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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Jan 04. 2024

11. 천재작가, 출판사 미팅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신이 선물해 준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천재작가가 공식 파트너를 얻는 날이다. 하늘에서도 축하를 아끼지 않는다. 안방 창문을 통해 전해지는 날씨는 기분처럼 맑고 따스하다. 곤히 잠든 모녀의 숨결이 차가운 새벽 공기에 온기를 더한다. 평소보다 유독 사랑스러워 보이는 아내의 입술에 입을 살짝 맞추고 거실로 나온다. 중요한 약속이니 만큼 복장에도 신경을 쓴다. 첫인상은 아무리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만남에서부터 확실한 점수를 얻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소개팅에 처음 나갈 때처럼 옷장 앞에서 고민이 깊어진다.”


아쉽게도 작가에게 유니폼이 다. 옷장을 열고 한참을 서 있는다. 정장은 원고의 콘셉트와 맞지 않으니 제외시킨다. 2분 40초. 짧지만 고민 끝에 글의 색깔과 어울리는 댄디한 캐주얼 복장을 선택해서 입는다. 남자의 자존심, 시계도 잊지 않고 손목에 채운다. 묵직한 무게감만큼이나 자존감이 높아진다. 컨디션 조절도 필수다. 교통카드 대신 자동차 키를 챙긴다. 깨끗하게 닦아 반짝이는 밤색 클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나선다.




천재작가는 오랜만에 출근길이 설렌.”


운전석에 앉아 오른손 손가락으로 시동 버튼을 가볍게 누른다. 곧이어 작가의 품격에 어울리는 우아한 클래식을 선곡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이다. 묵직한 첼로 선율이 차 안에 울려 퍼지면서 두 귀를 간지럽힌다. 기분 좋은 상상을 시작할 시간이다. 자비출판이나 반기획출판이면 미팅 전에 언급이 있었을 텐데 어떠한 힌트도 없었다. 그렇다면 오늘 미팅은 기획출판임이 분명하다. 출판사가 아직까지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출간 경험은 없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내 글은 출판사와 관계없이 책으로 나오기만 하면 베스트셀러다. 작은 출판사를 성장시키는 것도 또 다른 보람이다. 출판시장이 어렵다고 하니 계약금은 50만 원 이하도 받아들일 예정이다. 비록 무명이긴 하지만 천재성을 고려하여 인세는 두 자릿수를 고집하려 한다. 이왕이면 15퍼센트 정도 받았으면 좋겠다. 지난밤에 이어, 받은 인세를 어디에 사용할지 고민하다 보니 금세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다.


출근해서 가운을 입고 있는 하루가 유독 길게 느껴진다.


평소에도 느리게 움직이는 직장 시계가 오늘은 유난히 더 더디게 움직인다. 바늘을 억지로 돌려봐야 소용이 없다. 전역을 2주 앞둔 말년 병장처럼 종일 시계만 쳐다본다. 일주일 같이 긴 하루를 겨우 버티고 퇴근한다. 오후 5시 10분. 옷을 갈아입고 약속 시간에 맞춰 회사 건물 1층 카페에 내려간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린다. 두리번두리번, 카페 안에서 전화기를 들고 있는 남성을 살펴보니 예상했던 인물이다.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있다. 천재작가에 대한 존중을 복장에서부터 표한 듯싶다. 명함을 교환하고 커피를 주문한다. 출간 계약이 눈앞이다. 지금 기분이면 뜨거운 에스프레소도 원샷할 수 있다. 아이스 라테가 마시고 싶지만 원고에 ‘얼죽아’라고 적었으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선택한다. 부랴부랴 주문을 완료하고 자리에 앉는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육성으로 들으니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보통 계약을 염두한 미팅에서는 출판사가 저자에게 책을 선물해 준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가 빈손이다. 옆에 놓인 가방 안에 출판계약서와 함께 들어있을 것으로 예상해 본다. 중요한 순간에 꺼내서 감동을 배가 시키려는 그의 의도가 눈에 훤히 보인다. 역시 출판사 대표답게 이벤트의 핵심을 잘 알고 있다. 정성스러운 준비에 마음이 살짝 들뜬다. 오늘 만남은 목적이 분명하다. 출간이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눈 밝은 대표가 이런저런 소개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대화가 이어진다.


