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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Jan 05. 2024

눈썰매장은 어디로 가야 해요?

제주도는 눈이 오면 한라산 일대가 천연 눈썰매장이 된단다. 눈 오는 당일은 도로를 통제하기 때문에 갈 수가 없고, 눈이 그치고 하루정도 지나고 도로 제설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난 뒤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면 되냐는 물음에 다들 대답이 두리 몽실하다. 그냥 차 타고 가다가 보면 사람들이 눈썰매를 많이 타고 있는 곳이 있다고...

'네???'

어디를 가든 목적지를 입력하고 네비가 알려주는 경로를 따라가야 하는 초보 제주도민은 당황스럽다. 지도에 ‘눈썰매장’이라고 검색해 본다. 어승생 삼거리 근처에 어승생 눈썰매장이 있다.

'그래, 여기구나!'


겨울이 오기 전부터 사두었던 예쁜 파스텔 색상 눈썰매를 챙겨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출발했다. 네비의 안내를 따라가면서 도착까지 남은 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신난 아이들은 목소리는 더 커졌다. 하지만 어승생 눈썰매장에는 사람들이 이미 많이 몰렸는지 도착하기도 전부터 차들이 밀리기 시작했고, 안전을 위해 출동한 경찰들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승생 눈썰매장 주변은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붐볐고 눈썰매장에도 썰매를 탈 수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썰매를 타고 있었다. 우리 차 뒤로도 차들이 밀려있어 마냥 기다려 볼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냥 집 앞 언덕에서 타기로 하고 실망한 아이들을 달래며 돌아가야만 했다.


산길이라 차를 돌릴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아 오던 길을 따라 계속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길을 쭈욱 따라가다 보니 도로가에 또 일열로 주차된 차들이 많이 있는 곳이 있었고, 그 반대쪽으로 낮은 언덕에 사람들이 한쪽에는 눈썰매를 타고 있었고, 또 다른 쪽에는 눈사람과 이글루를 만들며 놀고 있었다.

그곳은 어승생삼거리보다 훨씬 붐비지 않아 우리도 운 좋게 주차를 할 수 있었고, 다시 신이 난 아이들과 썰매를 들고 그 공간에 합류할 수 있었다.


1. 한라산 중턱 어딘가에 있던 눈썰매장, 2. 신나게 언덕을 올라가는 세부녀


인공 눈썰매장이 아닌 이런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논 게 얼마만일까? 아이들보다 들뜬 남편이 둘째와 같이 썰매를 타기 위해 언덕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첫째도 뒤따라갔다. 나는 신나게 내려올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언덕 밑으로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내려가던 중 누가 옆에서 '어? 저기 애기! 저기 애기~' 외치는 소리에 돌아보니 내 둘째가 남편과 썰매에서 튕겨 나와 뒹굴고 있는 게 아닌가?! 눈으로 덮인 그 언덕은 바닥이 인공 눈썰매장처럼 고르지 않아서 썰매가 어디로 방향을 틀고 내려갈지 몰랐고, 그러다가 튀어나온 부분에서 튕겨 오르는 바람에 남편과 아이는 썰매에서 발사되어 나와 데구루루 구르게 된 것이다.


1. 겁없이 꼭대기에서 내려오다가 구른 아빠와 딸, 2. 자신을 무섭게 한(?) 아빠에게 삐진 꼬맹이


다행히 많은 눈이 내린 두터운 눈밭이라 다치지는 않았다. 놀라서 울던 둘째도 이내 주변의 관심이 민망한지 눈물을 그치고 재미있다며 다시 눈썰매를 타자고 했다. 물론 이젠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는 않고 옆에 조금 낮은 언덕에서만 탔지만 말이다.


1. 다시 신나게 썰매 타러 가는 세부녀, 2. 지쳐버린 아빠와 더 놀고싶은 꼬맹이


다시 보니 언덕 가장 높은 곳은 적어도 초등학생은 되어야 잘 타고 내려올 것 같았다. 우리 집처럼 아이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같이 썰매를 타는 사람도 꽤 있었지만, 아이와 아빠와 함께 타면 무게 때문에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썰매에서 튕겨 나와 구르는 일도 많았다. 다른 집 아이와 어른이 함께 탄 썰매가 튀어나온 곳을 지났는지 갑자기 방향을 바꾸며 내 앞으로 날아오는 일도 있었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나도 그쪽도 모두 즐거워하고 있었고, 이내 곧 육성 웃음으로 빵 터졌다.

누구도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전혀 문제없었다. 동심으로 돌아간 어른들과 몇 번 굴러도 마냥 신나는 아이들 모두가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이 보였고, (나름) 조심해서 눈썰매를 타며 놀았다. 안전요원 없이도 잘 놀았던 옛날 시골 동네 사람들처럼.  


한참을 놀다 지친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러 집으로 가자고 했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나의 로망인 따뜻한 핫초코는 좋은 미끼이기도 하다. 혹시 어릴 적 엄마도 이래서 핫초코를 만들었던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도로 중간중간에 또 눈썰매를 탈만한, 이미 사람들이 눈썰매를 타고 있는 언덕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아, 이러니까 아무도 네비 주소를 말해 주지 않았던 거구나!’

내가 어디에서 눈썰매를 탔는지 그들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다. 그냥 다들 한라산 중턱 어딘가에서 신나게 눈썰매를 탔을 뿐.


누가 제주도에서 천연 눈썰매장을 찾는다면, 나도 이렇게 말해줄 수밖에 없겠다.


'차 타고 가다가 보면 사람들이 많이 타는 곳이 있다'라고.





조금 더 친절히 말하자면 어승생 눈썰매장(혹은 해안동 산 63-43)을 찍고 가서 그곳에서 타거나, 사람이 너무 많으면 그곳을 지나치고 더 가다 보면 1117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얼마가지 않아 또 눈썰매스폿을 발견할 수 있다. (어승생 눈썰매장은 지도에도 나오는 만큼, 따뜻한 어묵을 파는 트럭도 있었고, 썰매를 대여할 수도 있었다.)

물론 다른 방향으로 가도 좋은 눈썰매장을 만날 수 있고 널린 게 눈썰매장이겠지만, 일단 나는 제주시 서쪽에 사니까... ^^;

제주 다른 지역도 한라산 중턱으로 가서 비슷하게 찾아가면 될 듯.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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