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라는 노래가 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 노래가 나온 1994년에는 평균 기대 수명이 73세였다. 30년이 지난 2024년 평균 기대 수명은 10년이 늘어나서 84세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30살에 이 노래가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30대 중후반으로 접어드면서야 이 노래가 조금씩 와닿기 시작한다. 이별로든 죽음으로든 떠나보낸 사람들이 생기고, 한없이 도전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시기가 지나, 어느새 도전이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하고,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월세방을 전전하며 이사하는 것도 지겹고, 안정된 직장과 내 소유의 집이 갖고 싶어 진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이가 숫자일 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제는 이 노래 제목을 "마흔 즈음에"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피부로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부터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폭풍 같던 박사 1학기를 마치고 드디어 방학을 맞았다. 박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미국 시골의 허름하고 작은 집에서 한 달에 160만 원씩 월세를 내고 산다. 이 집에는 세탁기가 없어서, 세탁을 하려면 세탁물을 끌고 집밖으로 나가 눈이 잔뜩 쌓인 길을 건넌다.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실 계단을 낑낑거리며 세탁물을 끌고 내려가면 쿰쿰한 지하실에 강아지 털로 지저분한 세탁기가 나온다. 월급은 직장 생활할 때의 삼분의 일로 줄어들어, 월세를 내고 식재료를 사고 전기세랑 인터넷 요금을 내고 나면, 운동화 하나 사기에 빠듯할 돈이 남는다.
내 공부 시간 외에는 학부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고 수업 보조를 하는 일을 했다. 18살짜리 학부생 학생들은 과제를 낼 때 잘못된 포맷으로 내면 이걸 어떻게 바꿔야 할지도 알려줘야 한다. 조별 과제 문제로 20살 초반 철없는 애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며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한국에 누군가 돌아가셨는데 가보지도 못했다. 이렇게 조별과제로 싸우고, 홀로 엄동설한에 세탁물을 갖고 낑낑 대다 보면, 한국에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하는데 '내가 지금 여기서 도대체 뭐 하는 건가' 현타가 오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점은 다시 학생이라는 것이다. 미혼에 자녀도 없는 학생의 장점은, 책임에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통장은 텅텅 비었지만, 내가 배우고 싶던 것들을 배울 수 있고, 방학이라는 휴식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20살 대학 생활을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내 등록금도 용돈도 생활비도 모두 포함한 경제적 삶에 책임을 졌어야 했다. 사실, 월급은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삶의 무게와 맞교환하는 것이다. 그 책임감에 짓눌려왔었기에, 실은 공부라는 미명하에 어른의 책무를 회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어른이지만, 내가 선택한 삶에 오롯이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면 조금 성숙해진 걸까. 통장이 빈한(貧寒)한 것을 인정하고 그에 맞춰 살아간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던 일(하고 싶던 공부)을 하는 건 누구에게나 오는 소중한 시간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부모님 지지와 그늘 아래 공부하던 철없던 10대 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기에, 더 소중히 여기고 이 한순간 한순간을 음미하며 살아가야겠다.
그간 브런치에 너무 뜸했습니다. 혹시라도 단 한 분이라도 제 글을 기다려주신 분이 있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국이 어수선하지만 연말연시 즐겁게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