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하면 할수록 선명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회사가 원하는 이상적인 승무원과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나의 삶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 그리고 언제부턴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고,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승무원의 자질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많다.
긍정적인 이미지, 외국어자격, 체력, 승객을 배려하는 태도, 적극성, 서비스의 전문성, 순발력, 재치, 책임감, 근면, 성실 등등 등등 등등 적다 보니 이런 자질은 승무원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하든 있으면 좋은 자질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승무원 면접을 통과할 수 있는 자질 말고, 승무원으로 비행을 즐길 수 있는 자질은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승무원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의 자질을 말해보겠다.
직접 비행해 보니 밤을 새도 괜찮은 체력 외에
이러 이런 것들이 좀 있었으면... 하는 게 있다.
1. 자신을 예쁘게 꾸미는 것에 대한 관심과 흥미, 약간의 패션센스와 눈썰미 그리고 여기에 타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스스로를 잘 꾸미고 패션센스가 있는 승무원은 손님 한 분 한 분에게도 참 잘 다가간다.
'어머, 스카프가 너무 예뻐요. 손님이랑 정말 잘 어울리네요.'
그리고 나는 누가 그런 말을 하면 그제야 그 사람이 스카프를 매고 있는 게 보이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외모나 겉모습을 신경 쓰는 일을 터부시 했기 때문에 대학 졸업할 때까지도 눈썹정리도 할 줄 몰랐고, 사람을 만날 때도 상대의 착장이나 헤어스타일이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승무원끼리 갤리에서 서로의 화장품 파우치를 흥미 있게 구경하며 신상정보를 공유하기도 하는데 내게 낯선 그 뷰티의 세계는 정말 끝이 없었다. 이런 세계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매 비행이 얼마나 유익하고 즐거웠을까? 화장품은 종류가 왜 그렇게 많은지, 액세서리는 어떻게 그렇게 보기만 해도 어디 건지 다 아는지.. 그나마 다른 승무원들로부터 5~6번 강력 추천받는 필수템만 따라 사도 나는 내 친구들 사이에서는 꽤 잘 꾸미는 사람, 잇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곤 했다.
2. 흔히들 팔방미인이라 하듯 취미부자이거나, 매니아적으로 좋아하는 분야가 적어도 하나 이상
사실 음식과 커피, 그리고 와인에 대한 지식은 회사 내에서 요리나 와인으로 유학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업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 승무원에게 취미라고 하기에는 기본 영역 느낌이다. 한때 나도 외국에 비행 가서 현지의 쿠킹클래스에 참여하기도 하고 소믈리에 수업을 수강해 보기도 했다. 알쓰로 통하는 내게 소믈리에 수업이 어땠는지는... 굳이 언급하진 않겠다만.
그 외에 여행과 사진을 좋아하거나 패러글라이딩, 스쿠버다이빙, 번지점프 같은 모험이나 골프 같은 야외스포츠를 좋아하면 비행 가서 즐길거리는 너무나 넘쳐난다. 어떤 해외 스테이션은 골프를 치러 가는 크루들이 많아 크루라운지에 골프채를 보관해 두고 공유하기도 한다.
미술관이나 전시, 연주회, 뮤지컬 등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유럽이나 미주로 비행을 갈 때마다 도장 깨기 하듯 세계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취향을 위한 목적을 가진 비행이라면 얼마나 즐거울까? 좋아하는 예술가의 공연이나 전시날짜에 맞추어서 그 지역으로 비행을 리퀘스트하는 열정 있는 승무원도 있다.
3. 새로운 친구를 쉽게 사귀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성격
나는 친언니가 한 때 팔로알토에 살았는데, 그때는 샌프란시스코 비행을 가면 그 비행이 힘들어도 언니를 보러 간다는 마음에 즐거웠다. 언니가 뉴욕으로 이사를 한 뒤에는 힘들다고 악명 높았던 뉴욕의 긴 비행시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 비행을 바꾸어서라도 뉴욕에 갈 만큼 자주 가기도 했다. 만약 해외 체류지마다 단골 가게가 있거나, 친척이나 친구, 혹은 다른 의미 있는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행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처럼 설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를 포함한 어떤 이에게는 현지의 모르는 사람과 하루 이틀 보고 친해진다는 건 상상도 못 하는 일이고, 처음 비행한 동료들과 함께하는 여행 또는 액티비티 또한 즐거움이 아닌 일의 연장선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면서 또 혼자 돌아다니는 것에도 별 감흥이 없는 사람도 있다. 물론 간혹 친한 동료와 함께 장거리 비행을 같이 가는 경우도 있으나,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본인이 이런 성향의 사람이라면 승무원이 될 자질이 충분하더라도 비행을 즐기며 할 가능성이 높지 않으니,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할 때 신중 또 신중하라고 하고 싶다.
내게는 비행을 가면 그 도시의 예쁜 카페에 가서 책 한 권 읽는 것이 그나마 소소한 위로와 보상이었지만, 그 또한 체력이 남아있는 날들만 할 수 있었다. 거의 호텔에서 쉬는 게 대부분의 기억.
고백하자면 나는 승무원 자질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비행을 즐길만한 자질은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승무원이 되기 위한 회사가 원하는 자질 말고, 이런 사람이 승무원 하면 정말 놀면서 월급을 받으며 비행하고, 항공사의 직원 복지와 크루베네핏만으로도 평생 뽕을 뽑고 살겠다 싶은 사람의 자질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회사에 봉사하듯 일만 할 것이 아니라면, 내가 정말 그 회사에 다니면 행복할지 꼭꼭 따져보면 좋겠다. 뭐 요즘 아이들은 워낙 현명해서 '입사만 시켜주면 비행기 청소까지 하라고 해도 다 할 수 있다.'는 사람은 없겠지만..
주변에 예쁘게 본인을 잘 꾸밀 줄 알고 긍정적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애정 어린 관심과 호기심이 있는 체력 짱짱인 친구가 있다면 승무원 직업을 추천해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