눈치 없는 오른손이 자꾸만 싸인은 언제 하냐고 묻는다.”


출판계약서부터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소한 이야기가 테이블을 가득 메운다. 출판사 대표는 출판 마케터 출신이고 편집자 두 명이 직원으로 근무한다고 한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진다. 책을 내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유명해져서 책을 내기가 더 쉬운 요즘 세상이다. 무명작가의 글에 욕심을 낸 배경에는 마케팅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작가님의 글은 참 따뜻해서 좋아요.”라고 말해주니 입꼬리가 귀를 향해 서서히 이동한다. 요즘에는 출간 열풍이 불어 투고량이 엄청나다고 한다. 기획안에서부터 어디 교육원 수강생인지 티가 확 나는데,  글은 그런 것 같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한다. 역시 출판사 대표답게 눈썰미가 남다르다. 귀찮아서 생략한 목차와 기획안의 부재가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한다.


천재작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기획력이 인정받으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눈 밝은 대표가 “만약 유재석이 작가님처럼 글을 쓰면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예요.”라는 말을 전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내 원고는 무명 개그맨이 출간해도 베스트셀러다. 그러면서 천재작가가 쓴 글은 책을 집어서 읽게 하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책이 아파서 가판에 누워있어야 하는데 서가에 꽂힐 확률이 높은 상황이라고 알려준다.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고 난 뒤, 그가 중요한 말을 꺼낸다. 혹시 편집자가 원고 일부를 수정해도 괜찮은지 묻는다. 일부 작가들은 ‘은’과 ‘는’ 같은 조사만 하나 바꿔도 난리가 난다는 말이 사실인 듯하다. 천재작가는 편집자를 존중한다. 젠틀맨이다. 당연히 괜찮다고 답한다.


작가에게는 신념이 중요하다.”


눈 밝은 대표가 “글의 콘셉트를 출판사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서 다시 쓸 수 있으신가요?”라고 묻는다. 고민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당연히 안 된다. 40년 세월을 응축해서 완성한 글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수면 욕구와 끊임없이 다투며 5개월을 공들였는데 다시 또 쓰라고 하니 기절할 노릇이다. 원고의 일부는 수정할 수 있지만 전체 방향을 틀 수는 없다. 나는 대필 작가가 아니다. 이 사람은 지금 글재주를 사려고 한다.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정중히 거절한다.


헤어짐을 앞두고  밝은 대표가 다행히 기다리던 말을 꺼낸다. 


출간 예정인 도서들이 있어서 급하게 책을 내기는 어려운데,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라고 묻는다. 출판사들은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출간 예정 도서들을 준비해 놓는다. 미리 예상한 부분이다. 아쉽긴 하지만 흔쾌히 “네, 괜찮습니다. 하고 답한다.  밝은 대표는 “그러면 제가 회사에 가서 직원들과 원고를 더 검토하고 출판계약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전한다.


와우! 드디어 계약이다.


첫 문장을 쓰고 반년 만에 출간 계약을 진행하다니 역시나 천재작가답다. 내일부터는 직업란에 본업 적을‘작가’를 적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기대하던 도서 선물은 없었지만 더 중요한 계약을 얻었다. 통장 잔고가 급격히 불어날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지난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은 에도 몰랐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아마도 그 흔한 SNS조차 안 한다고 하니 홍보에 대한 자신이 서지 않은 듯하다. 실망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위로를 전한다. ‘곧’이 3주인 사람이니 마음 편히 더 기다려보라고 한다. 지금까지 아내의 말은 항상 옳았다. 이번에도 맞길 바라며 한 달을 더 기다려보지만 기대하는 소식은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튼, 눈 밝은 대표는 그날 이후 ‘눈만 밝은’ 대표로 내 기억에 남는다.


