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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셔스 Feb 17. 2024

우정은 변해도, 황금은 변하지 않는다.

 장신구함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반지를 발견했다. 표면에는 K.Y.H.J 라는 이니셜이 새겨있고, 안을 보니  Happy Day For Me라는 정체불명의 영어 각인과 함께 200X. XX.XX라는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이 반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 3명과 했던 우정링이다. K.Y.H.J 는 나 포함 우리 네 명의 이름에서 각자 이니셜 하나씩을 가져온 것이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셋 중 그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이 중 가장 친했던 친구는 마지막 이니셜을 담당한 J라는 친구였는데, 무슨 일인지 대학에 간 이후로 친구는 연락이 끊겼다. J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베프)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재수를 할 때도, 대학에 가서도, 나는 틈만 나면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했지만 문자 답장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는 그 친구의 안위가 염려되어 심지어 친구가 진학한 대학교 학과 사무실까지 전화를 했다. 개인정보 때문에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학과 사무실 직원에게 J라는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해 달라고 애원했고, 직원은 J 가 재학중이라고 확인을 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 일이 없음에 안심을 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을까... 그날도 역시 당연히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습관처럼 전화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너무나 놀랬고,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원망과 반가움이 뒤섞인 말을 쏟아냈다. 드디어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이제 기억이 희미해져 가지만, 우리는 모 여대 앞 어딘가에서 만났다. 교복을 벗고 화장을 한 대학생 친구의 모습이 나에게는 참 어색했다. 나는 너무나 반가웠고, 나는 우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반가움과 궁금함을 담아 계속 물어보았다. 친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동안 연락 못한 건 진짜 미안한데, 그만 물어봐줄래?"

 

그 후로 나는 J에게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친구가 왜 내 연락을 받지 않았고, 왜 그렇게 차갑게 변했는지 여전히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또 다른 나의 친구는,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친구 P이다. J는 고등학생 때 만났으니 P가 훨씬 먼저 만난 친구다. P는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도와준 참으로 고마운 친구다. 같이 서울에 살 때는 꽤 친하게 지냈는데, 내가 지방으로 내려가고, P는 서울에 살고 결혼을 하면서 사이가 점점 소원해졌다.  그러다가 내가 미국으로 오기 직전에 본 게 마지막이었다. 연락이 잘 안 돼서, 미국에 가는 것도 이야기를 안 했는데, 출국 직전 연락이 닿아서 친구는 미국에 가서 맛있는 것이라도 사 먹으라며 참 고맙게도 500달러나 봉투에 넣어주었다.

미국에 와서는 고맙고 그리운 맘에 늘 내가 먼저 톡을 했다. 하지만 친구는 절대로 먼저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한 톡을 끝끝내 읽지 않는 것을 보고, 나도 더 이상 연락을 안 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내가 받은 빚을 갚을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한다.


J와의 일은 20대 초반의 나에게 크나큰 상처가 되었다. 그런데 P와의 일은 생각보다 크게 상처받지 않았다. 이 두 이별(?) 사이,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수많은 인연과 만나고 그만큼 많은 헤어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사람이 변할 수 있단 것도, 그래서 관계가 변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새로운 인연이 생기는 것도 어느새 알게 되었다. 중고등 시절의 친구는 더이상 없지만 대학에 가서 인생의 친구를 만났고, 한국에서 꽤 많은 연애와 이별을 겪었지만 미국에 와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다.




우정은 변했지만, 금은 변하지 않았다. 우정링 안에는 깨알만 하게 K18이라고 적혀있었다. 요새 금값이 많이 올랐으니 조만간 종로 금은방을 찾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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