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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Feb 27. 2023

불행제로의 행복한 삶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행복하고 싶다’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뱉었던 시절이 있다.

늘 ‘행복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공허함을 느꼈지만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책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그 의미를 알았다.


주인공 노라 시드는 현재의 삶의 불행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약물 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자정의 도서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들어가게 된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도서관이 있단다. 그 도서관에는 서가가 끝없이 이어져 있어. 거기 꽃힌 책에는 네가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살아볼 기회가 담겨 있지. 네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볼 수 있는 기회인거야.”

삶과 죽음 사이의 도서관,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후회의 책>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선택들을 한다. A,B 사이에서 A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가보지 못한 B 그리고 수많은 C,D,E..를 선택했을 때의 삶에 대한 후회와 열망을 낳는다.

삶과 죽음 사이의 수많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것이라면, 그 삶에는 분명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후회와 욕구가 가득할 것이다.

바로 그것들이 모여 나의 <후회의 책>과 그 삶을 살짝씩 살아볼 수 있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노라는 그 곳에서 살아보지 못한 많은 삶을 살아본다. ‘-하고 싶’었던 삶들을 살아볼 수 있다니.

하지만 그 삶들을 살아보면서 노라는 느낀다. 그 어떤 선택을 하였든, 그녀가 기대했던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완벽하게 100% 행복한 삶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현재 노라의 삶은 우울하고 절망적이었지만, 이것은 노라가 선택의 순간에서 잘못된 길을 택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지만, 결과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 분명 그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그저 결과가 좋지 못했을 뿐이다.

대부분의 노라의 삶에는 행복과 불행이 공존했다. 사랑하지만 결혼하지 못했던 전 연인 댄과 결혼하는 우주의 삶에서도, 단짝친구를 따라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우주의 삶에서도, 오랜 꿈이었던 수영선수가 되는 우주의 삶에서도, 그 어떤 n번째 우주의 삶에서도 절대 100% 행복하거나 100% 불행한 삶은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타인과, 혹은 자기자신의 다른 삶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더 나은 삶을 갈망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한다는 사실은 쉽게 잊는다.


책에서 노라는 이렇게 말한다.

“삶에는 어떤 리듬이 있어요. 한 삶에만 갇혀있는 동안에는 슬픔이나 비극 혹은 실패나 두려움이 그 삶을 산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런 것들은 단순히 삶의 부산물일 뿐인데 우리는 그게 특정한 방식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슬픔이 없는 삶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사는 게 훨씬 쉬워질 거에요. 슬픔은 본질적으로 행복의 일부라는 사실도요. 슬픔 없이 행복을 얻을 수는 없어요. 물론 사람마다 그 정도와 양이 다르긴 하겠죠. 하지만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삶은 없어요.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죠.”



좋은 길과 나쁜 길은 없다. 그냥 여러 길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상상하는 완벽한 모습이라는 독으로 스스로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보고 인정할 것이며 자신에게 박탈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이 있다고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으로 삶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일 것이다. 실패가 아니라 전체 중 일부로. 다른 것들을 돋보이게 하고, 성장시키고, 존재하게 하는 무언가로. 흙 속의 거름으로.”


‘-하고 싶다’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결핍’을 의미한다. 나의 ‘행복하고 싶다’라는 말은 무의식속에서 나 자신을 ‘행복’이 결핍된 존재로 만들어왔다. 행복은 이미 내 삶 안에 있다. 영원히 순수한 100%의 행복한 삶이 있다고 믿으며, 그런 삶과 그것이 결핍된 나의 삶 사이에 울타리를 긋는 말이 바로 ‘행복하고 싶다’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책에서 말하듯 (정말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후회는 전혀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다. 가끔 그것은 그냥.. 개구라다.


내가 A 대신 다른 선택을 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100%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내가 B라는 선택을 하였더라면’ 이라는 쪼글쪼글한 후회로 시간을 보낸다.

책에서 노라는 그녀의 고양이 ‘볼츠’가 죽기 전 고양이를 더 잘 보살펴주는 선택을 하는 우주의 삶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녀의 고양이는 그 우주의 삶에서 다른 이유로 더 일찍 세상을 떠난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때로는 후회는.. 그냥 개구라다. 우리의 후회는 전혀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다.


노라는 결국 수많은 삶을 살며 떠도는 도서관을 벗어나, 그녀의 현재의 삶으로 돌아온다.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졌다. 노라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누군가의 무엇이 되기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 내가 되지 못한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며 후회의 책의 두께를 늘려가지 않는다. 이제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목표만 생각하며 살아간다.

“삶을 계속 경험하기 위해 각 삶의 모든 면을 다 즐길 필요는 없다. 그저 어딘가에 즐길 수 있는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100% 행복을 찾지 말자.

누가 ‘행복’의 정의를 절망 0% 불행 0%의 상태라고 정의했는가?

행복이 1%라도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삶이다. 완전무결한 삶은 없다.

그냥 여러 개의 삶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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