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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귀복 Feb 07. 2024

17. 천재작가, 편집자의 눈물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

천재작가는 또다시 원고 투고 3일 만에 반가운 회신을 받는다.


메일을 확인한 편집자가 시간을 내어 중간보고를 한다. 기다리던 상황이나 기쁘지가 않다. 자신감의 자리를 은근슬쩍 넘보는 의구심 때문이다. 여러 정황상 '그린라이트'가 확실하나 웃지를 못 한다. 이번에도 희망고문이 아닐지 덜컥 의심부터 든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인해 근심만 더 쌓여간다. 궁금해할 당신을 위해 메일 전문을 공개한다.


류00 선생님

안녕하세요?

북000에 관심 갖고 원고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고 일부 읽어보았습니다.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북000 편집자 김00 드림


"빠른 회신, 짧은 문구, 곧 연락 준다는 모호한 표현."


익숙한 상황이다. 지난번 눈만 밝은 대표의 회신 때와 모든 게 일치한다. 예전 같았으면 읽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올레!"를 크게 외쳤을 텐데 이제는 아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저 작가 됐어요!"라고 떠들지도 않는다. 조용히 묵언 수행에 돌입한다. 출판사 대표와의 미팅 후유증이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냥 기다릴지 답신을 할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짧은 답장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진심을 담아 겸손하게 문구를 작성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오늘 여섯 살 딸아이의 생일인데 제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쁘네요.
시간 할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류00 올림


'곧'이 3주인 출판인들이다. 오늘 중으로 연락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헉! 속마음과는 다르게 오른손이 갑자기 홀로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허락 없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진동 모드를 벨소리로 전환한다. '휴~' 이제야 마음이 조금 놓인다. 역시 오른손이 충신이다. 칭찬에 목이 마른 행복회로도 점수를 얻고 싶은지 스스로 가동을 시작한다. 오늘은 금요일. 현재 시각 오전 10시 18분. 수신 시간을 확인해 보니 09시 31분이다. 한 시간 가까이 원고를 살펴본 뒤 메일을 보낸 것이 틀림없다. 바쁜 편집자가 쓸데없이 연락할 일은 없으니 긍정적인 신호임이 분명하다. 기쁨을 만끽하려는 찰나, 상처만 남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다. 고등어처럼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들키지 않도록 애쓰며 아내에게 차분히 소식을 전한다. "자기야,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는 정말 된 것 같아"라고 말하며 메일을 보여준다. 아내도 눈빛이 살짝 바뀌나,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시크하게 "연락 준다고 했으니 기다려 봐" 하고 답한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서두르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고 답변 메일을 보낸 뒤, 하원하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키즈카페에 간다.


"도착과 동시에 20여 년 전 경험한 신병교육대가 떠오른다."


튜브썰매를 타기 위해 튜브를 끌고 언덕을 오른다. 서너 번 오르니, 튜브를 끈으로 연결해 허리에 질끈 묶고 달리던 군 복무시절처럼 힘이 든다. 다음은 포복이다. 그물망 아래를 열심히 기어가서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다. 수십 번 반복하니 무릎이 시리다. 수류탄 체험도 가능하다. 볼풀장에서 공을 스크린에 끊임없이 던진다. 예전과는 다르게 어깨가 찌릿찌릿 아프다. 목 놓아 기다려보지만 휴식 시간은 없다. 아이들 놀이에는 시작만 있고 끝이 없기 때문이다. 고로, 어른은 금세 지친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다. 남자는 약하나 아빠는 강하다. 예비역 병장의 자부심으로 텐션을 높여 쉬지 않고 신나게 달린다. 착한 아빠(?)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하늘에서 갑자기 선물을 내려보낸다.




"두 번째 출판 귀인이 발송한 문자가 도착을 알린다."


류00 선생님

달을 매일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던 모모(가명) 어린이의 생일 축하드립니다.

저는 북000 편집자 김00입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시다면 개인적으로 전화드려도 될까요?


