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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Nov 07. 2023

못 들은 척하고 싶은 날도

어느 날 인도 비행.


터번을 쓴 덩치가 엄청 큰 인도인 할아버지가 복도를 겨우겨우 헤치며 뒷갤리 쪽으로 다가온다.

"may I help you?"

응대의 정석 멘트다.

"옷띠"

'???'

"옷띠, 옷띠"

"선배님, 이 분 뭐 찾으시는데 모르겠어요.."

후배와 인도인 할아버지 둘 다 동시에 내 얼굴을 쳐다본다.


"옷띠이"

"hot tea?"

'갸웃갸웃'

이 나라 손님들은 '예스'를 말하면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리고 손가락을 세 개 펴신다.

"three sugar?"

'갸웃갸웃'

이분들은 정말 설탕에 진심이다. 서비스를 하다 보면 꼭 설탕을 3개씩 집어가신다. 심지어 아기에게도 우유병에 분유와 설탕을 같이 타서 주더라. 아니, 당뇨 걱정 안 되시냐고요.


"please be careful. it's hot"

그 할아버지는 설탕스틱 세 개와 홍차가 담긴 종이컵을 받아 들고 좌석 숲을 헤치며 자리로 돌아갔다.


"선배님, 인도어예요?"

"네에. 나마스떼ㅋ"

그 후배도 인도 비행을 몇 번 더 가면 들릴 것이라 믿는다. 인도 사람들의 언어가.






나는 이상한 발음을 잘 알아듣는다. 신입일 때도 선배들이 신기해했다. '영어인 거 같은데 못 알아듣겠어.'라고 하는 말들 내가 들으면 들렸다. 원래도 그랬지만 비행을 하면서 더 잘 듣게 되었다. 나는 인도와 중국 억양의 영어 알아듣기 전문이었고, 동남아시아 사람들과 조선족 그리고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한국어도 기가 막히게 알아들었다.


다른 사람 말을 듣고 해석하는 능력은 하나님이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주신 재능인가 보다. 외국어를 배울 때에도 그랬다. 토익도 리스닝은 시험 공부를 하지 않고 처음 쳤을 때부터 만점이었다. 중국어도 팅리(듣기)가 제일 높았다. 말하기를 잘하면 좋겠는데, 늘 말하기보다는 읽고 듣고 쓰는 걸 더 잘했다.


이런 재능은 면접에서 말할 때는 강점이었지만 정작 일할 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일을 내가 대신해야 하는 상황도 많이 생겼고, 손님들도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그런 손님들의 니즈를 충족시켜 주는 건 내 고과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상 커뮤니케이션을 힘들어하는 그들이 서비스의 피드백으로 칭송레터를 쓰는 일은 없었을 테고, 매니저의 입장에서도 나는 내 담당존도 아닌 곳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처리하는 승무원이었다. 칭송레터를 받겠다고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빨리 메인 서비스 끝내고 내릴 준비 다하고 쉬고 싶은데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손님에게 붙잡혀 있는 내가 답답해 보였을지도.  


어떨 땐 나도 못 알아듣는 척하고 싶었다. 살짝 귀 닫고 흐린 눈을 하고 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승무원이 아니라면, 내가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 누가 나한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있을지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만날 사람도 아니고, 나를 힘들게 하는 진상일지라도 내가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임에 감사했다.


가끔 선배들이 이런 말을 했다.

"후배들은 얼굴에 후배라고 적혀있나 봐. 손님들이 어떻게 알아보는지, 꼭 후배들이 아일(기내 복도)을 지나가면 사이드오더가 넘친다?"

정말 모르는 걸까?


신입, 후배승무원은 손님의 작은 소리도 귀 기울여 잘 듣는다. 하지만 '비행 프러시저'와 '직장 내 사회생활'이 머릿속에 들어오고 나면 '친절'과 '손님'의 자리는 작아진다. 선배승무원들은 비행 중 서비스할 순서에 따라 책임지고 준비해야 하는 일들에 신경이 예민하니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 것이다.

비행기 소음에 장기간 노출되어 청력이 떨어지기도 했겠지. 게다가 왠지 선배가 되면 손님이나 후배의 목소리는 잘 안 들리고, 선배, 매니저의 목소리는 혼잣말도 귀신같이 알아듣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 이런 게 평가는 잘 받는 요령이었나?

가끔은 못 들은 척도 했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들리는 것들은 대부분 사소한 것들이기에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처음부터 팩스콜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얼핏 나를 부르는 것 같아도 '정 필요하면 다시 요청하겠지' 하거나, '후배가 알아서 다시 가겠지'하며 못 들은 척해도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어쩌면 이게 비행 연륜이고 일 잘하는 센스였나 보다.


난 그런 센스가 없어 선배가 되어서도 후배보다 사이드오더를 많이 받는 선배가 되었다. 비행기 엔진 소음에 청력이 덜 손상되었는지 들리는 소리를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힘들면 후배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 있으니까. (후배일때는 아무리 사이드오더가 많아도 부탁할 수 없었다.) 물론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후배들이 알아서 도와주었다. '선배님, 사이드 주세요. 제가 갈게요.'    


안 들리는 척하고 싶은 날도 많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못 들은 척하고 싶은 날도 많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매 비행이 힘들었다.

그렇게 미련한 곰처럼 일했기에 비행 평가가 S등급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비행들이 부끄럽지는 않다.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비행을 하는 것이 내 목표였기에 비행을 잘하는 요령은 없었지만 끝난 뒤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단언컨대 퇴사하는 그날까지 매 비행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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