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거실을 바라보며
한 발짝 떨어져야 보이는 것들
01
나는 우리 집 거실을 좋아한다.
오후 2-3시 정도가 되면
창문으로 햇살이 예쁘게 들어오는데
민트색 커튼과 소파,
그리고 화분에 내리쬐는 햇살이
그렇게 아늑하고 예쁠 수가 없다.
02
오늘은 주말을 맞아 느긋하게 일어나
주방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거실을 바라봤는데
창문을 통해 햇살이 어김없이 예뻤다.
그래서 생각했다.
밥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서 글을 써야지.
03
밥을 먹은 후 노트북을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막상 거실에 있으니
예쁜 햇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햇살 안으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04
노트북을 들고 주방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식탁에 앉아서 글을 쓰는데
고개를 들 때마다
거실에 들어오는 햇살이 아주 잘 보였다.
05
눈으로 보이는 유형적인 것 말고도
한 발짝 떨어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인간관계이든, 소속 집단이든, 내가 처한 상황이든
지나고 나서야, 잃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연세대를 다니던 대학생 시절에
내가 얼마나 찬란한 햇살 속에 있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게 기준이었고, 평균이었고, 당연했고
감사하지 못했다.
06
가끔 멈춰 서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인 것 같다.
한 발짝 떨어져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