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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끄고릴라 Mar 11. 2023

상처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잘 울었어야 했다. 제대로 슬퍼했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상담 선생님을 만나

두세 시간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그렇다.

나는 마음에 난 오래된 상처를

아무렇지 않은 척 잘도 덮어두었고

그 덕에 상처에서 고름과 진물이

흘러나오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었다.


마흔이 되며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상처들이

이곳저곳에서 아우성을 질렀던 것일까?

젊을 땐 듣지 못한 소리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통스럽지만 고맙다.

그동안 그렇게 내 안에서

많은 신호음을 보냈었을 텐데...

왜 그리도 무시한 채 살아온 걸까?


이제라도 반응해 준 내가

참 기특하다. 




잘 울었어야 했다.

제대로 슬퍼했어야 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입 밖으로 내뱉었어야 했다.


그러나

죽을힘을 다해 

입을 꾹 닫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솟아오르는 감정을 누른 채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억지 미소가 어느 순간 진짜 미소로

둔갑을 하고 나의 오감을 마비시켰다.


그러다 보니

내 장점이 잘 웃는 것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상이 참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덮어두었던 나의 상처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더 두었다가는 잘라내던가

죽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던 걸까?


이런 내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를 창조한 분께서

돕는 사람을 보내셨나 보다.

참 우연히 만난 상담 선생님.


나는 사회복지사이자 상담사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상담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위치였지

내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올 거라는 생각도

1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상담 선생님은 나의 깊은 내면을 보셨고

안타까우셨던지 무료로 상담을 해주고 계시다.

평생 살아오면서 이러한 은인이자 

인생의 멘토를 한 명이라도 만난다는 것은

참 축복된 일이다.



내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딱 한 가지 감사하는 것은

만남의 축복을 위한 기도를

하루도 빠짐없이 해주셨다는 사실.




그 덕분에

오늘도 나는 엄마로 인해 울고

또 엄마 때문에 웃어본다.



내가 내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기를

그토록 원하듯이

나의 엄마도 나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고군분투하셨겠지.


엄마의 상처는 나의 상처보다 

더 깊고 오래되어 

대를 거듭하여 상처가 대물림되어

더 심각한 증상을 낳은 것일까?

그래서 엄마의 성격마저 

차갑고 싸늘하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이제는 엄마를 이해해 보려 한다.

처음에는 미워하는 것조차

딸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 여겼기에

속에서 올라오는 미움을 토해내지도

못하고 우울증만 심해져 갔는데...


이제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후로

미우면 밉다.

싫으면 싫다.

느껴지는 감정 그대로 토해 내보다 보니

아주 조금씩 연민의 감정도

고개를 든다. 아직 어색하지만 말이다.



억지 텐션,

억지 미소,

이제 그런 거 말고


가장 나다운 표정,

가장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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