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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랑 Apr 12. 2024

봄비인 줄 알았더니..

봄이 되면서 이틀에 한 번 꼴로 비가 내려 봄비구나 하고 있었는데, 봄비가 아니라 장마란다.


고사리장마


 '고사리 장마'는 3월 말에서 4월 초에 자주 비가 내리는 걸 두고 부르는 제주언어다. 여름 장마처럼 비가 많이 오진 않지만, 부슬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끼고 찌푸린 날이 많다. 이 시기에 고사리가 무럭무럭 자라기 때문에 마치 고사리가 잘 자라도록 내려주는 비 같다.

  



여기저기 진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것이 벚꽃인데, 실제 벚꽃보다 내비게이션에서 벚꽃을 먼저보았다. 차로 이동할 때 주로 티 맵으로 경로를 보는데 언제부터인가 지도에 못 보던 분홍색 꽃이 군데군데 보였다. 원래도 이랬는데 내가 몰랐었나..? ㅇㅇ왕벚꽃거리, ㅇㅇ왕벚꽃길, 제주대벚꽃길 등등 꽃 옆에는 벚꽃이 들어간 이름이 쓰여있는 걸 보니, 아마 제주도내의 벚꽃명소들을 벚꽃이 피는 시즌에만 표시하여 알려주는 것 같다. (몰랐는데 주소를 검색하려고 해도 밑에 ‘벚꽃 명소’라고 빠른 검색이 뜬다. 신기..)


봄을 알리는 유채, 청보리, 그리고 벚꽃


봄이 오고 날씨가 제법 많이 따뜻해져서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온 가족이 동쪽으로 놀러 갔다. 차를 오고 가는 길에 도로가에 표지판이나 구경할만한 뭔가가 보이면 바로 핸드폰으로 바로바로 위치를 검색해 보곤 하는데, 또 언제부턴가 아무것도 없는 숲인데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이 보였다.


"여보, 여기는 왜 주차된 차들이 이렇게 많지?"

"어? 그건가보다. 며느리도 안 알려준다던 고사리 스폿!"


고사리를 어디서 캐요?라고 물으면 '저~쪽에 가면 있다'라며 말한다는, 제주도민은 누구나 가슴속에 한 두 군데 품고 있다는 그 고사리 스폿!


아마도 제주도민들에게 벚꽃보다 빠른 봄의 시작은 고사리일 것이다. 3월 중순부터 이틀에 한 번 꼴로 비가 내려 봄비구나 하고 있었는데, 봄비가 아니라 장마란다. 고사리장마. 제주도에서만 쓰는 단어인데 '봄비'만큼이나 귀엽다.

그러고보니 오름이나 숲을 낀 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커다란 차에서 작업복(?)을 입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우르르 내려서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오름을 가시나? 이쪽으로도 올레길이 있나.. 했는데 그것도 고사리 캐러 가는 모임이었나보다.


사실 며느리도 안 알려준다는 건 그냥 옛날에 하는 말이고, 제주살이 온 지 오래된 선배들에게 물으면 다 자기만의 고사리 스폿이 있고, 초보 제주도민에게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사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도 '고사리스폿', '고사리채집', '고사리포인트' 등을 검색하면 정보가 쏟아진다.  

그리고 옛날에 남에게 정확한 장소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도 알 것 같다. 내가 고사리스폿이라고 알고 있는 곳도 이번에 갔을 땐 이미 다른 사람이 이미 캐서 없을 수도 있고, 작년에 있었던 곳이 올해는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때 괜히 원망 말고 스스로 찾아보도록 하는 게 나으니 말해주지 않았던 것 아닐까? 지천에 널린 게 고사리인데 설마 그걸 자기만 알고 있으려고 안 가르쳐줬겠어?


제주도에서 자영업으로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은 봄철 고사리 캐러 다니느라 바쁘겠다. 제주도는 고사리라고 하면 고사리해장국이 유명하지만, 다른 음식점에도 고사리를 재료로 한 반찬이나 메뉴들이 많다. 그중 나는 돼지고기를 고사리나물 반찬과 함께 먹는 것과, 고사리 오믈렛, 그리고 고사리 파스타를 엄청 좋아한다. 육지에서 지인이 놀러 오면 꼭 데려가는 세 곳인데, 갈 때마다 실망시킨 적이 없다.


공식적으로 고사리 지역 축제도 있다. 올해도 4월에 '한라산 고사리 축제'를 한다. 무려 28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작년에 2만 명 정도 참가했다고 하는데 육지에서도 관광으로 오셔서도 많이들 참가하는 것 같다. 이번 축제는 하필 딱 우리가족이 육지에 올라가려는 일정이랑 겹쳐서 참가는 하지 못하겠지만, 4월 중 언제 아이들과 함께 고사리 따기 체험을 해보려 한다.




화북에 사는 제주살이 7년 차인 한 언니는, 봄이면 달래와 냉이, 쑥도 캐러 가고 고사리도 캐러 가고 물미역도 캐러 가서 바쁘다고 한다. 물미역은 그냥 먹어도 회보다 맛있고, 미역국을 끓이면 건조미역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라고 한다. 봄에 이런 것들을 캐서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일 년 내내 먹는다고.


언젠가 그 언니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커다란 집 정원의 반은 꽃으로 화원을 만들었고 반은 텃밭으로 상추와 오이 같은 야채는 물론 애플수박, 무, 브로콜리, 블루베리 등 갖가지 채소 과일들을 키우고 있었다. 더 대박이었던 것은 집 뒤쪽 그늘에 나무 기둥들을 세워두고 버섯도 키우고 있었다는 거.


그 언니네 집 정원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제주살이를 하고 있는 그 언니가 너무 매력적으로 보였고, 겨우 한 달에 한번 정원관리사가 와서 잔디를 깎고 정원을 꾸며주고, 뒤에 집 주인이 만들어 둔 텃밭 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키우고 있지 않은 휑한 나의 집 마당이 생각나서 부끄러웠다. 그래도 어쩌겠냐, 이런 전원생활은 그저 평생의 로망으로만 남겨두고 싶을 뿐, 나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워낙에 똥손이라 식물기계 '틔움'의 도움으로 비타민과 루꼴라를 겨우겨우 키워냈는 걸.. 그마저도 수확해줘야 할 때 수확하지 않아 너무 억세 져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몇 달간 물을 주지 않아도 아직 잘 자라고 있는, 둘째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개운죽에 감사하다.


그래도 참새와 비둘기가 아닌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 즐겁고, 주위에 어디든 가득가득한 초록빛 푸르름과 작은 들꽃들에, 게으른 나의 제주살이도 만족도 500%이다.




1. 제주도에는 ‘고사리장마’가 있다.

2. 이동 중에 네비에 벚꽃길이 보이면 지나가보자.

3. 봄에는 쑥, 냉이, 달래, 고사리, 물미역도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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