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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Apr 03. 2024

오늘 제주는 비가 내렸다.

제주도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고향이 제주도거나 제주도로 시집온 사람들은 지지난주쯤인가 한 주 사이에 다 집안에 제사가 있다고 했다. 그때 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4.3!'


오늘은 제주 4.3 사건 76주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첫째 아이가 제주도에 와서 전학 간 학교에서 처음 배웠던 것이 4.3이었다. 내가 4.3 사건을 알게 되었던 것도 겨우 십 년 전쯤인 것 같다. 5.18 민주화운동처럼 학교에서 배웠어야 할 것 같은 사건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아마도 그때는 부모님도 학교선생님도 모두 몰랐을 것 같다.    


제주도에서는 4.3 희생자 추념일인 오늘, 모든 관공서와 공공기관에 조기를 게양하고, 각자 집에서도 조기게양을 독려한다. 그리고 오전 10시 사이렌 소리와 함께 1분 묵념을 했다.

같은 나라의 일인데 왜 육지에서는 몰랐을까? 제주도가 섬이라서 사람들이 폐쇄적이고 외지인에게 방어적이라고 말하기 전에(제주도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더 이상 가족 외에 이웃 외에는 타인을 믿을 수 없게 된 그들의 아픔을 알아야 하지 않았을까?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을 얼굴에다 내리비추며 어머니더러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때 얼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전짓불 뒤에 가려진 사람이 경찰대 사람인지 공비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지독한 복수를 당할 것이 뻔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상대방이 어느 쪽인지 정체를 모른 채 대답을 해야 할 사정이었다. 어머니의 입장은 절망적이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절망적인 순간의 기억을,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가려버린 전짓불에 대한 공포를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소문의 벽>, 문학과 지성사, 2011, 219쪽)


이 전짓불이 끔찍한 것은 50퍼센트의 확률로 오답을 말했을 경우에 가해질 폭력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폭력은 답안 채점 이후에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짓불을 들이미는 순간 이미 시작되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질문은 진실을 말하라고 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체로 인간 개개인의 진실이라는 것은 도무지 한두 마디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일 때가 많다.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진실은, 이렇게 시작되는 긴 이야기의 끝에서야, 겨우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전짓불을 들고 있는 이들은 그 이야기를 다 들을 생각이 없었으리라.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92p



잘 알지 못하는 육지인인 내가 4.3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위로에 서툴고 공감 이전에 이성적인 이해가 필요한 성격이기에 '그들이 진짜 공산당이든 아니든 그렇게 죽여야만 했을까, 대체 왜?'라고 밖에 생각 못하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날의 상황이 너무너무 죄송하기만 하다. 그 날의 폭력을 대체 어떻게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목숨이 어떤 이유로든 그렇게 쉽게 뺏을 수 있는 것일까? 대체 한 국가가 국민에게 행할 수 있는 권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오늘 도서관에서 '순이 삼촌' 책을 빌려왔다. 예전 '소년이 온다' 소설책에서 1980년 5월 18일의 현장을 엿보았던 것처럼, 1947년 4월 3일의 불편한 역사를 조금이나마 마주해보기 위해서. 제주도에 와서 계속 얘기로 들었던 책인데 이제야 제대로 읽어 본다.



자정이 넘어 큰아버지가 우리들을 깨워 세수하고 오라고 방 밖으로 떠밀었을 때 마당에 하얗게 깔려 있던 것도 싸락눈이었다. 그 시간이면 이 집 저 집에서 그 청승맞은 곡성이 터지고 거기에 맞춰 개 짖는 소리가 밤하늘로 치솟아 오르곤 했다. 한날한시에 이 집 저 집 제사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날 우리 집 할아버지 제사는 고모의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되곤 했다, 이어 큰어머니가 부엌일을 보다 말고 나와 울음을 터뜨리면 당숙모가 그 뒤를 따랐다, 아, 한날한시에 이 집 저 집에서 터져 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오백 위 가까운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 현기영 [순이삼촌] 60p


그러나 작전명령에 의해 소탕된 것은 거개가 노인과 아녀자들이었다. 그러니 군경 쪽에서 찾던 소위 도피자들도 못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총질을 하다니! 또 도피생활을 하느라고 마침 마을을 떠나 있어서 화를 면했던 남정네들이 군경을 피해 다녔으니까 도피자가 틀림없겠지만 그들도 공비는 아니었다. 사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공비에게도 쫓기고 군경에게도 쫓겨 할 수 없이 이리저리 피해 도망 다니는 도피자일 따름이었다. - 현기영 [순이삼촌] 74p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는 역사일수록 더더욱 잘 알고, 오래오래 기억하자.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합니다.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가 남로당의 지휘를 받는 빨치산 조직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으며, 이 사건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인권 참사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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