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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Mar 05. 2024

깨어나라 개구리야!

겨울, 방학의 기록

선생님이 폭발하기 전에 방학을 하고 부모님이 폭발하기 전에 개학을 한다더니, 드디어 개학을 했다. 개학 며칠 전부터 감사일기에 '개학이 다가와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빈번하게 나오더니, 얼마 만에 되찾은 나의 자유 시간인가?!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맛보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맛이란.




제주의 겨울 방학은 너무 길다. 봄 방학이 없이 1월 초부터 3월 4일 개학까지 50일이 넘는다. 이 긴 방학을 이용해 해외로 나가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목적은 영어연수뿐 아니라 다양한 것 같다. 첫째 아이의 단짝은 한 달간 태국으로 골프연수를 다녀왔다. 제주도에서 유망한 주니어 프로라는데 우리 집 정원에서 보여준 연습용 아이언 샷은 정말 골프초보인 내가 보기에도 정말 멋있었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찾은 그 아이가 부럽기도 하고, 학기 중에도 1교시 수업만 하고 골프연습을 가곤 해서 친구들과의 시간이 많이 없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나의 첫째는 언제쯤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생길까 걱정되지만, 학교 마치고 친구들과 군것질하고 노는 게 제일 좋은 때라 엄마의 걱정은 엄마의 욕심 탓이려니 묻어두고 있다.

 


긴 방학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으면 하루는 금방 지나간다. 월, 수, 금은 남편이 5시 퇴근이라 아침 먹고 치우고 점심 먹고 치우고 빨래 돌리고 청소 좀 하면 남편이 집에 온다. 이런 날은 낮에 도서관에 가거나 가끔은 북까페, 학교 운동장, 산책, 롤러장 등 주변에 아이가 원하는 곳에 놀러 가기도 한다. 화, 목은 남편이 1시 퇴근이라 낮에 함께 조금 먼 곳으로 놀러 가기도 하고, 아닌 날에는 골프 연습을 하러 간다.


저녁은 5시~6시에 먹는다. 내가 어릴 때는 학교에서 돌아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빠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요즘은 아이들 먼저 저녁을 먹는 집이 많더라? 우리는 지금 다 같이 저녁을 일찍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건강에도 좋은 것 같다. 가끔 자기 전에 배가 고파져 야식의 유혹에 넘어가 라면을 끓이면 망하는 거지만.


저녁 먹은 뒤에는 각자 1~2시간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다. 남편은 3년 전부터 주식 공부를 하고, 난 요즘 부동산 공부를 시작해서 부동산 강의를 듣는데, 나이 먹고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건 참 어렵고도 재미있고, 힘들면서 즐겁고 귀찮은 일이다. 공부가 때가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새삼 느낀다. 주도해야 하는 역할이 많아진 어른이 된 후에는 누군가의 내조가 없으면 집중이 힘들다. 집중이 방해받는 중간중간에는 아이를 씻기고 첫째 아이의 공부를 봐주거나 둘째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고, 이것이 겨울 방학의 일상이다.



제주의 겨울날씨는, 서울만큼 춥지 않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 위도상으로나 대륙성/해양성 기후의 구분으로나 제주도는 절대 서울보다 추울 수 없다. 서울에서 입었던 두꺼운 패딩은 서울 놀러 갈 때만 입고 있다.

기온은 따뜻하지만 눈은 자주 온다. 한 달의 절반 이상이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했다. 마을에는 비가 오더라도 한라산에는 눈이 왔다. 한라산 꼭대기는 거의 겨울 내내 눈이 있었다.

제주도에 일년살이를 왔으면 매달 한라산을 등반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 번도 한라산을 가지 못했다. 올 겨울의 시작에도 '설산은 한 번 가야지'라고 했으나 아이들 데리고는 무리일 것 같고 아이를 맡길 방법도 없기에 겨울 내내 말로만 한라산에 올랐다.


겨울비가 오는 제주는 사실 장마철보다 별로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비가 올 때 가기 좋은 제주도 명소'가 계속해서 올라왔지만 우산도 장화도 무겁고 신발이 비에 젖는 건 너무 싫어서 결국 겨우내 비가 오는 날엔 실내에만 있었다. 비가 올 때 가면 좋은 제주도 명소는 '제주도에 놀러 온 사람 이야기지, 나는 제주 사는데 굳이 비 오는 날 나가야 돼?'라며 합리화했다. 이제 햇수로 2년 차면 놀러 온 사람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하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겨울의 제주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바람이 세지만 매섭지는 않다. 장갑과 목도리를 하지 않고도 다닐 수 있을 날씨다. 그리고 눈 오는 제주는 고요하고 예뻤다. 눈이 왔을 때 내가 제주도에 있는 게 제일 맘에 들었다. 눈이 오는데 춥지 않다니! (겨울이기는 하다. 영하 8도, 9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좋다.


내가 사는 동네에 몇 년 살다가 서귀포로 이사 간 아는 언니가 말하기를 서귀포가 제주보다 확실히 날이 좋고 따뜻하단다. 남해 바다와 태평양 바다의 차이를 알려준 귀여운 언니다. 아무렴 제주도 북쪽도 해나고 따뜻하면 너무 좋은 날씨인데, 서귀포는 더 따뜻하겠지. 하지만 여름에 서귀포 갔을 때 느꼈던 그 숨 막히던 더위와 습도 잊지 못한다. 겨울 추위는 제주도 어디든 서울보다는 낫겠거니 했고, 내가 적응 못한 여름 습도 때문에 제주시에 살게 되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겨울에 서귀포 한달살이는 해 보고 싶다. 따뜻한 겨울이 좋아!




오늘이 개구리가 잠에서 깬다는 경칩이란다. 어제부터 겨울비의 느낌이 사라진 따뜻한 빗방울이 어느새 제법 초록해진 마당을 적시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는 개구리처럼,

잠자는 나의 글쓰기 열정도,

깨어나라,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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