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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Oct 20. 2023

경이로운 날들

요즘 날씨가 너무 좋다. 사실 제주에 온 뒤로 모든 날의 날씨가 좋았다. 비가 매일매일 그치지 않았던 장마에도 빗소리가 이렇게 듣기 좋구나, 시원하다.. 라며 좋아했고, 무더운 여름날 지글지글한 태양도 그 강렬함이 아름다웠다. 가을비 이후로 시원해진 날씨에 나들이하기 너무 좋은 요즘, 새삼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정말 축복이구나 피부로 느낀다.



비바람이 치는 날이든 고요한 날이든, 밤이거나 낮이거나 자연 속에서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더없이 좋았다. 중요한 것은 로저와 함께하는 동안 나는 그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저 함께 즐거워하고 흥분하고 웃었을 뿐이다. - [센스 오브 원더] 레이첼 카슨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걸 보니 내가 나이를 먹긴 했나 보다. 어디 갈 때마다 '우와.. 너무 예쁘다'를 남발하게 된다. 정말 고개만 돌리면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자연에 매일매일 감동을 받는다. 내가 사진을 잘 찍으면 좋겠는데, 사진 찍는 재주가 없으니 늘 눈으로 보는 게 더 예쁘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눈에 담아두고 싶은 욕심에 카메라를 잘 열지도 않는다.



눈으로 보는 것을 비롯한 모든 감각은 새로운 발견과 기쁨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감각은 기억과 인상의 형태로 우리 안에 남아, 내적 풍요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된다. - [센스 오브 원더] 레이첼 카슨



매일매일이 다른 노을, 매시간시간 다른 하늘




학창 시절 내내 하고 싶은 일은 '딴짓'으로 부정당하며 공부만 중요시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으면 직접 커서 돈 벌어서 하라고 했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을 배울지도 모른 채 대학 전공을 선택했고, 졸업하면 어떻게든 적당히 괜찮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야만 했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했다. 여행이든, 쇼핑이든, 공부든, 그것이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려면.

자립 후에는 한국에서 가장 바쁜 도시에서 스케줄 근무를 하면서 바쁘고 정신없이 살았다. 결혼 전까지 휴가 한번 내 본 적도 없었다.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취직해서 직장에 다니라는 말만 들었지 휴가내서 놀러 가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렇게 살면 안 되는 줄 알았다. 휴가는 뭔가 업적을 이루고 나서야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아니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만 살았다.


이런 내게 자신이 나의 지붕이 되어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힘들게 살려고 하냐고.. 지금 일을 계속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생각해 보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해 준 사람이 남편이다.

제주도로 내려오자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남편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기대가 아닌 내 마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덕분에 오랜 시간 외면해 왔던 내 마음은 지금 휴양 중이다.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단 하나.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뿐.   

 


미래를 위해 오늘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오늘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 [러브 앤 프리] 다카하시아유무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차창밖 풍경을 보는데 노을 지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갑자기 눈물이 났다.

 '여보, 나 여보 덕분에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사는 것 같아. 이렇게 살아도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저 예쁜 하늘과 그림 같은 풍경, 그리고 저런 예쁜 꽃들을 볼 때마다 난 커다란 꽃다발을 선물 받는 기분이야.'

풍경에 취해 감동이 벅차올라 또 고백을 했다.

 '그걸 이제 알았어?'

남편은 내 고백에 늘 이런 식이다.

 '웩'

뒷좌석에 앉아있던 삐딱 첫째다. 곧 사춘기겠지.

 ‘왜?’

아직 어린 순수한 둘째, 엄마가 또 사랑고백 했다니까 ‘나도 엄마 사랑해 아빠도 사랑해 언니도 사랑해’ 란다.

첫째가 질세라 ‘나도 엄마 사랑해 아빠도 사랑해 ㅇㅇ이도 사랑해’라고. 그래도 아직은 사춘기 아닌가 보다.



소중한 것을 깨닫는 장소는 언제나

컴퓨터 앞이 아니라 파란 하늘 아래였다. - [러브 앤 프리] 다카하시아유무



'밤의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어떤 책에서 읽은 표현인데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다이어리에 매년 적어두는 말이다.

천 번은 흔들려 본 뒤에야 내가 언제 행복함을 느끼는지 알았다. 물질적인 것으로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의 사랑과 인정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받는 감동에서는 늘 가득 채워진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즐거워하는지도 알았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서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내 안에 복잡한 생각들이 글로 표현되어 정리되는 것,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감상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순간을 공유하는 것..


요즘은 이런 시간들의 연속인 하루하루를 살고 있어 더 바랄 것 없이 마음이 충만하다.

모든 날들이 경이롭다.





당신의 오늘의 경이로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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