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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Free Willy Act

by 캐나다 마징가

얼마 전 아이들과 오랜만에 밴쿠버 아쿠아리움에 다녀왔다. 예전,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돌고래와 벨루가 쇼는 모두 사라졌고, 사람들은 유리창 너머로 유유히 헤엄치는 벨루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미 배워서 알고 있었는지, 이제는 돌고래가 공연하지 않는다고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었다. 그동안 사회적인 논란거리였던, 동물이 더 이상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무대에 오를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강제적인 훈련으로 길들여진 그들의 공연이 사라지자, 우리 눈앞의 존재를 오락의 대상이 아닌,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러나 며칠 뒤,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마린랜드(Marineland)의 벨루가 30마리를 중국으로 수출하려던 계획이 연방정부의 거부로 무산되면서, 유지비 문제로 벨루가들이 안락사의 위기에 놓였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이 뉴스를 통해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안락사 데드라인이 지난 뒤에도 벨루가들은 여전히 살아 있지만, 정부와 시민사회의 염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제 막 변화의 출발점에 섰을 뿐, 아직 도착지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벨루가 가족

2019년 캐나다는 고래와 돌고래의 오락 목적 사육과 번식을 금지하는 연방법인 Free Willy Act를 제정했다. 영화 속 범고래(Willy)와 소년의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동물과 공존을 위해 한걸음 나아가는 좋은 취지의 법이었지만, 법만 제정되었을 뿐, 구체적인 세부 내역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계되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사육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고래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가 큰 과제로 떠올랐다. 이미 인간 손에서 자라온 고래들은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고, 이들을 수용할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노바스코샤 주에서 조성 중인 해양 보호 구역 역시 아직 완공되지 않아, 당장 이 생명들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보살필 것인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는 안락사까지 논의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다.

벨루가 쇼

문득 우리가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시선, 그 수직적 관계가 어쩌면 인간관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사회는 누군가를 평가하고, 통제하고, 동일한 기준에 맞춰 길들이려는 무의식적인 태도가 만연해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상대를 '함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경쟁 또는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수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든 자연과의 관계든, 결국 공생의 의미는 같은 질문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가?"

밴쿠버 아쿠아리움에서 돌고래나 벨루가의 공연이 사라진 자리를 지켜보며, 나는 이것이 단지 전시 방법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의 방식 자체를 재정립하려는 사회의 선택과 노력이라고 느꼈다. 관객을 즐겁게 하기 위해 생명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시대에서, 그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묻는 태도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공생은 상대를 나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지닌 고유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변화가 비록 더디고 때로는 불편함을 동반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전환을 통해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 아닐까.


마린랜드의 벨루가 서른 마리는 오늘도 수조 속에서 생사의 기로에서 자유를 향한 길이 열리기를, 세상이 준비되기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식이 누구의 희생 없이 마련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한때 박수를 보냈던 당신들, 이제는 어떤 관계를 선택하겠습니까?” 그 질문은 자연을 향한 윤리이자, 곁에 있는 사람을 향한 마음가짐에 대한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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