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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Jan 11. 2024

12. 천재작가, 출간 제안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천재작가는 첫 문장을 쓰고, 정확히 반년만에 출간 제안을 받는다.


이쯤 되니 장르를 소설로 의심하는 독자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분명하게 밝힌다. 천재작가는 모든 글을 실화를 바탕으로 쓴다. 지나간 사실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거기에 더해 스토리 구상까지 하려면 24시간 꼬박 글만 써도 시간이 부족하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소설을 쓰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다. 지금도 두 모녀의 눈치를 살피며 밤잠을 포기한 채 글을 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헉! 네 시간 후 출근이다. 눈이 떠질까 걱정이다. 이게 현실이다. 염려할 필요 없다. 관종의 피가 흐르긴 하정도는 지킨다. 천재작가의 가감 없는 원고 투고 경험담을 통해, 독자들 훗날 고통스러운 시도를 한 번 더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랄 뿐이다.   번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 그러니 집중해라. 이야기 곧 시작한다.




"밤에만 꿈을 꾸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천재작가는 눈만 밝은 출판사 대표와의 만남 이후 출간 예정 작가(?)라는 이상한 신분을 얻는다. 연락을 준다고 했지만 기약은 없다. 마냥 기다리고 있기에는 멘탈이 약하다. 식욕을 잃고 짜증만 는다. 삼시 세끼 우울감으로 배를 가득 채운다. 로또 3등에 당첨된 경험이 있는가? 딱 그 심정이다. 한 끗 차이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억울함이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이다. 훌훌 털어 버리고, 공돈이 생겼으니 신나즐겨보자. 세상 사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마찬가지다. 천재작가도 출판사 대표와의 만남 이후 큰 상처를 받는다. 덕분에 작가로서는 한 단계 더 성장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제와 다른 생각이,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든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또다시 도전을 준비한다. 딩동! 때마침 반가운 메일이 수신을 알린다. 두 번째 눈 밝은 출판사가 등장한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들에 관한 정보가 메일 본문 하단을 가득 채운다."


천재작가는 주인공이 될 생각에 내용을 다 읽기도 전부터 마음이 들뜬다. 눈이 돌아간다. 느낌이 좋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랠 새도 없이 부랴부랴 본문을 확인한다. 궁금해할 당신을 위해 메일 전문을 공개한다. 한 글자 한 글자 아껴 읽으며 그날의 기분을 함께 느끼길 바란다.


안녕하세요 류00 작가님
0000출판사입니다

소중한 원고 투고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원고는 인상 깊게 검토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에세이/종교 분야를 주력으로 출판하고 있으며 여행에세이, 에세이 및 종교분야에서 베스트 및 스테디셀러들을 배출했습니다

다만 코로나 이후 출간 방식에 있어서 변화와 더불어 몇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투고해 주신 원고 기준, 도서 출간 시 150~200부 저자 인수가 가능하다면 원고를 바탕으로 출간 관련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 논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작가님 입장에서는 도서 출간 시 사인본 증정 및 홍보, 지인 선물 등을 위해 도서를 상당수 구매하게 되므로 괜찮은 조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010-XXXX-XXXX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두 번째 눈 밝은 출판사는 천재작가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준다."


5개월간 피와 살을 갈아 넣어 완성한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 지함께 소망하는 눈치다. 다만 출간에는 조건이 있다. 상인의 피가 흐르다 보니 수학에는 약해도 돈 계산은 빠르다. 저자 인수 150~200부라 함은 도서 정가 15,000원 기준 200부에는 300만 원. 20,000원 기준 150부에도 300만 원. 쉽게 이야기하면 천재작가에게 300만 원을 부담하라는 의미다. 직장 튼튼한 마흔한 살 가장이 꿈을 이루는 비용치고는 저렴하다. 그리고 어차피 내 글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인세 비율을 조금만 높이면 오히려 이득이 될 수도 다. 고민하는 시간도 아까운 완벽한 제안이지만, 천재작가는 홀몸이 아니다. 지혜의 여신에게 먼저 의견을 구한.


"자기는 그렇게 책 내면 행복할 것 같아?"


조용하던 아내가 신중말을 꺼낸다. 내 이름이 적힌 책이 나오는데 안 행복할 수가 있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응. 당연히 행복하지."라고 답을 한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함께 기뻐해 줄 거라 예상했던 아내의 심박수가 여전히 정상이다. "자비출판하기에는 자기 글이 너무 아깝지 않아?"라고 묻는다. 오해가 있는 듯하다. 자비출판이 아니다. 반기획출판이다. 출판사와 저자가 지분을 공유하는 공동 투자 개념이다. "자비출판이 아니고, 반기획이야."라고 알려 줘도 흔들림이 없다. 가정 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결재를 안 한다. 아무리 설득해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애처가답게 애처롭게 부탁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아내는 앵무새처럼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를 반복한다.


"자기는 꿈이 책을 내는 거야? 아니면 작가가 되고 싶은 거야?"


심지어 영어영문학과 출신 아내가 철학자에게나 어울릴 듯한 질문을 던진다. 책을 내는 사람이 곧 작가인데, 이를 구분해서 생각한다. 굳이 한 가지를 선택해서 답변을 하라고 하니 '작가'라고 답한다. 아내가 태세를 전환해서 접근한다. "자기 글 잘 써. 그러니까 더 기다려 ."라고 말하며, 칭찬으로 나를 설득하려 다. 계속해서 맞서 보지만 말로는 아내를 이길 수 없다. 16년간 단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상대다. 작가의 꿈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엄습한다. 초조한 남편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발 최강자답게 상황을 종료할 멘트를 날린다.


