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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셔스 Sep 02. 2024

미국에서의 3년, 내 영어는 어떻게 됐을까?

3년 전 나는 미국에 처음 왔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석사를 졸업했고,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며, 그 직장을 그만두고, 곧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다. 퇴사를 하며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다시 미국으로 출국하여 새 학교가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엊그제 캠퍼스 투어를 했다. 캠퍼스를 둘러보며 처음 미국에 왔을 때와 같이 두렵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3년 전 미국에 처음 발을 디딜 때, '학교에서 수업을 알아들을 순 있을까', '발표를 할 수 있을까'로 두려워했었다. 실제로 그 두려운 일들은  일어났었다.


강의를 알아듣지 못해서 수업을 따라잡기 어려웠고, 그래서 강의 내용을 따라잡느라 허덕허덕 댔고, 과제 발표 시간은 공포 그 자체였으며, 수업 시간에 질문하려면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었다. 각종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것 역시 어렵기만 했다. 집 밖에서 겪는 영어로 인한 온갖 스트레스로 인해 집 안에서는 한국어 콘텐츠에 탐닉했다.


미국에서 지낸 3년 동안 나의 영어는 어떻게 되었을까?

요즘 나의 가장 큰 흥미 중 하나는 미국 대선이다. 미국 대선은 전 세계인의 직, 간접적으로 삶의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이지만,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직접적으로 피부로 와닿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큰 이벤트라 관심이 간다.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흥미롭기도 하다. 얼마 전 있던 2024년 미국 민주당 전당 대회(Democratic National Convention)는 당연히 모두 영어로 진행되었다. 나는 그들의 명연설을 한국어 자막이 아닌, 영어로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전당대회를 해석하고 미국 대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뉴욕타임스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데, 이제는 이를 영어로 듣고 이해할 수 있다. 팟캐스트나 미국 정치인들의 연설은 매우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하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쉽기도 하다. 아직 드라마나 영화에서 여러 가지 슬랭을 써가며 빠른 속도로 웅얼거리며 이야기하면, 영어 자막이 필요하다. 그래도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학교 영어 듣기 평가 시험을 칠 때 하듯 초 집중하여 에너지를 들이지 않아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럼 영어 말하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어의 50% 정도 수준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얼추 하긴 하지만, 미묘한 뉘앙스나 단어 선택, 문법적인 면에 있어서 부족한 면이 여전히 많다.

출처: 뉴욕타임스 Ezra Klein Show. 요즘 듣는 팟캐스트. https://www.nytimes.com/column/ezra-klein-podcast


이 일련의 변화들을 겪으며,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숭배 시 하는 문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찰해 보게 되었다. 3n 년 동안 홀로 한국에서 영어로 발버둥 쳐도 그렇게 두렵기만 하던 영어 회화가, 미국에서 지낸 지 3년 만에 드라마틱하게 향상되었다. 사실은 우리가 그토록 얻고 싶어 하는 영어 회화 실력이, 해외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자원에 비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족의 지원으로 해외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은, 영어나 해외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다시 한번 해외로 나가서 공부하거나 일할 기회를 갖게 되는 일종의 선순환(?)을 갖게 된다. 이러한 기회를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니,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 자랑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늦은 나이에 다시 한번 하고 싶던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 기회가 참으로 감사하고 소중하다. 이 새로운 시작이 여전히 긴장되면서도 설레인다. 더 이상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나 열등감을 느끼기보다는, 이제는 나의 속도로 조금은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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