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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28. 2024

십자가와 왕관

1970년대 초반 바크만  트리플 캘린더 크로노그래프


브라이틀링의 명성을 만든 시계 업계의 알카포네




이번에 새 식구가 된 바크만 트리플 캘린더 크로노그래프(Wakmann Triple Calendar Chronograph ref.73.1307.70)입니다.


쿼츠파동으로 사라진 미국브랜드 Wakmann에서 1970년대에 만들었고,  모나코에 사는 전 소유자가 빈티지워치 복원 전문가로 유명한 벨기에의 Abel Court로부터 2016년에 구매했다고 합니다.


어제 도착하자마자 오버홀을 맡겼는데, 이번엔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니 그동안 이 시계에 대한 옛날이야기들이나 좀 정리해 볼까 합니다. 


이 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895년 러시아에서부터 1981년 미국에까지 걸쳐있는 Icko Wakmann(이하 바크만)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크만은 1895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그의 청년시절 러시아는 굉장히 복잡한 상황이었습니다.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참전했다가 몰락합니다. 


이어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고, 1923년까지 1천2백만 명의 사상자를 낸 러시아 내전을 거쳐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가 되는 엄청난 사건들이 연달아 터집니다.


바크만은 이런 상황을 피해 중립국인 스위스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던 해인 1925년에는 Charles Gigandet(이하 기간데)이라는 사람과 스위스에서 공동으로 시계회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시계업계에 뛰어듭니다. 


이때 만난 기간데는 바크만의 평생 비즈니스 파트너가 됩니다. 


바크만은 15~20년간 스위스 시계업계에서 일하며 주로 영업 및 유통업무를 맡은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때 스위스에서 쌓은 업계 네트워크가 나중에 큰 자산이 됩니다.


이후 1939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아시다시피 2차 대전 중 나치는 유대인 6백만 명을 학살했고, 유대인으로서 불안을 느낀 그는 독일과 국경을 맞댄 스위스를 떠나 중립국인 포르투갈로 옮겨가 스위스 시계를 수입하고 판매하는 유통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 확대되자 1943년엔 아예 유럽대륙을 떠나 미국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1945년, 뉴욕 5번가 452에 Wakmann Watch Company(이하 Wakmann)를 설립하고 시계 유통사업을 다시 시작했는데, 이때가 그의 나이 50세였습니다.




그가 회사를 설립한 1945년은 2차 대전이 끝난 해이자 미국 시계시장의 변곡점 같은 해이기도 했습니다. 


전쟁 중 미국 회사들은 전쟁용 시계를 생산하느라 민간시장을 스위스 회사들에게 내줬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종전으로 일거리가 없어진 자국 회사들을 위해 스위스산 시계에 무거운 관세를 부과하고 정부조달 사업에 Buy American Act를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유럽이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되는 바람에 스위스 회사들도 미국시장에서 쉽게 물러설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945년 말에 이미 스위스 시계산업은 생산량의 49%를 미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규제가 생겨나면 새로운 시장이 생기고 이를 이용해서 성공한 사람도 나타납니다. 


금주법이 알카포네를 만들었다면 스위스 시계에 대한 수입 규제조치는 바크만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47년, 바크만은 아직 미국에 알려지지 않은 Breitling과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Breitling USA를 통해 미완성 시계와 부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방식으로 완성품에 부과되던 관세를 회피하고, 미국 회사인 Wakmann 브랜드로는 Buy American Act를 이용해 미군에 시계를 공급하는 등 판매를 확대해 갔습니다. 


바크만은 이 두 회사의 사장을 겸했습니다. 



그는 고품질의 항공 크로노그래프를 생산하는 Breitling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당시 급격하게 성장하며 호황을 누리던 항공시계시장을 장악했습니다. 


미군의 공식 납품업체로 선정되고 세계 최대의 항공협회인 AOPA(Aircraft Owners and Pilots Association)의 공식 공급업체로 선정되면서 군용 항공기, 민간항공기 가릴 것 없이 조종실에는 Breitling-Wakmann이 새겨진 시계가 장착되었습니다. 


당시 자동차 업계의 타이밍장비가 Heuer였다면 항공업계의 타이밍장비는 Breitling-Wakmann이었습니다. 



