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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룸 May 18. 2024

세상 어디에도 없는, 어디에나 있는 작은 방

PLACE : 장소 01 - 휴의 갤러리, 런던

새로운 시리즈 <PLACE : 장소>. 기억에 남은 특별한 장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꽤 먼 거리까지 오가는 시간여행이 될 것 같네요.  


캠든마켓, 런던


2007년, 런던 캠든마켓 안에 작은 사진 갤러리가 오픈했다. 갤러리라고 하지만 영국 관광 사진 판매점 같은 곳이다. 주인장 Hugh 휴는 중국계 영국인 사진가였다. 그의 첫 번째 갤러리는 코벤트가든에 있었는데, 1층은 전시와 판매 공간, 지하에는 암실이 있었다. 휴는 주말마다 코벤트가든 광장으로 나와 관광 사진을 팔았다. 그럭저럭 장사가 잘되자 2호점을 캠든마켓에 열었고 거기에 새로운 직원이 필요했다. 오랫동안 휴의 갤러리에서 일한 올리비아는 나와 엘런을 휴에게 중개했다. 엘런, 올리비아와 나는 단짝이었다. 캠든의 갤러리에서 엘런이 3일, 내가 4일 근무하게 되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혼자 일하고 코벤트가든의 본점에 가서 정산한 뒤 일당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기본급에 판매수당이 붙었지만 그래봤자 최저 시급 정도였다.      


Hugh 휴

이 일의 좋은 점은 하루 종일 혼자 있다는 거였다. 휴는 코벤트가든에 있다가 가끔 재고를 채우러 불시에 오곤 했다. 이른 아침 나는 24번 버스를 타고 캠든역에 내렸다. 먼저 카페 네로 Nero에 들려 2.75 파운드인 모카라테를 샀다. 갤러리에 도착하면 음악을 틀고 청소를 시작했다. 검정 사진액자는 먼지가 잘 보이기 때문에 자주 털어야 했다. 손님이 와도 내가 별로 관여할 게 없었다.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정도였다. 타워브리지, 빅벤, 밤의 런던아이, 스톤헨지 같은 영국의 명소가 담긴 직관적인 관광 사진들이 잘 팔렸다. 그중에는 한때 예술을 진지하게 탐색했던 휴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그런 예술 사진들은 거의 선택받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마켓 안의 아시안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주로 볶음밥이었는데 “고수는 빼달라”고 반드시 주문해야 했다. 


오후 시간은 오전보단 손님이 좀 있는 편이었다. 5개월 일하는 동안 인상적인 손님이 몇 있었다. 첫 번째는 영화에 관심 있는 IT 직군의 인도 청년이었다. 본업이 아닌데도 영화 투자까지 받은 전력이 있었다고 해서 한번은 밖에서 만나 밥도 먹었다. 가장 치를 떨었던 손님은 내게 다른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고 전화번호를 받아 가서 폰섹스 전화를 걸었던 미친 영국 남자였다. 다행히 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황급히 전화를 끊은 기억이 난다. 몸이 떨리고 분이 나서 갤러리 맞은편 기념품을 팔던 친구에게 씩씩거리며 말했더니, 친구는 그럴 땐 욕을 해주고 끊으라고 조언했다. 내게 50파운드 위조지폐를 준 사기꾼도 있었다. 받는 순간 지폐의 질감이 이상했는데 정신없이 놓치고 말았던 씁쓸한 기억이다. 끝으로 기억나는 손님은, 근무 마지막 날 와서 가장 비싸고 큰 캔버스를 사간 영국 아가씨다. 전에도 몇 번 와서 그 캔버스에 눈독을 들였는데 ‘엄마 집에 걸어드리고 싶다’라며 거금을 냈다. 덕분에 마지막 근무일에 최고 매출을 찍었다.      

