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사랑이다
2021년 2월 오전 9시 20분 청주발 강릉행 시외버스를 탄다. 좌석 버스 한자리만 남기고 만석이다. 승객은 20대 초반 남녀가 많다. 맨 뒷자리 28번 자리에 앉는다. 12시 조금 넘어 강릉에 도착한다.
시내버스를 타고 용강동 서부 시장에 내린다. 때 돼서 집밥 먹듯이 '동원'에 점심 식사하러 들린다. 건물 내부가 공사 중이다. 길 건너편 장수김밥 여사장님을 통해 영업을 접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수소문 중 길 건너 미용실 여사장님께서 "린나이 가게가 건물주니 물어보면 사정을 알 수 있을 거예요?"라 말씀해 준다. 몇 년 동안 홀로 식사하러 오며 여사장님과 서로 얼굴은 알아보는 사이였지만 연락처는 주고받지 않았다. 린나이 남 사장님한테 사정을 말씀드리고 동원 여사장님 연락처를 받는다. 전화를 드린다. 통화가 되지 않는다.
강릉 여행 후 태백 가는 버스 안에서 동원 여사장님 전화를 받는다. 그동안 들려줘 고맙다는 얘기와 함께 식당업을 아예 접었다고 하신다. 몸이 아프신 거보단 코로나19 영향인 듯하다. 자세한 내막은 묻지 않았다. 건강히 지내시라고 말씀드리고 통화를 끝낸다. 강릉에 가면 한 끼 이상 꼭 하던 곳이었다. 강릉에 갈 이유 한 가지를 잃었다.
밥은 사랑이다
동원은 강릉 임당동 성당 부근 대로변에 위치한 프리미엄 가정식 카페였다. 수수하고 푸근한 인상의 여사장님과 따님이 운영하셨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작은 공간에 테이블 4개 정도가 있고 안쪽으로 모임용 좌식 공간과 부엌이 있었다.
매일 조금씩 바뀌는 찬이 있는 자연·마음을 담은 밥상, 강릉 지역 별미인 구수한 장칼국수, 직접 빚어 끓이는 손만둣국 등 식품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는 여사장님의 솜씨와 마음씨가 담긴 소박한 밥상을 맛볼 수 있었다. 수수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음식을 차려 내는 곳이었다.
2021년 1월 아쉽게도 문을 닫았다. 기억에 오래 남을 곳이다.
음식이 나오기전 구수한 우엉차로 입과 속을 달랬다. 내부에 걸린 ‘밥은 사랑이다’란 글귀와 냅킨 위 솔방울이 인상적이었다.
백반의 이름이 자연·마음을 담은 밥상이다. 하얀 자기에 담은 밥, 국, 찬 등을 소쿠리에 올려 1 인상으로 차려낸다. 수저도 나무 식기에 올려 따로 내준다.
조가 섞인 알맞은 온도의 찰진 쌀밥, 멸치로 우려낸 육수에 막장을 풀고 부드러운 얼갈이배추를 넣어 끓인 배추된장국, 5가지의 밑반찬과 조기구이 반찬 한 가지가 더해진 백반이 차려진다. 제철 식재료로 만든 찬과 국은 매일 조금씩 바뀐다.
꼬독꼬독 씹히는 지누아리무침, 잔 멸치 볶음, 미역 줄기 무침, 사근사근 씹히는 감자조림, 아삭한 무생채 등 밑반찬과 짭짤한 껍질 부위와 부드럽고 고소한 속살의 조기구이 반찬을 하얀 그릇에 담는다. 식품 첨가물 사용을 하지 않는다. 정갈하고 소박한 밥상이다. 표현할 것은 다 표현하여 부족함이 없는 밥상이다.
옆 손님 장칼국수에 드시는 배추김치가 맛있어 보여 여사장님께 청하자 시원하고 아삭한 배추김치와 열무김치도 함께 내준다. 인심도 푸짐하다. 여사장님의 음식 솜씨, 상차림의 맵시, 만든이의 마음씨가 오롯이 담긴 밥상이다.
잡고 먹기 편하게 껍질 부위 손잡이를 만든 수박 한 조각은 달큼하고 시원하다. 단맛은 금세 사라지지만, 여사장님의 손님에 대한 배려는 붉은 수박빛처럼 각인된다.
이젠 사라졌지만 잊히지 않을 백반의 맛이었다. 잊히면 슬프다. 기억 속에서만 곱씹어야 할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