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
우리는 누구나 사회가 정리해 둔 길 위를 걷는다. 그 과정에서 성공이란 무엇인지, 어떤 삶이 행복한지, 어떤 기준이 옳은지에 대해 우리는 늘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고, 때로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기에 이러한 영향들이 무조건 비판의 대상은 아니다.
경험이 쌓여간다는 사실은 분명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그 경험들이 나를 단단한 틀 안에 가두기도 한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사람처럼....어느 순간부터인지 친구들이 더이상 새로울 것도 흥미로운 일도 없다고 말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나 역시 머리 속에 연기나 석회질이 쌓여가는 것처럼, 감정의 결이 무뎌지고 그저 주어진 환경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경험, 정보, 사회적 기대, 주변의 목소리들이 본질 위에 계속 쌓여가는 과정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어느 순간, 무엇이 진짜 ‘나’였는지 헷갈려진다.
최근 Ed Sheeran의 명곡 Perfect 를 들은 후에 이런 주제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 화려한 기교보다 진정성 있는 한 문장을 읊조리는 그의 가사는, 사랑이 물질이나 환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얼마나 깊을 수 있는지를 그리고 본질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생각나게 해 주었다. 삶도 마찬가지로 결국 우리는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것에서 가장 큰 울림을 느끼는 듯 하다. 어릴 적의 나는 무엇을 그토록 좋아했을까. 무엇이 나를 잠 못 들게 만들 만큼 설레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감정은 단순했고, 그래서 더 정확했다. 거기에는 계산도 없었고, 비교도 없었다. 그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의 방향이 자연스레 정해지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 마음을 얼마나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기에 더더욱, 나와 연결되어 있는 주변과 나의 실체를 하나씩 벗겨서 들여다 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론 머스크가 말하는 해체를 통한 본질을 파악하는 방식이 우리의 삶에도 필요한 시기이다. 남이 만들어준 기준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발견한 나만의 첫 원리(first principle)로 돌아가는 일을 통해 나를 기억하고 그 본질이 기준이 된 삶을 가꾸어 나가는 것 말이다.
스테레오타입을 해체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기준을 거부하거나 비판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안에 오랫동안 쌓여온 먼지를 천천히 털어내고, 세상과 타협하거나 오염되지 않은 처음의 나, 가장 본래의 자리를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어쩌면 그 자리는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여전히 조용히 품고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귀 기울이면, 언제나 같은 질문이 남아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너는 무엇을 좋아했니?
그리고 지금도, 그 마음을 진심으로 기억하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