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도서관은 자료저장소까지 합하면 수십 개 정도 된다. 사실 세보지 않아서 정확히 몇 개인지 모르겠다.
그중 단연코 메인(이른바 중앙도서관)은 와이드너 도서관(Widener Library)이다. 겉은 그리스 신전처럼 웅장하기로 이루 말할 바 없고 안은 화려하고 멋지다.
와이드너 도서관은 엘레노어 와이드너의 기부로 지어졌다. 아들인 해리 와이드너와 아버지 와이드너가 타이타닉 호의 희생자였다고 한다. 해리 와이드너는 하버드 1907년도 졸업생이다. 그는 책을 수집하는 수집가였기에, 어머니인 엘레노어 와이드너는 아들을 기리기 위해 도서관을 짓기로 하고 하버드에 기부를 하였다. 그래서 현재 도서관에는 해리 와이드너 전시실이 있는데 그의 소장 책들과 그 귀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성경도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넓어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숨어도 아무도 못 찾을 수도 있을 정도다.
하버드에 입학하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데 한두 번 가보고 나면 여러모로 불편해서 잘 안 가게 된다. 소리가 울리고, 춥고, 종종 사람들이 관람하러 오고, 행사도 많고, 무엇보다 문을 일찍 닫는다. 오후 5시면 닫는다.
그다음 내 최애 도서관을 고르라면 로스쿨 도서관이다. 로스쿨 도서관은 아름다운 열람실과 더불어 늦게까지 문을 여는 것이 장점이다. 부유한 학과답게 무료로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코너도 있다.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공부바이브도 느낄 수 있고, 화려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든다.
최첨단 도서관을 고르라면 의학 도서관인 카운트웨이 도서관(Countway Library)이다. 리모델링을 해서 책상과 여러 시설이 최신식이다. 문도 늦게까지 여는 편이다.
스터디 공간은 많지 않은데, 의대 치대 보건대 그리고 하버드 부속병원 포닥과 의사들도 오기 때문에 연령대나 인종 성별 모두 다양하고 열공 바이브가 느껴진다.
위의 도서관들 보단 소박하지만 내 최애 도서관은 라몬트 도서관(Lamont Library)이다. 라몬트 도서관은 학부생 도서관이다. 시설이 꽤 낡은 편이지만 규모가 크지 않아서 포근한 느낌이 있고 24시간 하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얼굴이 앳된 학부생들이 와서 열심히 공부하기도 하고 속삭거리며 떠들고 조별과제를 하기도 한다.
이 도서관은 토마스 라몬트(Thomas Lamont)가 기부를 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92라고 되어있는 건 1992년 졸업이 아니라 1892년 졸업을 의미한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이 학교가 참 오래된 학교란 걸 다시금 깨닫는다.
명문대의 좋은 점은 남에게 내 학벌을 자랑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 그 보다 나는 내 공부를 위해 필요한 물적/인적 자원과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는 점을 꼽고 싶다. 내가 만약 곤충 ‘파리’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다면, 이 학교에는 파리의 머리 몸 다리 날개를 연구하는 교수님이 각각 따로 있어서 세부적이고 전문적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대학은 파리를 연구하는 교수님이 딱 한 명뿐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내 옆에는 파리를 같이 공부하는 수많은 동료들이 있다. 내가 공부하다가 잘 모를 땐 선배 파리 연구자에게 물어본다. 도서관에 가보면 파리 외에도 무당벌레 메뚜기 사마귀 등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무당벌레를 공부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감을 얻어 파리 연구 분야를 확장해 갈 수 있다. 그리고 ‘파리의 발톱의 때’에 대한 귀한 자료도 쉽게 구할 수가 있다. 사람의 성장에 있어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보스턴에서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