휴의 갤러리에서의 엘런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일한 5개월이 내게 기억할만한 시간이자 인생의 특별한 순간인 이유가 있다. 돈이 떨어져 일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영국에 대한 흥미도 덩달아 떨어져 이곳에 더 남아있을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다른 삶을 위해 영국에 왔는데 한국에서의 패턴을 반복한 느낌도 들었다. 관계에 지쳤고, 열정은 시들해졌다. 그러던 차에 올리비아의 제안으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가사가 있는 음악은 틀지 말 것. 

근무 첫날 휴는 딱 한 가지를 말했다. 일주일에 네 번,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 일하는 작은 방에서 나는 그의 당부대로 가사가 없는 한 장의 CD를 하루 종일 틀었다. 그 음악은 바로 <묵상을 위한 피아노 연주곡>이다. 찬송가를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한 이 앨범은 런던 북부 끄트머리에 있는 내 또다른 작은 방에서도 쉼 없이 흘러나왔다. 아침에 갤러리 문을 열면 이 연주곡을 틀어놓고 손님이 없을 때 혼자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지금과 이후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가끔은 업무를 마감하기 전에 다음날 일하는 엘런에게 짧은 편지를 쓰곤 했다. 메모지에다 그날의 단상 같은 걸 써서 액자 사이에 두면 다음 날 엘런이 출근하여 받아볼 수 있었다. 그다음 날이면 나는 엘런의 답장을 받았다. 종교에 회의적이던 엘런도 자신이 근무하는 날 이 CD를 틀(들)었다. 그녀는 이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이따금 말했다. “이 음악은 너무 슬퍼.”, “음악 너무 좋은데, 대체 무슨 곡이야?” 내 내면의 정서로 가득 채운 갤러리에서 엘런과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음악을 듣는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 근무일이 되자 휴는 내게 이 음악 CD를 두고 갈 수 있냐고 청했다. 나는 흔쾌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때를 떠올려보면 나는 이 기간에 일종의 치유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갤러리 일은 노동이라기보단 내게 꼭 필요한 선물 같았다. 규칙적인 일상, 노동 뒤에 주어지는 쉼과 여유, 우리 모두가 예술가라고 말하던 캠든마켓의 사람들, 그리고 교회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던 작은 한인 교회.      

가끔 2007년 휴 갤러리에서의 일들을 생각한다. 내게 특별했던 그 장소가 누군가에게도 따뜻하고 평화로운 기억이었기를 바란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안온을 빌어본다.         

 


에필로그. 


휴 갤러리를 나와서 런던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북유럽의 해가 짧은 겨울을 경험한 여행이었다. 마지막 여행지인 헬싱키에서 남은 짐을 챙기러 다시 런던으로 돌아올 때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의 입국심사에서 걸린 것이다. 직업이 분명치 않은 젊은 싱글 아시안 여성이 혼자 영국으로 들어왔다는 이유였다. 한국으로 돌아갈 티켓은 런던의 내 작은 방 서랍 속에 있었다. 자정이 지난 늦은 밤, 출입국관리소에 앉아서 나는 그들의 조사를 받았다. (“늦은 밤 공항에서” https://brunch.co.kr/@smallandgood/3   참조)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돌아가서의 일은 하나도 알 수 없지만 일단 돌아가자. 캠든 갤러리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충만한 기분으로 살아낸 것처럼, 불안을 밀어내고 오늘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만 기억하자. 돌아온 후로도 예기치 않은 사건과 지긋지긋한 실패의 경험들은 불쑥불쑥 평화로운 일상을 침범했다.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라도 계속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면서 움직였던 것 같다. 인생의 기본값이 평화와 안정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통제할 수 없는 일상에 치일 때, 때때로 나는 조용한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는 갤러리 안에 앉아있던 때로 돌아간다. 절대로 손에 쥐어지지 않는 삶이지만, 어디든 내가 홀로 잠잠할 수 있는 작은 방을 찾아내는 것만은 할 수 있다. 


몇 달 전 구글에서 휴의 갤러리를 찾아보았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팬데믹 무렵에 마지막 흔적을 남기고 더는 찾기 어려웠다.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세상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다. 아직, 계속해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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