천재작가의 오만방자함이 모든 기력을 잃고 수그러진다.


기세등등하던 자존감이 지하 골방에 들어가더니 “저 혼자 있고 싶어요.라고 한다. 다독여도 소용없다.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어깨가 축 처지고 입맛도 없다. 군 입대 전날 느꼈던 수준의 우울함을 오랜만에 다시 느낀다. 내뱉고 다닌 말이 있어 더 답답하다. 포기를 고민하던 차에 반가운 메일이 수신을 알린다. 두 번째 눈 밝은 출판사의 등장이다. 본문을 읽으니 출간 제안이다. 예상대로 ‘천재작가가 환자를 겸임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특색이 분명하다. 출판사 입장에서 욕심을 낼 만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10년 가까운 투병 생활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다. 이불을 손에 꼭 쥐고, 깊은 잠을 준비하던 허세가 눈치를 살피더니 신이 나서 다시 달려온다. 양 어깨를 들썩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축하인사를 전한다. 입꼬리도 슬며시 제자리를 찾아간다. 히딩크 감독의 ‘어퍼컷 세리머니가’ 절로 나온다. 저자 소개에 프로필 사진을 넣을지 말지를 고민하며 아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다.


“자기야, 나 또 연락 왔어! 백화점 갈 준비 해!”


천재작가는 두 번째 출간 제안을 받는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며칠 더 시간이 필요하다. 아쉬움은 폭풍 퇴고로 달래며 기다리길 바란다. 퇴고가 거듭될수록 출간은 앞당겨진다. 다음 주에 만나자.




# 작가의 말


한 번 보자고 했다. 사귀자고 한 거  아니다. 그런데 혼인신고라도 한 듯 홀로 ‘붕’ 떠서 풍악을 울렸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했다. 신명 난 공연이 끝나고 나니 목이 타서 김칫국물도 시원하게 들이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때는 이미 늦었다.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빈속이라 그런지 유난히 속이 더 쓰리다.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출판사에서 보자고 하면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겸손하게 만나라. 투고된 원고가 출간이 가능한지, 저자와 호흡이 맞을지, 상업성이 있을지 등을 고민하다가 만남을 제안하는 거다. 일종의 ‘그린 라이트’다. 어렵게 켜진 초록불을 부디 설레발로 끄지 않기를 바란다. 만남이 성사되서둘러 출간된 책부터 사서 읽어라.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꼼꼼하게 읽어라. 판권 페이지도 세심하게 살펴라. 출판사 정보가 다 나와 있다. 준비가 끝나면, 만나자마자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가 제 인생책입니다. 독자의 가슴을 뛰게 하는 000출판사와 만남을 갖는다는 게 꿈만 같습니다.”라는 칭찬부터 잔뜩 건네라.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잠시만 꾹 참아라. 상대방이 작가님, 제발 저도 이야기 좀 하게 해 주세요.” 하고 말하는 순간 끝이다. 그 말을 하는 출판사 직원의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려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2007년 4월, 아내를 처음 만난 날. “예쁘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를 계속 말했다. 지금 어떻게 냐고? 결혼에 성공해서 천사 같은 딸을 낳았다.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는 찾지 못하겠다. 칭찬은 말 못 하는 고래도 춤추게 는데, 사람은 어떻겠는가?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준비해. 관심이 금세 호감으로 이어진다. 출판사와 책에 대한 아낌없는 칭찬은 출판계약서에 서명을 남길 가능성을 높여준다. 내가 보장한다. 믿고 따라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필력만큼 믿음도 중요하다. 물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칭찬도 연습이 필요하다. 기분이다. 늘은 특별히 실습할 기회를 제공한다. 


떠나기 전, 아래 댓칭찬을 마음껏 남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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