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사소한 것 하나가 전체의 질을 좌우한다.

by 레미

미국의 드라마 프렌즈(Friends, 1994~2004)는 아직까지도 미국 역사상 최고의 시트콤으로 회자되는 전설이다. 수많은 뮤지컬 영화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뮤지컬 영화의 상징이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65)이듯, 아직까지도 미국 시트콤 드라마의 상징은 프렌즈다. 국내에서도 이 드라마의 팬이 많으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영어 공부를 했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 또한 프렌즈의 정품 DVD까지 다 구매해 놓고 있을 만큼 열렬한 팬이다.

그런데 내 주위에서는 생각보다 프렌즈가 재미없다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쉽다. 내용이 이해가 안 간다든가, 안 웃긴 내용을 억지로 웃기려고 하는 것 같다거나, 아니면 그냥(...)이라는 이유로 이 프렌즈를 봤는데 재미없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광팬인 나조차도 분명 웃음포인트인 것 같은데 이 부분은 그다지 웃기지 않는다고 생각한 파트가 꽤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시대별로 나름 평론가이자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프렌즈가 국내에서 미국만큼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냈다. 그 의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근거로 제시하는 것들은 꽤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성소수자를 조롱하는 농담, 성차별적인 묘사, 외모 지상주의, 백인 위주의 우월주의 사상 등으로 인해 이런 사상들에 좀 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국내 시장에 먹혀들지 않은 것이 아닐까라는 이유이다.

저 의견들은 내 기준에서는 전부 틀렸다. 그것들은 부수적인 이유일 뿐, 진짜 이유는 번역, 그리고 대사 편집. 30년 가까이 프렌즈를 봐왔던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액션의 포인트가 짜릿한 전율을 주는 장면을 클라이맥스에 잘 넣는 것, 로맨스의 포인트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로맨틱한 장면과 마무리까지 연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시트콤은 웃음을 주는 드라마인 만큼 웃음 타이밍을 잘 잡아내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리고 웃음 타이밍을 잘 전달하는 것은 표정이나 몸동작으로 처리하는 약간의 장면을 제외하고는 당연히 대사 전달에 달려 있다.

그런데 프렌즈의 대사 번역은 수준 미달이다. 의역해서 더 재미있게 들리게 할 수 있는 부분을 직역한 부분이 많다. 지금 돌이켜보면 주옥같은 웃음 포인트의 대사들이 너무나 많이 사장되었다. 게다가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웃음이 터져야 하는데 두 줄에 걸쳐서 자막을 미리 써놨으니 다음에 무슨 대사가 나올지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이라 허무하게 웃음을 날린 부분도 적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니 그리 크게 문제삼지는 않은 것 같다. 새삼 저력을 느끼기는 하지만, 참 아깝다.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외국 관객들을 사로잡고,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정복한 데는 물론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이 주요했지만, 번역의 힘이 없었다면 우리말이 낯선 외국 사람들에게 그 정도까지 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말과 영어는 분명 언어표현력에서 많이 다르다. 그러나 그 대사를 뉘앙스와 상징성을 잘 살려 번역했기에 외국인들에게도 많은 호평을 받아 그 위치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번역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리고 언어능력만 있으면 아무나 맡을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외국의 좋은 책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형편없는 번역으로 인해 그 재미와 내용이 반감된 것이 어디 한 두 권이던가? 일본에서 수입한 장기연재된 작품일 경우에는 중간에 번역가가 바뀔 때도 있는데 음독(音讀)과 훈독(訓讀)의 차이를 무시하고 자기들 맘대로 번역하다보니 등장인물 이름과 지명이 여러 번 바뀌는 경우가 흔하다.

외국의 좋은 작품들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수준이 떨어지는 번역은 우리에게 분명한 마이너스이다. 그런데 이 기본적인 것을 단순히 취미로 글을 읽는 나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런 것을 업(業)으로 삼는 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지 참 모를 일이다.

비유컨대, 번역은 식기(食器)와 같다. 식사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건 당연히 음식이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케이크를 밥그릇에다가 우겨넣고 젓가락으로 먹는다거나, 아니면 커피를 놋그릇에다가 사발처럼 담고 포크로 떠먹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리 없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작품이 해외로 나갈 때, 혹은 외국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알맞고 좋은 식기에 담겨진 음식처럼, 좋은 번역가들의 노력으로 재탄생한 좋은 작품으로 전해지고, 또 전해져 오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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