1952년에는 AOPA의 요청과 도움으로 회원들을 위한 시계인 네비타이머가 만들어지고 이후 14년간 협회 공식 시계로 인정되면서 Breitling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상징적인 파일럿 시계로 자리 잡게 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세계 최대의 항공시장인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Wakmann의 영업력이 창출한 기회였기 때문에 Breitling의 오늘날 명성에 바크만의 지분은 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유통업체의 힘이 세지면서 상품진열 선반에 유통업체 상표를 붙인 물건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바크만은 Wakmann을 유통브랜드를 넘어 독립적인 시계브랜드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가 생각했던 모델은 롤렉스-튜더였던 것 같습니다. 가격이 비싼 Breitling으로 고급시장을 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Wakmann으로 대중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뉴욕에 Wakmann Research Center를 운영하면서 미국적인 디자인을 개발합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시계를 생산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바크만의 오랜 친구인 기간데가 스위스에서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1959년에 스위스에 설립된 Charles Gigandet SA는 주문자의 요구조건에 맞게 주문자의 로고를 붙인 시계를 만들어주는 PL(Private Label)회사로써 여러 회사에게 시계를 납품했지만, 주요 고객은 Breitling과 Wakmann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생산체계를 바탕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는 Wakmann을 대표하는 Triple Calendar chronograph, Big boy, Regate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시계는 Valjoux, Lemania의 최고품질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Breitling과 같은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졌으며, 너무 진지해서 다소 지루한 스위스 시계와는 달리 좀 더 캐주얼하고 터프한 느낌에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팝아트적 색채가 배어났습니다. 


즉, Wakmann은 스위스 기술력으로 미국스타일의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봐도 세련되고 가성비 높은 크로노그래프지만 시점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이들 시계는 대부분 1967년~197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1969년에 쿼츠파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70년대 들어서는 그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잘 나가던 Wakmann도 Breitling도 막대한 타격을 입습니다.


Wakmann의 영업은 70년대 중반부터 중단되었고, Wakmann과 Breitling USA의 지분은 Breitling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바크만은 84세인 1979년에 그가 경영하던 모든 회사에서 물러나면서 시계업계에서 은퇴했습니다. 


같은 해에는 Breitling도 부도를 앞두고 매각되었습니다. 


바크만은 1981년에 사망했고, 이와 동시에 Wakmann이라는 브랜드도 쿼츠파동으로 사라진 1천여 개의 브랜드 중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참고로 90년대부터 중국에서 Wakmann을 무단도용한 시계회사가 나타났고 같은 이름으로 상표등록한 독일회사도 있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 Wakmann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회사들입니다. 


Charles Gigandet SA도 독일에서 저가 쿼츠를 팔고 있는 Gigandet 와 관계가 없고, 대신 Blanchefontaine SA라는 PL회사로 사명을 변경하여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시계의 뒷면을 보면 범선 그림이 있습니다. 


선미루가 극단적으로 높고 꼬리 같은 돛대가 달린 특징을 보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원양항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카락(Carrack)으로 보이며,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카락은 산타마리아호가 있습니다. 


이 배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지만 아마도 미국시계의 상징으로 산타마리아호를 그려 넣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바크만에겐 메이플라워호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박해를 피해 추운 겨울에 미국에 도착했다가 고생 끝에 정착하여 꿈을 이루는 이민자들의 이야기가 바크만의 인생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벨쥬의 마지막 심장 730




“Wakmann Triple Calendar Chronograph powered by Valjoux 730”


Wakmann은 앞서 살펴봤고, 이번에는 기능과 무브먼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Triple Calendar Chronograph(이하 TCC)


TCC는 하나의 시계에 시간+크로노그래프+달력(월, 일, 요일)을 한꺼번에 표현하는 기능입니다. 


요일과 월을 12시 방향에 위치한 창문들로, 날짜는 포인터로 보여주는 형태의 TCC는 1940년대에 시작되어 1960년대까지 유행했습니다.


특히 Heuer, Breitling 같은 크로노그래프 전문브랜드와 Breguet, Ulysse nardin, Baume & Mercier 등 젠틀한 분위기의 브랜드에서 1950년대에 많이들 만들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Rolex Dato Compax입니다. 


2천여 개만 생산되었음에도 워낙 마케팅에 뛰어난 브랜드라서 그런지 트리플 캘린더 크로노그래프를 그냥 Dato Compax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브랜드에서 TCC를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Valjoux 72C라는 무브먼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이 무브먼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얼굴이 다들 비슷비슷합니다.


