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 환자의 세계

by 이고요

어제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다 보니 제법 통화가 길어졌다.


건강하게 잘 지내던 지인은 얼마 전에 대장에 문제가 생겨서 치료 중이었다. 큰 병은 아니지만 난치성 질환이기에 주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가야 했다.

평소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부지런히 먹거리를 해서 가족에게 제공하던 그녀로서 도무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 힘든 큰 시련이었다.


나는 나만 환자인 생활을(20대 초부터 몸이 안 좋았기에) 오래 해 왔기에- 내가 주변에 근심이었다.

오랜 환자 경력이 있는 관계로 나는 이 세계를 꽤 알고 있다. 뭔가 가엽고 비참하기도 하고, 때론 주눅이 들다가 더 많은 시간은 건강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부러움에 몸서리치게 되는 순간.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널뛰기하는 몸의 감각, 불안과 안도, 끊임없이 뒤따르는 두려움과 염려, 그럼에도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믿고 싶은... 불평보다는 감사를 해야 할 거 같은...


연차가 높은 환자이기에 이제 막 이 세계에 진입한 지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안심 또 안심) 임을 잘 안다. 내가 아는 선에서 지인을 위로하며, 이 시간도 새롭게 잘 지내보자고 했다.

같은 환자가 주는 위로는 꽤 강력하다. 그러나 지인이 편입되었다고 기쁠 수 없고 낯설고 이질적인데 마음이 아프게만 느껴진다.


나야 오래 환자로 지내왔기에 건강한 내가 오히려 낯설다. 원래 아프고 원래 환자로 태어난 것 마냥 나의 세계는 꽤 오래 연약하고 부실했다.

강하게 지내던 지인이 내 세계에 들어온 불편한 느낌을 통해 그동안 나뉜 어떤 세계, 경계선이 눈앞에 들어온 듯했다.


자연스럽게 지난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오래돼서 그런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다만 말도 못 하게 힘들었고, 참 울기도 많이 했고. 그럼에도 안 아픈 척 씩씩한 척도 하느라 참 수고가 많았다. 괜찮은 척 보이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도 안 괜찮아서. 별로여서)라는 뜻.

깊은 슬픔과 연민을 따라온다. 만만치 않은 과거였고- 현재이며 미래일 것이다.


오랜 환자 경력이 있다고 해서 현재가 수월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맡은 일(직업)도 경력이 생기면 편해지기 마련인데, 질병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더 괜찮은/건강한 나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과 질병의 큰 차이인 것 같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질병이 주는 유익이 분명 있다.

일정 선을 지켜야 하는 숙명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살 수도 없고, 매번 조심하고 관리하고 조절해야 한다.


이는 [자유]의 개념과는 멀지만, 어느 선의 나를 [유지]하도록 돕기는 한다. 물론 유지를 잘한다고 해서 건강한 사람과 같아지거나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단한 착각이다.

이것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정신건강에 이롭다.


아주 지지부진하게 일정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

[정도: 관리-유지]를 걷고 있는데 이따금 [탈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하는 것]도 하고... 탈선을 통해 자유의 욕망을 풀어놓기도 하지만, 부담과 죄책감도 반드시 뒤 따라온다. 덕분에 다시 나의 세계로 돌아간다. 이게 정상 반응처럼 느껴진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이래야 오랫동안 환자 노릇을 할 수 있다.


지인도, 나도 아픈 환자 배역을 안고 살아간다.

어려운 역할이지만, 하다 보면 이것도 익숙해져 간다.

이따금 절망도 있지만 웃는 날도 있다. 검사 결과가 좋은 날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건강한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행복이다. 물론 살아가며 이런 행복은 모르시게끔 건강하시길 빈다.


역할이 좋지 않아서 서럽고, 서운함은 뒤따를지 몰라도 다른 배역을 탐내지 않고 꾸준히 가야 할 것이다.

이게 진짜 숙명이다. 욕심부터 버려야 이롭다.


경력직 환자의 세계 역시 경력직에 맞게 구상되면 좋겠다. 그에 합당한 대우-보상이랄까? 수고가 많다는 격려 혹 인정을 받고 싶은 걸까? 이를테면 환자직을 잘 끝냈으니 하산하여라~~ 처럼.


다행히, 나는 다른 식으로 선불을 받았다. (완납처럼 느껴지진 않더라도ㅎ)

질병으로 인해 나는 인력이 아닌 신력을 알았고, 삶에 크고 작은 [감사와 깨달음]을 얻고 사니까, 덕분에 내면을 돌보거나 알아차리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꽤 오랜 시간 환자로 느끼고 깨달은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며 든든하게 살아가고 싶다

또한 신의 인도하심과 은혜가 넘치길,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그 뜻? 사실 알다가도 잘 모르겠다. 자신도 잘 모르겠다. 환자 경력이든, 나이가 차곡차곡 쌓여도 앞으로 어떨지 결코 모른다, 모를 일이다.


그런데 선명한 사실이 있다면,

나의 육신은 연약하고 부실한 세계일지 몰라도 나는 단단하다는 것. 그것은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