원고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언급하며 딸아이의 이름까지 불러준다. 그린라이트가 확실하다. 시속 20km의 빠른 속도로 아내에게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한다. 잠시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편집자와 통화를 한다.


"몸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심장을 가까스로 달랜다."


여성 편집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이제 곧 나이가 육십이 된다고 본인을 소개하면서, 하루 종일 원고를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좋은 원고를 읽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출간여부를 떠나 육성으로 꼭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 간다. 글을 읽으며 30여 년 전 아들과의 추억이 떠올라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나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인데 타인에게도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가슴이 막 두근거린다. 심지어 편집자는 눈물을 계속 떨군다. 수화기 너머로 격해진 감정이 온전히 전해진다.


"천재작가는 겸손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걱정하는 천재작가에게 "그깟 띄어쓰기는 수정하면 돼요"라고 말하며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한다. 다행이다. 원고 칭찬으로만 30분이 흐른다. 근래에는 십 년이 넘도록 글을 몰입해서 읽어 본 적이 없는데,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천재작가의 필력을 끊임없이 칭찬한다. 큰일이다. 아이의 생일이라 키즈카페에 왔는데 3시간을 붙들고 이야기할 기세다. 끊어야 한다. 아이가 기다린다고 양해를 구하며 출간 계획에 대해 묻는다. 편집자는 "출판사에서 출간을 결정해 줄지는 확실치 않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볼게요"라고 답하며 의지를 다진다. 출력해서 주말 동안 다시 읽어보겠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작가님은 분명 대작가가 되실 거예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볼을 꼬집어 보니 아프다. 현실이 맞다. 여섯 살 딸아이의 생일날 아빠가 큰 선물을 받는다. 급기야 대낮 키즈카페에서 다 큰 어른이 눈시울을 붉힌다.




"대작가? 내가? 헐~~~~!!"


통화를 끊고 아내에게 "나보다 더 내 글을 사랑해 주는 편집자를 만난 것 같아"라고 말하니, "편집자가 이 정도로 감격을 해야 출간이 되나 봐"라고 답하며 호응해 준다. 긴 고난의 시간이 드디어 끝을 준비한다. 국방부 시계보다 더 느리게 움직이는 시계를 계속 바라보며 월요일만 기다린다. 스마트폰은 당분간 벨소리 모드를 유지한다.


"유후~! 이제 곧 출간이다!"


천재작가는 출간작가가 될 기대에 부푼다. 이 정도로 편집자가 원고에 푹 빠져야 출간이 되는 거였다. 아내와 주말 내내 "여기서도 책 못 내면 영원히 못 내지 않을까?"라는 대화를 웃으며 나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월요일 아침이 밝는다. 화요일과 수요일 아침도 밝는다. 이상하다. 일주일이 넘도록 대작가(?)의 스마트폰이 벨소리를 유지한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몰려온다. 슬픈 예감이 틀리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기다림을 이어간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겠지만 이쯤에서 끊는다. 참고로 이 분은 내게 엄청난 귀인이다. 힌트는 여기까지다. 다음 주에 만나자.




# 작가의 말


직장에서 일만 잘한다고 해서 승진하는 게 아니다. 출간도 마찬가지다. 글만 잘 쓴다고 해서 책을 내지는 못한다. 운과 타이밍도 중요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은 필수고, 노력은 옵션이다. 펜을 놓지 않는다면 작가의 가치를 인정해 줄 출판인은 반드시 나타난다. 내가 만났고, 이제는 당신 차례다. 그날을 떠올리며 댓글에 긍정확언을 남겨라. 오늘은 특별히 예시도 알려준다. 눈치 볼 것 없다. 꿈을 이루는데 그깟 자존심 따위는 잠시 내려놔도 좋다. 그 빈자리는 믿음으로 채우길 바란다. 오랜만에 실습이다. 끝인사로 아래 문장을 댓글에 남기고, 얼른 가서 퇴고해라.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당당하게 품은 뜻을 내보일 시간이다.


"나는 (대)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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