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맵에 당하다
서귀포에서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자 손목에 차고 있는 애플워치에 진동이 느껴졌다. '집까지 40분'
‘어랏? 티맵은 최소시간 53분인데…?’
평소라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바로 티맵을 켜고 출발했을 텐데, 그날은 모임에 참석하려고 아침에 아이들만 집에 두고 나온 것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남편도 어제 송년 모임이 있어 밤늦게 집에 왔는데 오늘 오전 근무가 있어 일찍 나가는 바람에 너무 오랫동안 못 본 것 같아 빨리 보고 싶어졌다. 갑자기 집에 10분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고 싶었진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 애플워치를 믿고 그 애플워치에서 핸드폰으로 연결된 그 네비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 애플맵이나 구글맵 네비는 쓰면 안 되는 걸 알면서, 무슨 내비게이션인지 확인도 안 하고 따라가다니!
그렇게 나는 나보다 더 제주도 지리가 낯설 이 네비의 안내를 따라 운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구불구불 산길로 들어서서 가고 있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되돌아가는 것이 늦었음도 알았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산속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계획에도 없던 1100 고지도 만났다. 예상치 못했던 산길 드라이브라.. 오늘 모임이 점심 약속이어서 아직 해가 지기 전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각 눈앞에는 나를 홀릴듯한 멋진 풍경도 펼쳐졌다.
평소 나는 운전을 많이 하지 않는다. 20대에는 운전면허를 딸 생각이 없어서 안 땄고, 결혼을 한 뒤 운전이 필요하다는 걸 느껴 겨우 면허를 땄다. 그런 내가 서울에서 운전을 한 경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집에서 회사로 출퇴근을 위해, 그리고 또 하나는 남편 회사에 픽업을 갈 때, 이 두 가지 경로만큼은 정말 택시운전사처럼 잘 다녔던 것 같다. 다른 길은 뭐 장거리 운전으로 고향에 갈 때면 직진만 하면 되는 고속도로 정도는 남편과 번갈아가며 했지만, 어디 새로운 곳에 가거나 놀러 갈 때는 늘 남편이 했다.
그런 상황이니 제주에 이사 와서도 지금까지 내가 직접 운전해서 다닌 곳은 집 주변과 누군가를 픽업하러 공항을 오갈 때, 그리고 제주시내 정도였다. 어딜 가든 길어도 20분 이내의 거리였고 경로는 뻔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운전대를 잡았을 때 애플워치가 알려주는 집 도착 예정 시각과 티맵의 도착 예정 시각에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애플맵의 안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서귀포에서 모임을 하고 다시 제주로 넘어와야 했고,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애플워치가 말하는 집 도착 예정시각은 티맵보다 십 분 이상 빠르게 나왔다. 눈으로 보기에도 운전 거리가 짧았다. 사실 티맵은 평화로를 타고 올라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었고, 애플워치는 그보다 더 제주도 안쪽으로 중심을 가로지르는 한라산 능선을 따라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었던 건데..
왜 그땐 몰랐을까? 왜 그땐 이 경로는 티맵은 전혀 나오지 않는 길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을까? 티맵에서는 최소시간 경로가 53분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었고 최단거리, 티맵추천도 다 같은 경로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솔직히 난 그 순간 '왜 티맵은 이런 빠른 길을 안 가르쳐주는 거지?'라며 오히려 티맵을 의심하고 있었다. 정말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 게 맞다.
그 애플맵은 고도는 계산하지 않는 걸까? 국내에서는 애플맵, 구글맵을 안 쓰는 이유가 있었다. 한국 도로는 한국 내비게이션 말을 들어야 한다.
결국 난 1시간 반 가까이 걸려 집에 도착하였고, 산길을 운전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도착했다는 안도함과 동시에 온몸에 힘이 풀려 급 피로해졌다. 하지만 누가 그러지 않았나? 잘못 들어선 길에서 뜻하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고. 그렇다면 나도 잘못 따라간 네비 덕분에 산길을 따라 서귀포 자연휴양림과 1100 고지를 지나면서 쨍한 겨울 공기를 느끼며 인적이 드문 산길을 드라이브하는 강제 힐링(?)을 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박노해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슬퍼하지 마라 주저앉지 마라
삶에서 잘못 들어선 길이란 없으니
온 하늘이 새의 길이듯
삶이 온통 사람의 길이니
모든 새로운 길이란
잘못 들어선 발길에서 찾아졌으니
때로 잘못 들어선 어둠 속에서
끝내 자신의 빛나는 길 하나
캄캄한 어둠만큼 밝아오는 것이니
오늘의 내가 잘못 들어선 길은, 하늘길을 달리는 듯한 하늘과 맞닿은 산길을 드라이브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