"여기는 나중에 연락해도 되니까 일단 기다려 !"


솔로몬이 부활한 듯한 완벽한 솔루션이다. 그렇다. 2~3주 후에 연락해도 충분히 계약 가능한 분위기다. 아쉽긴 하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메모장에 투고 연락처는 충분히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물론 내뱉은 말이 있어 냉정을 찾는 게 쉽지는 않다. "자기야, 갖고 싶은 거 있어? 말 만 해. 오빠가 다 사줄게!" 하고 호기롭게 외쳤던 과거의 내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 때마침 뉴스에서는 명품 브랜드 가격 인상 소식이 줄줄이 이어진다. 약속을 지키려면 통장에 인세가 쌓여야 하는데, 받은 메일함에 거절 메일만 차곡차곡 쌓여간다. 통장 잔고 대신 한숨만 계속 늘어간다. "휴~~~."




"반기획출판, 돈으로 꿈을 살 수는 없다."


의기소침해진 채 눈길을 피하는 내게, 아내가 먼저 다가와 다정하게 안아 준다. "출판사도 확신이 없어서 작가에게 돈을 받아 만든 책을 나중에 홍보는 잘해줄 것 같아?"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자기는 글이 문제가 아니야, 때가 아직 아닌 거야. 그러니까 조금 더 기다려봐. 자기 글을 인정해 줄 출판사가 꼭 나타날 거야."라는 따듯 말을 덧붙인다. 어느덧 마음을 정리한 내게 아내가 마지막으로 위로를 한다. "출판사 사람들 바빠서 자기 누군지 기억도 못해. 안 되면 내년에 다시 하면 돼."라는 기가 막힌 해결책까지 제시해 준다. 그렇다. 내게는 다른 메일 계정 있다. 재도전 기회는 충분하다. 지혜의 여신 덕분에 투고 기회가 무한정으로 늘어나면서 축 처져있던 어깨가 슬며시 다시 위로 올라온다. 역시 나약한 인간에게는 희망이 가장 중요하다. 

"작가에게는 정해진 그릇의 크기가 있다."

작가로서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가 과연 얼만한 지 가늠해 본다. 내 글을 읽고 주변에서 함께 웃고, 때로는 눈물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일기장을 넘어 세상으로 나올 정도는 되는 듯하다. 자비출판과 반기획출판이 작가로서 내 그릇의 크기일까? 뭔가 조금 아쉽다. 기획출판으로 책을 한 권 발행하기까지 1,500~1,700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내 글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50번에 가까운 거절로 인해 자신감을 거의 다 상실해 가는 시점이다. 반기획출판도 반가운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내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 부족한 남편을 끝까지 믿어준다.

"자기야, 반기획출판으로 출간하면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을까?"


아내가 다시 질문한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작성된 원고에 아내가 가진 지분이 크다. 무보수 편집장으로서 초고를 꼼꼼히 검토하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아내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 "자기 글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곧 나타날 거야. 힘내."라고 말해주는 배우자에게 당당해지고 싶다. 아쉽지만 반기획출판은 포기한다.


"믿고 기다려 준 아내에게 반짝이는 선물을 하고 싶다."


출간한 뒤, 인세를 받아서 사야 할 목록이 한가득이다. 오랜만에 밝은 빛을 보고 신이 난 '허세'에게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다. 단순히 책만 내서는 안 된다. 많이 팔아야 한다.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책을 가진 저자가 되는 게 중요한 아니다. 많이 읽히는 책을 내는 작가로 꿈의 크기를 조금 더 명확히 한다. 


"천재작가는 투고에 임하는 자세부터 달리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출판사 대표와의 만남 이후, 오만방자한 태도가 투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겸손함을 장착하고 원고를 새롭게 가다듬은 뒤, 미리 정리해 놓은 50개 출판사에 2차 투고를 준비한다. 이제는 목표가 명확하다. 기획출판이다. 두 손을 불끈 쥐고 긍정 확언을 외친다. 


"기획출판, 가즈아~!!"


여기서 잠깐, 눈만 밝은 대표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주에 재미난 후일담이 이어진다. 그때까지 퇴고를 거듭하며 기다리길 바란다. 한 주 후에 만나자.




# 작가의 말


"천재작가의 꿈은 기획출판이다."


거절이 이어지니 반기획을 고심한다. 다행히 아내 덕분에 초심을 지킨다. 그 와중에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면서 수도 없이 넘어지고, 엎어지고, 뒤집어지기를 반복한다. 불혹 남성이 퇴근길 차 안에서 수시로 눈물을 훔친다. 상처가 아물 때 즈음 또 다른 상처가 생긴다. 그러면서 더욱 단단해진다. 오랜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그릇의 크기는 점점 더 커진다. 덕분에 훗날 출판계약서에 서명을 남긴다.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할 확률은 0퍼센트다."


작가가 되고 싶거든 원고를 쓰고 투고부터 해라. 로또를 사야 당첨이 될 것 아닌가. 비참한 거절 메일에 익숙해질 때 즈음 한 뼘 더 성장한 당신의 모습이 거울 속에 비친다. 반기획도 좋고, 기획도 좋다. 본인에게 맞는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길 바란다. 그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기획출판의 기적은 반드시 일어난다. 일 년 후 서점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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