Valjoux 72C는 1946년에 처음 등장하여 1974년까지 생산되었는데, 이 기간이 바로 시계시장에서 TCC가 만들어진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 캘린더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날짜는 30일과 31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월을 자동으로 넘기는 기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매달 말 왼쪽 버튼을 이용해 수동으로 월과 날짜를 조정해줘야 합니다. 


어차피 매일 손이 가는 핸드와인딩이기 때문에 날짜 조정하는 게 별 문제는 아니 지었지만 기술적으로 발전의 여지는 있는 상태였습니다.



70-80년대의 쿼츠폭풍이 물러가고 90년대에 전통적인 브랜드들이 다시 일어서면서 기계식 시계는 고급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달력과 크로노그래프를 합친 TCC는 각 브랜드들이 최고의 기예를 뽐내기 위한 장이 되었고, 결국에는 Annual Calendar Chronograph와 Perpetual Calendar Chronograph로 대체되어 전통적인 형태의 TCC는 이제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2. Valjoux 730


Wakmann TCC는 Valjoux 730을 무브먼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밸런스휠 아래쪽에 보면 730이라는 숫자와 Valjoux의 R 로고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Valjoux는 1901년 John과 Charles Reymond형제가 설립하여 1929년까지 Reymond Frères SA라는 이름으로 운영된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전문업체입니다. 


그래서 로고로 R을 사용하고 있고요. 


그러다 아들인 Marius와 Arnold로 경영이 넘어가면서 회사명이 Valjoux로 바뀌었습니다. 


이 이름은 Vallée de Joux, 즉 쥐라의 계곡이란 뜻입니다. 


프랑스와 맞닿아있는 이곳은 유명 시계제조업체들이 몰려있는 지역으로 지도에서 위치를 찾아보면 예거와 AP 등과 같은 동네입니다.




이 회사의 제품 중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되었고 가장 유명한 무브먼트는 Valjoux 72입니다. 


일반인들에게까지 Valjoux 72가 유명해진 건 2017년 10월 경매에서 약 200억 원에 낙찰된 Paul Newman Daytona ref.6239 덕이 큰 것 같습니다. 


이 모델은 1963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제작된 초창기 데이토나 모델 중 하나로서 아내이자 배우인 조안나 우드워드(Joanne Woodward)가 1968년 폴뉴먼에게 선물한 건데, 이 시계의 무브먼트가 Valjoux 72입니다.



Valjoux는 1931년부터 롤렉스에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공급해 왔습니다. 


이는 롤렉스가 1988년 Zenith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El Primero 400으로 바꾸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현재는 자사무브먼트인 롤렉스 4130을 사용하고 있답니다.


크로노그래프인 Valjoux 72에 캘린더(c) 모듈을 얹으면 Valjoux 72c(또는 723)가 됩니다. 


Valjoux 730은 기존 Valjoux 72c를 대체하기 위해 진동수를 18,000 bph에서 21,600 bph로 높인 모델이며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생산됐습니다.


사실 72와 72c, 730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Wakmann TCC는 60년대에 생산된 모델의 경우 Valjoux 72c를, 70년대 모델은 Valjoux 730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70년대는 기계식 시계회사들이 하나 둘 문을 닫을 때여서 그런지 검색을 하다 보면 Valjoux 730을 사용하는 시계가 Wakmann 말고는 별로 없습니다. 


1969년, 이 해는 쿼츠파동의 주인공인 세이코 아스트론이 발표된 해이기도 하지만 호이어와 해밀턴, 브라이틀링 등이 합작으로 최초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발표한 해이기도 합니다. 


Valjoux도 시장의 변화에 맞춰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Valjoux 7750을 개발하여 1974년에 출시합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쿼츠로 완전히 전환되어 버린 후였습니다.


1975년, 쿼츠파동의 여파로 결국 Valjoux도 무브먼트 생산을 중단하고 문을 닫습니다. 


이후 1985년, ETA에 의해 Valjoux 7750이 부활하여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그때는 이미 Valjoux가 ETA에 흡수되어 버린 뒤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730은 Valjoux의 이름으로 시계가 된 마지막 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빈티지 시계에서는 과연 무엇이 오리지널이냐는 ‘기준’의 문제와 과연 이것이 오리지널이 맞냐는 ‘검증’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싸 브랜드의 경우엔 자료가 풍부해서 기준을 정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지만, 그만큼 기준에 부합하는 가품이 넘쳐나니 검증이 중요한 이슈로 보입니다.


