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딸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다. 여전히 어릴 때처럼 귀여운 얼굴이지만 제법 키가 크고 의젓해졌다. 짧은 지식이라도 아는 것이 생기면 의기양양해하며 부모에게 설명해주고, 뭐든지 씩씩하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가도, 금방 또 사소한 일에 토라져서 고집부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소녀다. 밝고 명랑하게 잘 커준 것에 대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천사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울지라도 엄연히 사람이다. 아무 병 없이, 아무 탈 없이 크길 바라는 것이 부모의 소망이련만, 당연하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픈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했다. 나중에 보면 병원에 갈 필요 없는 사소한 증세이기도 했지만, 그땐 뭐가 되었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바로 병원으로 달려갈 만큼 호들갑을 떨었다. 당연했다. 부모니까.
그런데 아이가 아프면 의지할 것은 의사 선생님밖에 없기에 좋은 의사를 만나야 하는데 생각보다 그것은 행운이 많이 따라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선생. 아이 예방접종 주사를 엉뚱한 걸 놨다. 태어난지 일년도 안 된 아이 주사를 기록도 제대로 안 보고 엉뚱한 걸 놔주었다. 다행히 순서가 바뀌어도 큰 문제가 없는 주사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책상 조립할 때 설명지 제대로 안보고 잘못 조립한 사람처럼 아이 주사 놓는 사람이 그렇게 얼빠진 자세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진료했다는 것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이가 없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사과나 후속조치도 없었던, 의사보다는 사람이 되야 하는 인간이다.
두 번째 선생. 콧물이 나고 열이 나는 아이를 보더니 건성으로 증상에 대해 물어보고, 이 약 먹고 좀 쉬면 나을 거다 라고 자신만만하게 단언하듯이 얘기한다. 그 자신감이 무안하게도 번번히 틀린다. 약을 다 먹어도 차도가 없어서 한번 또 가도 역시 이러이러해서 그렇다며 당당하게 얘기하며 진료한다. 약을 먹어서 낫기보다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 그냥 알아서 낫는 수준이라 진료를 안 가느니만 못한, 의사의 탈을 쓴 돌팔이다.
세 번째 선생. 뭐든지 대충대충. 코를 보든, 입을 보든, 청진기로 배 소리를 듣든 간에 아주 그냥 대충대충 진료를 보는 사람. 진료보는 아이들이 많을 때는 더 가관이다. 무슨 컨베이어 벨트에서 밀려오는 택배상자 대충 점검해서 보내는 것 같다. 다행히 두 번째 돌팔이보다는 좀 더 잘 진료를 보긴 하지만 역시 대충 보는 티를 여기저기 낸다. 금방 낫는데 센 약을 주거나, 반대로 증상이 오래가는데 약한 약을 처방하거나 등등..돌팔이보다야 낫지만 역시 우리 기준에서 한참 미달인 대충이 선생이다.
그리고 네 번째 선생‘님’. 그때 그 남자 의사 선생님을 만난 것은 아마 아이의 인생에서,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서 손꼽힐 만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분은 명의(名醫)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이 대한민국 최고의 소아과 의사라고 단언할 수 있는 분이다.
아무리 사소한 병이라도 꼼꼼하게 언제부터 어떤 증상이 있었고 어떤 상태인지 거듭해서 물어봐주시는 분, 청진기를 대보는 시간이 앞의 세 의사를 합친 시간보다도 더 길게 꼼꼼하게 들으시는 분, 웃음기는 많이 없지만 아이에게 말투는 항상 다정하게 하시는 분, 그리고 무서워하지 않도록 계속 대화해주면서 병원을 무서워하는 딸아이의 마음을 잘 풀어주시는, 그러나 설령 싫어하면서 발버둥쳐도 확인해야 할 것은 어떻게든 다 꼼꼼하게 반드시 확인하시는 분.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왔던 배우들의 표본이 될 법한 진짜 의사 선생님. 신생아 때, 어린이집 때, 유치원 때까지 딸아이를 향한 그분의 진료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도 변함없이 세심하고 꼼꼼했다.
무엇보다 허세를 부리지 않으셨다는 것이 다른 의사들과 그분의 ‘격’의 차이다. 그렇게 꼼꼼히 체크해 봤는데도 복수의 가능성이 있는 증상이라면, 그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얘기하시면서 조치해 주시되, 또 다른 가능성까지 얘기해주시고 그런 증상이 있으면 바로 병원으로 올 것을 당부하시는 분이었다. 단순히 꼼꼼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의료실력도 대단히 뛰어나신 분이라 진료를 할 때 틀리신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짐없이 얘기해주시면서 체면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시는 사람다운 의사 선생님. 그게 그분이었다.
몇 년 전에 그분이 너무 큰 병원, 너무 먼 곳으로 스카웃되어서 가셨다. 너무 급하게 떠나셔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지도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맘에 걸린다. 더 이상 직접 뵙지 못하고 인터넷으로만 소식을 접하는 것이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글을 쓰면서 그분의 근황이 궁금해서 병원 홈페이지를 들어가봤다.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연배라고 생각했던 젊은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중후한 분위기다. 딸아이가 의젓하게 큰 것처럼, 나도 그분도 이제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얼굴에 묻어난다.
의사는 기계의 결함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몸을 고치는 것이다. 기계는 어떤 수를 쓰든 고치기만 하면 된다. 좀 늦게 고쳐진다고 뭐라 하지도 않고, 마음 상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사가 고칠 대상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얼마나 힘들지 여부를 이해하고, 그 사람의 상황과 사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 몸을 고침으로써 마음까지 같이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명의이자 의사 선생님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분으로 인해 나의 의사를 보는 기준이 너무 높아진 게 아닐지 모르겠다.
그분께 항상 좋은 일 많이 생기시고 그 지역에서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잘 챙겨주시는 그런 의사 선생님으로 오래오래 남으시길 소망한다. 그리고, 의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직업이 주는 책임감을 가지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사람이 되길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