은 팬층을 가진 스토리 게임이었으며, 'EA 모바일 코리아'의 첫 오리지널 작품으로서

2008년 9월에 '밀실탈출: 검은방', 2009년 9월에는 속편 '밀실탈출: 검은방 2', 그리고 2010년 5월에 '밀실탈출: 검은방 3'가 출시되었습니다. 당시 모바일 업계의 환경이 지금과는 다르던 때, 2011년 9월 '밀실탈출: 검은방 4'는 KT, LG, SK, 올레마켓, 오즈스토어, 티스토어 등 여러 마켓에 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12월에 모든 '검은방' 시리즈 서비스가 중단되었다는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검은방' 시리즈는 밀실에 갇힌 인물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비밀이 드러나고, 범인을 찾아내 탈출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시리즈 내에서 죄를 지은 이나 극한 상황에서의 선택으로 인해 문제에 휘말린 인물들이 범인의 위협 아래 탈출을 시도하는 내용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케 하며, 스태프 롤에도 '크리스티'의 이름이 자주 등장합니다. 추가로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그린가 살인사건', '셔터 아일랜드'와 같은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오마주로 삼아 작품 내에서 참조하고 있습니다. 게임에서는 여러 퍼즐을 풀게 되지만, 선택에 따른 다양한 엔딩과 스토리의 진행에 중점을 둔 구성이 특징입니다.

추리 게임과 방탈출 모바일 게임 중에서 '검은방'의 인기를 능가하는 게임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회색도시'의 흥행 실패와 '하얀섬'의 부진 이후, '검은방'의 그 절정의 인기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그 시절을 잊지 않고 팬으로 남아있습니다.

스토리타코 '메이데이메모리'

 최근 게임업계에는 극작과 출신들이 스토리 기획자로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방송국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어려움을 겪어 정규직을 찾는 분들도 있고, 대학을 졸업한 시점부터 게임업계로 진출하겠다는 꿈을 품은 분들도 많습니다. 가끔 이력서를 살펴보면 '검은방'이나 '회색도시'에 영향을 받은 분들도 있습니다. 2018년 설립된 개발사 '스토리타코'는 '여성향' 게임을 중점으로 하며, '인터렉티브 스토리' 게임이 주력입니다. 이 회사는 '파트너쉽 퍼블리싱'을 주도하고 있으며, 협력사에서 기획 및 원안을 제공하면 개발, 마케팅, CS, 퍼블리싱 등을 담당하여 게임을 출시하는 방식으로 협업합니다. 자체 퍼블리싱 체계를 통해 다양한 게임을 유통하기 때문에 게임의 퀄리티가 천차만별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대체로 '볼만하다'는 의견을 받고 있습니다. '스토리타코'의 작품은 주로 여성이 주인공이며, 여러 '공략 캐릭터'들과 함께 인터렉티브 선택지를 통한 스토리 진행이 특징입니다. 큰 메인스토리와 공략 캐릭터들의 서브스토리가 함께 전개되고, 각 게임마다 독특한 배경 설정이 부여됩니다. 초기 히트작 '위험한 그놈들'은 좀비 아포칼립스물, '미스틱 코드'는 어반 판타지물, '퀸즈 넘버'는 아메리칸 드림풍 느와르물, '메이데이 메모리'는 사이버펑크 탐정물, '블러드 키스'는 뱀파이어와 인외존재물, '킬링 키스'는 BL 느와르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23년 신작 '위험한 지배'는 인간형 식물을 공략 캐릭터로 설정하였으며, '금지된 숲의 밤'에서는 펠리르, 레비아탄 같은 신화 속 괴물의 설정을 차용하였습니다.

'사이버펑크 2077'이 화제가 되었던 시기에, '메이데이 메모리'라는 사이버펑크 장르의 게임이 텀블벅에서 203%라는 높은 달성률을 기록하며 장르의 다양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2022년 전혀 예상치 못한 타겟과 장르가 태동하고 사랑받는 것을 보며, 아직 알지 못하는 게임들이 많다고 느끼고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크래프톤 '눈물을 마시는 새'

 과거에는 스토리만으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 '스토리'만으로 게임을 개발하기에는 리스크가 커졌습니다. 대한민국의 판타지소설 대표 작가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와 같은 수준이 아니라면, 텍스트만으로 투자나 개발을 결정하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스토리를 강점으로 게임화하고 싶다면, 2000년대 후반의 '검은방' 시리즈, 2010년대의 '회색도시', 2020년대의 '스토리타코' 등 '텍스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탐구하고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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