반면 Wakmann 같은 핵 소외자(?) 브랜드는 애당초 기준을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공식적인 자료나 전문가들의 분석은 부족하고 오래된 카탈로그나 판매글들에 적혀있는 조각난 정보들만 여기저기 널려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흩어진 자료들을 모아놓고 교집합을 찾아봤습니다. 


겹치거나 반복되는 사례들이 많으면 그게 오리지널일 확률이 높다고 정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판단을 보류합니다.


그런 식으로 Wakmann 트리플 캘린더 크로노그래프를 정리해 봤는데 레퍼런스 번호보다는 형태와 무브먼트를 기준으로 분류했습니다.


1. Classic (Gigandet-Wakmann)




1966-67년 카탈로그에 등장하는 모델입니다. 


직경은 37mm에 Valjoux 72C(723)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Gigandet-Wakmann이 함께 표기되어 있는데, 앞서 살펴봤듯이 Gigandet는 생산을, Wakmann은 디자인과 유통을 담당하는 관계였습니다. 


유럽에선 Gigandet 공동브랜드로, 미국에서는 Wakmann으로 판매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의 디자인은 여타 트리플 캘린더 크로노그래프와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일단 이 유형이 라인업에 들어왔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2. 72 Open hands (Valjoux 72c)


시기적으로 봤을 땐 1968년 이후부터 1970년까지가 될 것 같습니다.


이때부터 Wakmann만의 색감이나 디테일들이 나타납니다.


새빨간 크로노 초침이 돋보이고, 굵은 철판모양 핸즈가 등장했는데 지금까지 알던 전통적인 핸즈 유형들에 속하지 않는 형태입니다.


이는 투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미국산 트럭같이 선이 굵고 마초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모델은 핸즈 끝이 열린 모양(open hands)이고 그 사이에는 트리튬 야광이 칠해져 있습니다.


무브먼트는 여전히 Valjoux 72C(723)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레퍼런스는 37mm의 경우 ref.71.1309.70, 39mm는 ref.73.1370.70입니다. 


케이스 크기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진을 보면 푸시버튼이 케이스에 묻혔는지, 크로노버튼 목이 잠겼는지 여부로 사이즈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 모델은 대부분이 37mm입니다. 


1969년에 출시된 38mm 빈티지 튜더 데이트데이가 당시엔 굉장히 크다며 점보라는 별명을 얻었던걸 봐서 39mm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3. 730 Open hands (Valjoux730)


기존 디자인을 유지한 채 무브먼트만 72c에서 730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외형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고 무브먼트의 모델번호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open hands는 유지하고 있는데 인덱스가 조금씩 바뀌는 게 눈에 띕니다.


기존에는 폴리싱 된 스틸 사이에 트리튬 야광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광 부분이 점차 야광기능이 없는 흰색 bar로 바뀝니다.


4. 730 Closed hands (Valjoux 730)


Valjoux 730이 1971~1974년 생산되었으니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전 버전과 같이 37mm와 39mm가 있는데 레퍼런스는 기존과 같은 번호를 쓰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외형적 변화는 철판핸즈가 몽둥이 모양의 핸즈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실제 다른 시계들과 나란히 놓고 보면 Wakmann의 핸즈가 압도적으로 굵고 뭉뚝해 보입니다.


핸즈의 모양이 기존의 열린 형태에서 닫힌 형태(closed hands)로 바뀌었고, 몸통도 2면으로 마감되어 다른 각도의 빛을 반사하도록 되어있어 철판모양 핸즈보다는 정교한 느낌을 줍니다.


직전 모델에는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인덱스가 흰색 bar로 바뀌면서 좀 더 깨끗한 느낌을 줍니다.


데이트 포인터 모양도 좀 다양해졌습니다. 


초승달모양, ㄷ자 모양이 있고, 색깔은 빨강, 검정 등이 있는데, 시계들의 상태로 봤을 때 생산연도가 늦을수록 과감한 형태의 빨간색, ㄷ자가 된 것 같습니다.



몽둥이 핸즈와 Valjoux 730이면 시계 상태를 봐도 가장 최신인 70년대가 맞을 것 같지만 판매글이나 경매사이트 같은 곳에서 60년대라고 소개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5. 예외적인 모델들


형태는 같은데 예외적인 번호들 (37mm ref.725.1309, ref. 72.1309.70 / 39mm ref. 1315.30.75 등)도 등장합니다. 


공동브랜드로 출시되거나 다른 브랜드로 납품될 제품들의 레퍼런스 번호가 섞인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역판다 다이얼이 가장 유명하지만, 전통적인 분위기의 골드케이스와 실버다이얼도 있습니다. 


이들의 레퍼런스는 ref. 73.1308.21, ref. 73.1308.21, ref. 1315.30.75, ref. 1315.30.74 등이 있습니다.



AOPA(항공기 오너 및 파일럿 연합회), Gigandet, Vulcain 로고를 달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AOPA에 납품한 모델은 Wakmann표시 없이 AOPA로고가 달려있고 써브다이얼이 큰 편입니다.


같은 디자인인데 Gigandet로고가 함께 표기된 경우가 있습니다. 유럽 판매용 모델로 추정됩니다.


Vulcain은 좀 예외적으로 보입니다. 


Vulcain의 고유 스타일과 맞지도 않고 주로 Valjoux 730 모델에서 나타나는 걸 보면 Wakmann이 망한 뒤 PL회사인 Gigandet에서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넘긴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경우 ref. 1315.01.74와 같은 번호를 쓰는 것 같습니다.



기존에는 트리플 켈리더 크로노그래프가 드레스 위치의 영역이었는데, Wakmann에서 이를 점점 스포티한 분위기로 변화시킨 시도들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Wakmann 마지막 시기에 만들어져 그런지 사례는 많지 않고 기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Wakmann의 역사가 계속되었다면 재미있는 시계들이 많이 나왔을 텐데 아쉽습니다.



6. 마무리


제가 정리한 내용들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들을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 그룹핑해본 수준입니다.


책자나 팸플릿 등 구체적인 자료가 발견되거나 전문가들에 의해 분석되고 나면 언제든 분류기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Wakmann 고유의 스타일을 가진 트리플 캘린더 크로노그래프는 1968년~1975년 사이에 잠깐 등장해서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미국적인 스타일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Classic에서 730-Open hands까지 변화한 모습은 이탈리안 피자가 어떻게 아메리칸 피자로 변했는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십자가와 왕관



2주간의 오버홀을 마치고 Wakmann Triple Calendar Chronograph가 돌아왔습니다. 


오래되어 변색이 된 크로노초침과 데이트 포인터 초승달은 빨간색으로 다시 칠했습니다. 


푸시버튼 주변의 찌든 때도 벗겨내고 세척을 새로 해서 전반적으로 한층 밝아진 느낌입니다. 



무브먼트는 오래됐지만 세척, 주유, 조율을 마치고 나니 10초 이내의 일오차와 48시간의 파워리저브가 나왔습니다. 


전 주인이 벨기에의 Abel Court로부터 구매했다고 하는데, 찾아보니 이 사람은 hodinkee나 worn&wound에서도 다루어진 꽤 유명한 빈티지시계 복원 전문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50여 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케이스와 다이얼이 상당히 깨끗한 편입니다. 



매물들을 찾아보면 크라운이 교체된 모델들이 꽤 있습니다. 


오리지널 크라운에는 왕관 로고가 새겨져 있는데, 부품이 교체된 시계는 왕관이 없거나 다른 로고가 들어가 있습니다.


케이스백의 범선은 미국시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왕관은 좀 엉뚱한 등장입니다. 바크만의 로고는 따로 있는데, 롤렉스의 비즈니스모델을 벤치마킹했다더니 롤렉스가 되고 싶었던 걸까요?



그런데 크라운 사진을 확대해 보니 왕관 가운데에 큰 십자가가 놓여 모양이 좀 특이했습니다. 


이게 어느 나라 왕관인가 싶어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비슷하게 없었습니다. 


그러다 위키피디아 Cross and Crown에서 이런 구절을 찾았습니다.


The emblem is often interpreted as symbolizing the reward in heaven (the crown) coming after the trials in this life (the cross) (James 1:12)


아... 롤렉스를 따라한 게 아니었네요. 바크만의 일생을 알면 저 로고가 뭔지 이해가 갑니다. 


험난한 인생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그가 의지하던 성경구절을 로고로 만들어 시계에 새겨 넣은 것 같습니다.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야고보 1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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